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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의 재발견] '디 아더스'의 거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매거진M] 최근 재개봉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디 아더스’(2001)는 하우스 호러 장르 안에서 그 관습을 변주하며 놀라운 반전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거울’의 이미지다. 이것은 이 영화의 서사 구조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풍부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디 아더스' 사진 1-1

'디 아더스' 사진 1-1

영화가 시작되면 그레이스(니콜 키드먼)는 아이들에게 천지창조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어지는 오프닝 크레딧은 이후 영화 내용을 맛보기처럼 보여주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구성된다. 계단 난간에 웅크리고 앉은 두 아이, 등불과 열쇠, 겁에 질린 아이의 얼굴, 꼭두각시 인형…. 그 마지막은 강가에 지은 저택(사진 1-1)이며, 이 그림은 영화의 첫 장면(사진 1-2)이 된다. 1945년 저지섬. 이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이다.

'디 아더스' 사진 1-2

'디 아더스' 사진 1-2

사실 ‘디 아더스’의 거의 모든 것은 이 첫 장면, 즉 ‘물에 비친 집’이라는 거울 이미지 안에 다 들어 있다. 일반적인 하우스 호러는 인간과 유령 사이의 대결이다. 이사 온 사람들은 집에 끔찍한 귀신이 출몰한다는 걸 알게 되고 엑소시즘의 의식을 치른다. ‘디 아더스’는 이 구도를 뒤집는다. 유령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침입자는 인간이 아닐까? 하인들 중 한 명인 밀즈 부인(피오눌라 플래너건)의 말처럼,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디 아더스’는 하나의 집이 아닌 두 개의 집에 대한 이야기다. 그곳에 살다가 유령이 된 가족의 집과 새로 이사 온 가족의 집. 물에 비친 집의 흐릿한 이미지가 전자라면 실제의 집은 후자다. 영화에서 두 집의 경계는 종종 흐려지고 관계는 역전된다.

'디 아더스' 사진 2-1

'디 아더스' 사진 2-1

‘디 아더스’에서 그레이스의 정체는 거울 이미지를 통해 암시된다. 딸 앤(알라키나 만)은 집 안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들을 듣는데, 어느 순간 그레이스도 그 소리를 감지한다. 앤이 창고 쪽에서 소리가 난다고 하자 그레이스는 그곳에 들어가, 가구에 덮어놓았던 흰 천을 하나씩 걷어낸다. 성모상, 옷걸이 등이 드러나는데 마지막이 바로 거울이다.

전설과 상징에 의하면 죽은 자를 가둬놓기 위해 사람들은 거울에 무엇을 씌워놓는다고 하는데, 그레이스는 천을 걷어내고 거울 안의 자신을 응시한다. 그리고 놀란다(사진 2-1).

'디 아더스' 사진 2-2

'디 아더스' 사진 2-2

여기서 카메라의 초점이 후경의 문 쪽으로 이동하면서 전경에 있는 그레이스의 얼굴은, 마치 죽은 자라는 걸 암시하듯 흐릿한 이미지가 된다(사진 2-2).

'디 아더스' 사진 3-1

'디 아더스' 사진 3-1

그레이스는 다시 한 번 거울과 마주한다. 그녀는 딸 앤에게 흰 드레스를 입히고, 너무나 예쁘다며 기뻐한다(얼굴을 베일로 덮는 이 흰 옷은, 창고에서 거울에 덮여 있던 흰 천을 연상시킨다). 앤은 이 옷을 입고 방에서 인형 놀이를 하는데, 그레이스는 딸 대신 어떤 노파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사진 3-1).

'디 아더스' 사진 3-2

'디 아더스' 사진 3-2

이때 거울에 비친, 그레이스의 약간은 일그러지고 흐릿한 얼굴이 등장한다(사진 3-2). 영화 내내 지나칠 정도로 완벽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러기에 감히 유령일 거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레이스의 본 모습은, 거울을 통해 잠깐씩 단서처럼 등장하는 셈이다.

'디 아더스' 사진 4-1

'디 아더스' 사진 4-1

'디 아더스' 사진 4-2

'디 아더스' 사진 4-2

앤이 거울 놀이를 하는 장면도 흥미롭다. 이 소녀는 영화에서 가장 자유롭게 두 세계를 넘나드는 인물이다. 앤은 종종 침입자들(사실은 이 집의 실제 주인들)을 목격한다. 이런 중간자적 입장이 가장 잘 나타나는 신은, 흰 옷을 입은 앤이 거울 앞에 있는 장면이다.

“저랑 춤추실래요?”(사진 4-1) “그러죠.”(사진 4-2) 앤은 1인 2역의 놀이를 시작하며 춤을 추는데, 이것은 거울의 반사 이미지로 제시되며, 어둠 속에서 흰 옷을 입고 춤추는 아이의 모습은 죽음의 이미지를 재차 강조한다.

'디 아더스' 사진 5-1

'디 아더스' 사진 5-1

한편 ‘디 아더스’엔 마치 잠시 후에 일어날 사건을 예견하는 듯한, 서로 쌍을 이루는 이미지들이 있다. 그레이스의 집 벽엔 한 남자의 그림이 걸려 있는데, 마치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사람이 불쑥 등장하는 것처럼 그림 속 남자를 보여준다(사진 5-1).

'디 아더스' 사진 5-2

'디 아더스' 사진 5-2

이 신은 전쟁터에 나갔던 남편 찰스(크리스토퍼 에클레스턴)가 돌아오는 장면에서 반복된다. 안개 속에서 서서히 얼굴을 나타내는 찰스의 모습(사진 5-2). 그 유령 같은 등장은 이미 그림 신에서 제시되었다.

'디 아더스' 사진 6-1

'디 아더스' 사진 6-1

'디 아더스' 사진 6-2

'디 아더스' 사진 6-2

'디 아더스' 사진 6-3

'디 아더스' 사진 6-3

사진도 중요한 모티프다. 그레이스는 집에서 죽은 사람을 찍은 사진들을 발견한다. 영혼의 부활을 기원하는 미신의 결과물들이다. 그런데 이 사진들은 거울처럼 같은 이미지로 반복된다. 아이를 안고 죽어 있는 엄마의 모습(사진 6-1)은 바로 그레이스와 아이들의 모습(사진 6-2)이며, 그들은 엔딩 신에서 창틀의 프레임에 갇힌 사진 이미지가 된다(사진 6-3).

'디 아더스' 사진 7-1

'디 아더스' 사진 7-1

'디 아더스' 사진 7-2

'디 아더스' 사진 7-2

세 하인들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모두 죽은 자들인데, 사진 속 모습은 영화(사진 7-1)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된다(사진 7-2).

'디 아더스' 사진 8-1

'디 아더스' 사진 8-1

'디 아더스' 사진 8-2

'디 아더스' 사진 8-2

그레이스가 두 아이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습(사진 8-1)도 엔딩의 퇴마 의식(사진 8-2)에서 반복되는 장면. 한편 그레이스는 앤에게 성서를 소리 내어 읽게 하는데,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죽여 제물로 바치려는 대목이다. 이것은 그레이스가 자신의 아이들을 죽인 끔찍한 사건의 암시이자 반복이다.

거울 이외에도 커튼이나 문이나 빛과 어둠 같은 다양한 상징들이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텍스트인 ‘디 아더스’. 혹시 이번에 처음 접하며 반전에 놀라셨다면, 다시 한 번 보면서 이 영화가 지닌 풍부한 이미지와 의미들을 즐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글=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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