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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다시보기] 48년 경력 셰프의 맛있는 짬뽕 비결

중앙일보

입력

맛대맛 다시보기 ㉔ 야래향
매주 전문가 추천으로 식당을 추리고 독자 투표를 거쳐 1·2위 집을 소개했던 '맛대맛 라이벌'. 2014년 2월 5일 시작해 1년 동안 77곳의 식당을 소개했다. 1위집은 ‘오랜 역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집이 지금도 여전할까, 값은 그대로일까. 맛대맛 라이벌에 소개했던 맛집을 돌아보는 ‘맛대맛 다시보기’ 24회는 짬뽕(2014년 9월 10일 게재)이다. 당시 1위 안동장(을지로3가)은 수차례 요청에도 불구하고 취재를 거절해 2위 야래향을 소개한다.

굴과 채소를 볶은 후 닭 육수를 넣고 끓인 하얀 굴짬뽕. 굴과 채소에서 나온 즙이 진한 국물의 비결이다. 김경록 기자

굴과 채소를 볶은 후 닭 육수를 넣고 끓인 하얀 굴짬뽕. 굴과 채소에서 나온 즙이 진한 국물의 비결이다. 김경록 기자

1960년대말부터 80년대까지 서울은 아서원·호화대반점·팔선·홍보석 등 중식당 호황기였다. 이를 이끈 게 화교들이다. 야래향 송성복(66) 대표도 그중 하나다. 18살이던 69년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서울 자리) 중식당 용궁을 시작으로 아서원 등 당대 최고 중식당에서 요리를 배웠다. 주방 일은 고됐다. 국자로 맞는 일은 다반사였고 선배 앞치마랑 양말도 다 빨아야 했다. 하지만 당시 화교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화교학교에 다니던 애들 중 특출나게 공부 잘하는 몇 명만 유학 가고 나머진 다 중국집에 취직했다"고 말했다. 어차피 시작한 일, 그는 "뭐라도 하나 배우겠다"는 강한 의지로 고된 주방 일을 견뎠다. 그는 "선배들 어깨너머 틈틈이 배우기도 하고 요리 나갈 때 뭐가 들어가는지 혼자 수첩에 적어가며 배웠다"고 회상했다. 유명 중식당에서 경력을 쌓은 후 79년 대한항공 조리부에 입사했다. 보수가 좋았지만 4년이 채 안 돼 회사를 나왔다.
"화교라 그런지 진급이 안 되더라고요. 똑같이 일하면서도 차별 대우를 받으니 화가 났죠. 퇴직금도 있겠다, 이젠 나도 사장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죠."

송성복 사장이 굴과 채소를 볶고 있다. 김경록 기자

송성복 사장이 굴과 채소를 볶고 있다. 김경록 기자

외상 때문에 문 닫은 첫 가게   

송 사장은 83년 안양에 태화루라는 중국집을 열었다. 인근 공장에 다니는 사람이 많은 데다 맛있다는 입소문까지 나면서 제법 장사가 잘됐다. 하지만 정작 돈은 별로 못 벌었다.장부를 만들어 외상으로 먹은 공장들이 하루 아침에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외상값으로 한달에 몇 백만원씩 그냥 날렸어요. 100만원 번다치면 40만원은 수금을 못했죠. 돈이 없으니 식재료상에 돈을 제때 못 주고, 질 나쁜 걸 줘도 그냥 써야했어요. "
손맛이 아무리 좋아도 안 좋은 재료로는 제대로 된 맛을 낼 수는 없었다.

면은 밀가루에 쌀가루를 섞어 쫄깃한 식감을 살렸다. 김경록 기자

면은 밀가루에 쌀가루를 섞어 쫄깃한 식감을 살렸다. 김경록 기자

결국 90년 가게 문을 닫고 태평로 사보이호텔 중식당인 호화대반점에 들어갔다. 그리고 2년 만인 92년 회현동에 다시 가게를 열고 야래향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번엔 잘 될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 매장에서 100 여m 떨어진 곳이었는데 규모가 33㎡(10평) 남짓으로 작았다. 친구가 "명동 화교학교가 있어 화교들이 많은 데다 신세계백화점 때문에 유동인구도 많다"고 조언했다.
야래향이라는 이름은 친구가 지어줬다.밤잠 없는 송 사장이 밤에 꽃을 피운다는 야래향과 잘 어울린다는 의미였다. 그는 "가게 앞 저 화분이 야래향인데 밤이 되면 꽃이 피고 향이 짙어져서 좋다"며 "중식도 점심보다는 저녁에 많이들 온다"고 말했다. 당시엔 야래향이라는 이름의 중국집이 드물었다. 그러나 송 사장의 야래향이 유명세를 타면서 전국 곳곳에 생겼다.

