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고수 "몸으로 악으로 버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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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남한산성' 고수 인터뷰

10월 3일 개봉하는 ‘남한산성’의 주연 배우·고수. 사진=전소윤(STUDIO 706)

10월 3일 개봉하는 ‘남한산성’의 주연 배우·고수. 사진=전소윤(STUDIO 706)

민초의 힘. 이것이 고수(39)가 ‘남한산성’을 선택한 이유다. ‘풀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김수영 시인의 말처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버티고 버텨 끝내 살아남은 민초들. 고수는 대장장이 서날쇠가 돼 정치적 신념이 아닌 삶의 본능에 충실한 백성을 대변한다. “가장 힘들게 버텨냈지만, 또 가장 빠르게 회복하는 민초의 삶이 아름다웠다”는 고수. 그가 만들어낸 묵직한 날쇠의 삶은 지금 우리와 얼마만큼 비슷하고, 또 다를까.



━소설이 원작이고, 역사의 한 부분을 영화화 한 이야기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어땠나.

“원작 소설은 예전에 읽었는데, 이번에 시나리오를 보면서 어떤 부분이 달라졌고, 각색됐는지 찾게 되더라. 소설의 이야기나 문체가 크게 달라진 거 같진 않고, 아름다운 표현이 그대로 잘 살아 있어서 먹먹한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고립무원의 상황 속에서 인조 곁을 지키는 이조판서 최명길과 예조판서 김상헌, 남한산성을 지키는 무사 이시백과 달리 날쇠는 일반 백성, 민초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 점 때문에 ‘남한산성’을 선택했다. 날쇠는 나라도,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도 아닌 자신과 같은 백성이 배곯지 않고 평범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행동하는 인물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고야 마는 신념을 가졌다는 점이 굉장히 멋있었고,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왕의 친필 격서를 전달하라는 제안을 수락하는 장면이 감정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장면 아닌가. 날쇠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날쇠에서 느낀 감정은 ‘살아있다’ ‘인간적이다’라는 거였다. 그런 걸 강조해서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계속 경건해지고 슬퍼졌다.
날쇠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가볍게 표현하면 안 되고, 진중하게 다가야 하는 캐릭터였다. 기교를 부리기 보다 묵직하게 표현하는 게 더 잘 어울릴 거 같아서 최대한 시나리오의 느낌대로 날쇠를 표현하고자 했다.”

━날쇠는 우직하고, 따뜻하면서도 인간적인 매력이 가득한 캐릭터다. 이 때문에 연기적으로 더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진 않았나.

“날쇠 혼자 주인공인 영화였다면 배우로서 굉장히 욕심을 냈을 것 같다(웃음). 워낙 매력적인 캐릭터라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거든. 하지만 영화에서 내가 보여줘야하는 부분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한 장면이라도 날쇠의 고민과 행동이 제대로 담길 수 있도록 모든 걸 쏟아내는 데 집중했다.
날쇠의 묵직한 매력이 잘 나타나야 하는데, 내가 잘 했는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말과 지략, 혹은 칼로 싸우는 이들과 달리 날쇠는 몸으로 구르고, 매달리고 싸운다. 영화의 액션을 담당했는데.

“촬영이 끝나서 얼마나 좋았던지. 빙벽에 매달리는 장면을 3박 4일정도 찍었는데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제일 힘들었던 건 눈길에 쓰러지는 장면이었다. 차가운 눈에 얼굴을 대고 10초를 못 버티겠더라.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그나마 내가 어리고 날렵하니까, 나만이 할 수 있는 액션이라고 생각하면서 해낸 거다(웃음). 당시에 체력적으로 힘들면 힘든대로, 몸으로 악으로 버텼다.”

━굉장히 추운 날씨에 촬영하지 않았나.

“의상이 보온이 잘 되는 소재라서 정말 따뜻했고, 어디에 놔도 잘 어울려서 마음에 들었다. 영화를 보면 내가 입은 의상이 굉장히 자연과 잘 어울린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바위, 나무와 같이 있으면 하나로 보이거든.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진짜 예쁘다.
문제는 분장하고 옷을 입는데만 두시간 반이 걸렸다는 거다. 나중엔 다행히도 40분 정도로 많이 단축되긴 했다.”

━날쇠와 가장 가까운 동생 칠복을 연기한 이다윗과 호흡이 굉장히 중요했을 것 같은데.

“‘고지전’(2011, 장훈 감독)에서 함께했는데, 그때 다윗이 고등학생이었다. 이번에 성인이 되서 다시 만나니까 더 반갑더라. 다윗이는 정말 동생같아서 챙겨주고 싶고, 늘 응원하는 배우다. 옆에서 보면 연기 욕심도 많고, 워낙 잘해서 호흡을 맞추고 감정을 나누는 게 굉장히 편안했고, 즐겁게 연기했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다른 배우들보다 김윤석과 함께 한 장면이 많다.

“신분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왕이나 다른 인물을 만나진 않는다. 그나마 날쇠의 이야기를 유심히 잘 들어준 상헌과 관계를 쌓는다. 날쇠에게 격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긴 것도 상헌이고.
평소 김윤석 선배의 팬이라 연기할 때 굉장히 떨렸다. 워낙 준비성이 철저한 선배고, 캐릭터 대 캐릭터로 만났는데 내가 실수를 하면 굉장한 실례니까. NG를 내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그 긴장감이 아직도 생각난다.”

━1998년 데뷔해 연기 생활 20년차 배우다. 이제 현장이 조금 편해지지 않나.

“절대 아니다. 점점 더 거대하게 느껴지고 나는 아주 작게 느껴지는 곳이 현장이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쌓으면 초반의 생소하고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긴 하지만 늘 긴장감은 여전하다. 경력과 무관한 것 같다. 그나저나 (세는 나이로) 스무 살에 데뷔했는데 벌써 40대가 됐다. 인생 참 빠르고, 시간 참 짧다.”

━차기작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 지금은 ‘남한산성’ 홍보를 열심히 할 생각이다. 드라마나 영화 모두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뵐 수 있도록 하겠다.”

10월 3일 개봉하는 ‘남한산성’의 주연 배우 이병헌·박해일·고수·박희순. / 사진=전소윤(STUDIO 706)

10월 3일 개봉하는 ‘남한산성’의 주연 배우 이병헌·박해일·고수·박희순. / 사진=전소윤(STUDIO 706)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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