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영란법 1년]③김해 화훼 농가 "카네이션 등 꽃 대신 이젠 방아·토마토 키우죠"

중앙일보

입력

 지난 19일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 한 화훼농가. 5950㎡ 넓이의 비닐하우스에서 카네이션을 키우던 김진욱(54)씨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매출이 급감하자 자구책으로 절반의 비닐하우스에 꽃 대신 방아를 심었다.  송봉근 기자

지난 19일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 한 화훼농가. 5950㎡ 넓이의 비닐하우스에서 카네이션을 키우던 김진욱(54)씨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매출이 급감하자 자구책으로 절반의 비닐하우스에 꽃 대신 방아를 심었다. 송봉근 기자

지난 19일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 마산마을 인근의 한 화훼농가. 이곳은 원래 5950㎡ 넓이의 비닐하우스에서 카네이션을 키웠다. 결혼식 등 행사가 많은 5·10월은 화훼농가 최대 성수기여서 이맘때면 비닐하우스에 카네이션이 가득 들어차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날 찾아간 비닐하우스는 카네이션 향기 대신 음식 식재료로 사용하는 방아 냄새만 났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김해 화훼농가 직격탄 맞아 #농가들 자구책으로 방아와 토마토 등 채소와 과일 농사 함께 지어 #일부 농가는 공동 직판장 열어 판로 모색하기도 #김해시, 화훼소비 구조 바꾸기 위해 다양한 정책 내놓아

20년째 카네이션 등을 키워온 김진욱(54)씨는 “지난해 김영란법 통과 이후 지난 5월 학교 등에 꽃 사용이 크게 줄면서 카네이션 경매가가 50%(스탠다드 20송이 기준 2~3만에서 1만원대) 정도 떨어져 피해가 컸다”며 “그래서 경비는 줄이고 인건비라도 벌 생각으로 1800평 정도 되는 비닐하우스 중 절반에 이달 초부터 방아를 심었다”고 말했다. 카네이션 등 화훼는 모종값·유류대·거름 등 비용(전체 매출액에 20~40%)이 많이 들어가는 반면 방아는 모종만 사와 1~2개월 정도 키우면 곧바로 상품으로 출하가 가능하다.

 김진욱씨가 방아를 키우는 비닐하우스 인근에 있는 또 다른 비닐하우스에서 자신이 키우는 국화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김진욱씨가 방아를 키우는 비닐하우스 인근에 있는 또 다른 비닐하우스에서 자신이 키우는 국화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김씨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연 2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내와 함께 아들(27)과 딸(26)을 키우며 큰 걱정 없이 살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부터 수입산 꽃이 점차 늘어나면서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실제 전국 카네이션 재배면적은 2010년 124.5㏊에서 2015년 76.8ha로 줄었다. 여기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직격탄을 맞으면서 최근에는 인건비도 건지지 못할 정도로 매출이 줄어 꽃 농사 일부를 채소 농사로 바꾼 것이다. 김씨는 “꽃 농사 안된다고 평생 해오던 것을 그만둘 수도 없고 먹고 살려면 뭐라도 해야지 싶어 방아 농사도 함께 짓고 있다”며 “큰 수익은 안 나더라도 이렇게라도 어려움을 극복해야지 뭐 별수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카네이션을 키우던 화훼 비닐하우스가 방아를 키우는 채소 비닐하우스로 바뀐 모습. 위성욱기자

카네이션을 키우던 화훼 비닐하우스가 방아를 키우는 채소 비닐하우스로 바뀐 모습. 위성욱기자

김영란법 통과 이후 화훼농가들이 자구책 차원으로 일부 시설 채소와 과일 등으로 품목을 전환하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한 때 500여 농가였던 김해 대동면 화훼 농가는 현재 250여 농가(김해 전체 360여 농가·180ha)로 줄었다. 이 중 10~20% 정도가 국화·거베라·장미·카네이션 등 꽃을 키우면서 딸기·토마토·파프리카 등을 함께 키우고 있다. 대동면을 비롯해 영남권 카네이션 화훼농가 300여곳 중 30~40%도 꽃과 시설 채소나 과일을 함께 키우고 있는 것으로 김해 대동화훼작목회는 파악하고 있다. 영남권 카네이션 화훼농가는 전국 카네이션의 70~80%를 생산하고 있다.