성공 비결은 배달 안하는 것 

태화루의 실패가 야래향 성공의 약이 됐다. 메뉴와 경영 방식을 다 바꿨다. 메뉴를 확 줄이고 배달을 포기했다는 얘기다.
"테이블이 다섯 개밖에 없을 정도로 작아서 혼자 다 했어요. 메뉴가 다양하면 손이 많이 가니까 한 가지로 승부하기로 한 거죠. 다른 집은 일반 짬뽕, 삼선짬뽕, 볶음짬뽕 등 다양하지만 우리는 굴을 넣었죠. 종류도 빨간 것과 하얀 것 두 개만 했어요. 처음엔 손님들이 당황하더라고요. 삼선짬뽕 달라는데 없다고 하니까. 그런데 먹어보고는 다른 거 달란 소리 안 하더라고요. "

짬뽕맛의 비결인 굴은 매일 통영에서 직접 받는다. 김경록 기자

짬뽕맛의 비결인 굴은 매일 통영에서 직접 받는다. 김경록 기자

야래향 대표 메뉴인 굴짬뽕은 이렇게 처음 나왔다. 굴을 센 불에 볶으면 진득한 즙이 나와 국물이 진해진다. 굴짬뽕은 굴에서 나온 즙 덕분에 구수하고 맛이 깊다. 굴 신선도가 중요할 수밖에 없어 요즘도 매일 통영에서 직접 굴을 받는다. 통영산이라도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인근 시장에 달려가 신선한 것을 사온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더더욱이 중국집은 배달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그걸 안했다. 배달원 구하기 힘든 데다 수금한 돈과 오토바이까지 갖고 도망가는 배달원이 적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배달하는 동안 식거나 면이 불어 제대로 된 맛을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점차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2년 만에 바로 옆 치킨 가게를 인수해 매장을 넓혔다. 매장이 세 배나 넓어졌는데도 식사 때마다 사람들로 꽉 찼다.

속도보다 정성

그렇게 9년쯤 지난 2001년 재개발로 가게를 비워야 했다. 그래서 간 곳이 동부이촌동이다. 아파트 단지에 있으면서도 회현동 시절과 똑같이 배달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장사가 잘 안됐지만 반 년쯤 지나자 동네뿐 아니라 원래 야래향에 오던 손님까지 찾아올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1년 만에 다시 회현동으로 돌아왔다. 2년 넘게 가게세도 못 낼 만큼 장사가 안되던 한식집이 문을 닫으면서 자리가 나온 거다. 원래 야래향이 있던 데서 멀지 않은 데다 권리금이 없었다. 동부이촌동 가게는 형에게 맡기고 다시 회현동으로 갔다.동부이촌동 시절이든 회현동 시절이든 20년 넘게 장사를 하며 송 사장이 지키는 원칙이 있다. 바로 정성이다.

2002년 확장 이전한 회현동 야래향 외관. 김경록 기자

2002년 확장 이전한 회현동 야래향 외관. 김경록 기자

"요리는 손맛이에요. 손맛은 정성에서 나오고요. 짬뽕은 채소와 해산물을 볶아 만드는데 이때 건성건성 볶으면 국물이 진하지 않아요. 볶음밥도 팬을 한 번 돌리는 것보다 서너 번 돌리면 더 맛있어요. 기름기가 날아가면서 밥이 더 고슬고슬해지거든요. 그래서 직원들한테 늘 빨리 하지 말고 정성껏 하라고 강조하죠."
송 사장은 분점 제안도 거절한다. 중국 요리는 즉석에서 볶아내야 하기 때문에 매장마다 같은 맛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맛대맛에 소개된 후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같은 모습인 것도 이 때문이다. 자리도, 규모도 그대로다. 분점도 내지 않았다. 다만 밀가루와 굴값이 계속 올라 부득이 하게 짬뽕 가격을 1000원(빨간굴짬뽕), 1500원(하얀굴짬뽕)씩 올렸다.

야래향의 하얀굴짬뽕. 김경록 기자

야래향의 하얀굴짬뽕. 김경록 기자

·대표메뉴: 하얀굴짬뽕 9500원, 굴짬뽕 8500원, 탕수육(소) 2만원, 깐풍왕게다릿살(소) 7만5000원 ·개점: 1992년(지금 가게에서 110m 떨어진 자리) ·주소: 서울시 중구 퇴계로 10길 14(중구 회현동 1가 92-16) ·전화번호: 02-752-3991·3992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명절 당일 휴무) ·주차: 렉스호텔 옆 공영주차장 이용

80년대 중식당 호황 이끈 야래향 송성복 #못배우고 차별받은 화교의 삶 #"좋은 재료에 정성 더해야 맛있는 요리"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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