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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보다 강아지 서열 높은 시대? … ‘펫 퍼스트’의 그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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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반려동물이 먼저냐, 사람이 우선이냐.’

강아지에 화낸 남편 살해 이어 #집 안 반려견에 물려 아이 숨지기도 #반려동물 키우는 인구 1000만 시대 #일부 동물 과보호에 우려 목소리 #펫티켓 등 공존 방법 고민해야

자신의 애완견에 화를 내며 욕하는 남편과 말다툼을 벌이던 40대 아내가 흉기로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중앙일보 10월 10일자 14면)이 충격을 주고 있다. 비극적인 이 사건을 계기로 온라인상에서 ‘펫 퍼스트(pet first·반려동물 우선)’ 논쟁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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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네티즌은 “아무리 애완동물이 소중해도 가족을 죽일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맞서 가족 내부의 불화가 근본 문제이고 애완동물은 도화선일 뿐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 명 시대를 맞은 가운데 집착에 가까운 일부의 동물 과보호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펫 퍼스트’ 논쟁을 촉발한 경기도 파주 남편 살인 사건은 소름 끼쳤다. 10일 경기 파주경찰서에 따르면 A씨(47·여)는 추석 당일인 지난 4일 오후 11시30분쯤 파주시 자신의 아파트에서 남편 B씨(54)와 말다툼하던 중 부엌에 있던 흉기로 B씨의 목을 한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붙잡혀 구속됐다. 남편 살인 사건은 애완견이 짖는 문제가 발단이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강아지가 짖는 것을 본 남편이 ‘강아지를 죽여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 내가 이를 말리던 중 일어난 일”이라고 진술했다. A씨는 애완견 세 마리를 키웠다. 부부는 평소에도 애완견이 짖는 문제로 갈등을 빚어 왔다. A씨는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은 이날 부부간 심한 몸싸움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지난 6일 경기도 시흥에서는 아파트 집 안에서 키우던 반려견 진돗개에 한 살배기 C양이 목을 심하게 물려 사흘 만에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도 발생했다. 거실에는 높이 60㎝ 정도의 울타리만 설치돼 몸길이 1m쯤 되는 진돗개가 아이에게 달려드는 걸 막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진돗개가 서열 경쟁이 심한 편이라 C양을 적으로 인식해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고 추정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한 네티즌은 “개 때문에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일이 벌써 몇 번째냐”고 씁쓸해했다.

지난 8월에는 가족여행 기간 동안 애견호텔에 맡긴 반려견이 다른 대형견에 물려 죽자 일종의 복수심에 난동을 부린 30대 견주 D씨(38)가 경찰에 입건된 일도 있었다. D씨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자신의 반려견을 ‘자식과도 같은 아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반려견 물림 사고는 2013년 616건에서 지난해 1019건으로 3년 만에 403건(65%) 증가했다. 올 6월까지 766건이 접수됐다. 외출 시 목줄 착용 등 반려동물 주인으로서 지켜야 할 ‘펫티켓(펫+에티켓)’을 제대로 안 지키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과 비용이 커지고 있다.

박소연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는 “그동안 반려동물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해주는 훈련 위주의 교육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동물과 사람(주인)의 적절한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관련 교육을 이수한 주인에게 자격증을 주는 방안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형준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교수는 “갈등이 생겼을 때 지자체가 운영하는 조정 기구를 통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중요하고 애초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동물 주인들은 예방적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주·시흥·울산=전익진·김민욱·최은경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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