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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풍경화에 풍차가 많은 이유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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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호 32면

9월 10일자 이 지면에 소개한 『식사(食史)』가 우리 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韓食) 이야기라면, 제목이 같은 이 책은 역사학과 교수의 눈으로 고찰한 세계의 음식 문화다. “인간의 본성인 식욕의 특징, 식욕을 해결하려고 구축한 음식 문화, 그리고 음식이 세계사의 주요 사건과 계급·젠더·문화권의 형성 및 대립에 끼친 영향을 연구하지 않고서는 인간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기획한 의도다. ‘생존에서 쾌락으로 이어진 음식의 연대기’라는 부제처럼, ‘살기 위해 먹는’ 것에서 ‘먹기 위해 사는’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의 식생활을 관통하는 7가지 음식에 초점을 맞춘다. 고기·빵·포도주·치즈·홍차·커피·초콜릿이다. 로마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만큼 아무래도 서양 쪽에 무게 중심이 실려있다.

『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食史)』 #저자: 정기문 #출판사: 책과함께 #가격: 1만4800원

서양인의 주식인 빵을 설명하면서 저자가 던지는 미끼는 풍차다. 소설 『돈키호테』나 『프란다스의 개』, 고흐의 그림 속에는 왜 풍차가 자주 등장할까? 주곡이 밀이었기 때문이다. 신석기시대부터 농민들은 맷돌에 밀을 갈아 밀가루를 만들고 이것으로 빵을 만들어 먹었는데, 밀을 가루로 만드는 일은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 알곡을 갈고 체로 치는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옛날부터 여성들이 담당해 왔는데, 빵을 반죽하는 사람(loaf kneader)에서 여성을 가리키는 레이디(lady)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설도 인용한다.

십자군을 통해 동양(페르시아)에 풍차라는 기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유럽인들은 12세기부터 풍차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국토의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았던 네덜란드는 특히 적극적이었다. 풍차가 제분 작업에 본격 투입되면서 많은 농민들은 고단한 노동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었다.

성경 속 ‘오병이어’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예수가 들판에서 오천 군중을 먹인 빵은 보리빵이었다. 그런데 한글성경을 보면 영어 성경에 ‘bread’라고 돼있음에도 ‘보리떡’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왜 그랬을까. 빵을 떡으로 의역한 것일까.

저자는 “고대의 빵은 곡물 가루를 물과 섞어 반죽한 다음 팬에 부어 굽거나 솥에 넣어 찐 무발효 빵이었으며, 이는 우리의 전과 같이 평평하고 두께가 얇으며 습기가 많아 떡과 유사했기 때문에 성경 전문가들이 이를 감안해 번역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포도주는 고대 그리스를 상징하는 음료였다.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가르침과 행적을 전하며 쓴 『향연』은 원어가 ‘심포지엄’인데, 원래의 뜻은 ‘함께 마시다’이고 심포지엄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마신 것이 바로 포도주였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포도주와 빵을 먹으면서 자신을 기념하라고 명령한 이후 미사에서 포도주는 필수적인 성물이었고, 유럽의 거의 모든 수도원이 포도 재배와 포도주 생산에 주력하면서 중세인들에게는 일상 음료가 됐다. 특히 물이 부족한 유럽에서 포도주는 식수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커피의 기원에 대해서도 저자는 의문을 갖는다. 6세기경 에디오피아의 한 염소지기가 발견한 요상한 나무 열매 이야기를 들은 이슬람 수도사가 주변에 알리며 퍼져나갔다는 얘기인데, 우선 당시 에디오피아에는 이슬람 수도사가 없었으며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에디오피아에서는 3000년 전부터 커피를 마셨다는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16세기까지 에디오피아에서는 커피라는 이름 대신 ‘분카(bunka)’ 혹은 ‘분쿰(bunchum)’으로 불렸다. 지금처럼 커피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12~13세기 이슬람 신비주의 수도사인 수피들이 집단적으로 마시면서 ‘카와(qahwa)’라고 부른데서 기인한다. 카와는 ‘무언가에 대한 욕망을 없애다’라는 뜻인데, 잠자는 것과 먹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며 고행을 일삼던 수피들의 취향을 커피가 저격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17세기 영국에서 청교도 혁명 이후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커피가 시들해지고 대신 홍차가 급부상하게 된 것은 영국이 네덜란드와의 커피 경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라는 등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역사적 설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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