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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중앙위 후보위원이 된 현송월...파워의 원천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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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를 통해 단행된 인사 가운데 현송월 모란봉악단 단장이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포함된 것이 눈에 띈다. 예술인이 당 중앙위원회 위원·후보위원에 포함되는 경우는 과거에도 더러 있었다. 대표적으로 백인준 백두산창작단장, 김병훈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장 등이다. 현송월의 이번 인사도 예술인에 대한 북한 최고지도자의 배려로 보인다.

2015년 12월 베이징 민쭈호텔 로비에서 포착된 현송월(오른쪽) 모란봉악단 단장의 모습. [중앙포토]

2015년 12월 베이징 민쭈호텔 로비에서 포착된 현송월(오른쪽) 모란봉악단 단장의 모습. [중앙포토]

그의 이번 인사가 세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현송월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애인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확인할 수 없는 얘기이지만 그가 북한판 걸그룹으로 불리는 예술단 단장 출신으로 이례적으로 노동당 서기실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어 그 의혹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이다. 현송월은 현재 김정은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김정은·이설주 부부와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많은 편이다. 현송월과 이설주는 은하수관현악단 선후배로 돈독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고 현송월이 이설주보다 10살 위다. 정부 당국자는 “현송월이 이 위세를 이용해 특별한 권세를 과시하고 있으며 노장 간부들을 함부로 대해 이들로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2012년 3월 북한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에 등장해 자신의 히트곡인 ‘준마처녀’를 부른 현송월. [중앙포토]

2012년 3월 북한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에 등장해 자신의 히트곡인 ‘준마처녀’를 부른 현송월. [중앙포토]

현송월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두 가지 사건이 계기가 됐다. 2013년 8월 모란봉악단 음란 영상 제작 사건으로 관련자들이 대부분 처형됐을 때 그는 살아남았다. 현송월은 2014년 5월 제1차 전국예술인대회에서 대좌(대령)의 계급장을 달고 첫 연설을 할 정도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 이후 주요 행사 때마다 김정은 주변에 서 있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2015년 12월 베이징 공연 때다. 이는 현송월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현송월이 북·중 관계를 위해 모란봉악단을 이끌고 베이징 국가대극원(국가대극장)에서 공연을 준비하다가 시작하기 3시간 전에 귀국해 버렸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공연이 갑자기 취소되자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 때 공연 취소 결정을 내린 사람이 현송월이었다. 이유는 공연 내용에 김정은의 우상화 내용이 있었는데 이를 중국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북한 모란봉악단이 중국 공연을 돌연 취소한 뒤 돌아가는 모습. 당시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왼쪽)와 현송월 단장(오른쪽)이 숙소인 민쭈호텔을 나서며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사진제공=이매진차이나]

2015년 12월 북한 모란봉악단이 중국 공연을 돌연 취소한 뒤 돌아가는 모습. 당시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왼쪽)와 현송월 단장(오른쪽)이 숙소인 민쭈호텔을 나서며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사진제공=이매진차이나]

당시 동행한 김성남 당 국제부 제1부부장이 현송월을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김성남은 김일성·김일성의 중국어 통역사 출신으로 북한내 최고의 중국통으로 차기 주중 대사로 유력한 사람이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예술단장 앞에서 단 한마디의 중재안도 내지 못했다. 김정은·이설주를 등에 엎은 현송월의 위세를 보여준 것이다. 급기야 왕자루이(王家瑞) 전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내섰는데도 공연 취소는 번복되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두 사건이 현송월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며 그의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고 평가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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