경남 김해시 불암동 영남화훼공판장에서 경매가 벌어지는 예전 풍경. 김영란법 시행 이후 꽃 가격도 하락했지만 소비가 줄면서 나오는 물량들도 크게 줄어들었다. [중앙포토]

경남 김해시 불암동 영남화훼공판장에서 경매가 벌어지는 예전 풍경. 김영란법 시행 이후 꽃 가격도 하락했지만 소비가 줄면서 나오는 물량들도 크게 줄어들었다. [중앙포토]

대동면 예안리 신안마을에서 2대째 거베라·카네이션·금오초 등 화훼 농사를 지어온 김종필(43)씨는 김영란법에 미리 대비한 경우다. 김씨는 6000여㎡에서 꽃을 키워왔는데 김영란법 시행한 달부터 절반 정도인 3000㎡의 비닐하우스에 딸기농사를 함께 짓고 있다. 김씨는 원래 1억5000만원대의 매출을 올렸는데 꽃과 딸기 농사를 함께 지으면서 꽃 수요가 크게 줄었어도 1억원대의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김씨는 “김영란법 통과 이후 꽃 가격 하락에 대비해 딸기 농사를 함께 지으면서 매출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며 “그런데 꽃 농사에 비해 과일 농사가 넘 어렵고 시간도 많이 들어 적응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에 이어 2대째 화훼농사를 짓고 있는 김종필씨가 김영란법 시행 직후부터 꽃을 키우던 비닐하우스 절반 정도에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김씨는 얼굴이 공개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위성욱기자

아버지에 이어 2대째 화훼농사를 짓고 있는 김종필씨가 김영란법 시행 직후부터 꽃을 키우던 비닐하우스 절반 정도에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김씨는 얼굴이 공개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위성욱기자

아예 꽃 농사를 포기한 경우도 있다. 김영란법 통과 이후 가장 큰 피해를 본 꽃작물 중 하나가 바로 난이다. 김해 대동면에는 원래 3개의 난 농가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1월 1만여㎡에서 호접난과 신비디움을 키우던 A씨(54)가 난 농사를 접고 잼·주스·와인 등에 사용되는 초크베리(Chokeberry)로 전업을 하면서 난 농가는 종적을 감췄다. A씨는 대동화훼농협 관계자를 통해 “난 농사 짓던 것은 생각도 하기 싫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보통 난은 3년간 키워 상품으로 판다. 그런데 A씨의 경우 마지막에는 자식같은 난을 헐값에 경매에 내놓았지만 이마저도 팔지못해 폐기처분해야 했다는 것이 농협쪽 설명이다. 대동 화훼농협 관계자는 “원래 이들 농가들은 주로 일본과 중국 등에 난을 수출했는데 수출 가격이 50%(절화의 경우 1송이당 4000~5000원에서 2000원대, 분화의 경우 3만원에서 1만 5000원대) 가까이 줄었다”며 “김영란법 통과 이후 국내 가격도 분화의 경우 1만원대까지 떨어지다 최근에는 7000원대로 경매가가 낮아져도 유찰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수요가 줄면서 가격이 하락해 판로가 막히자 김해지역 화훼농가들이 자발적으로 개설한 직판장 모습. [사진 김해분화생산자연합회]

김영란법 시행 이후 수요가 줄면서 가격이 하락해 판로가 막히자 김해지역 화훼농가들이 자발적으로 개설한 직판장 모습. [사진 김해분화생산자연합회]

이런 가운데 화훼농가가 직접 판로 개척에 나선 경우도 있다. 김해에 있는 다수 화훼농가들이 십시일반 출자금을 내 지난 3월 칠산서부동에 문을 연 ‘김해분화생산자연합회 직거래장(2800㎡)’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제철 꽃이나 난과 다육이 등의 각종 꽃 작물을 시중가보다 싸게 판다. 생산자는 제값을 받고 꽃을 파고 소비자는 싸게 사니 모두에게 이득이다. 국화 농사를 지으며 직거래장 운영을 맡고 있는 김은환(60)씨는 “꽃 농가 등도 많이 어렵고 경기도 워낙 안좋다보니 애초 계획했던 것 만큼 생산자의 참여나 소비자의 방문이 많은 것은 아니다”며 “그래도 김영란법 통과 이후 무엇이라도 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이 사업을 시작한 만큼 활성화 되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시는 화훼소비 구조를 바꾸는데 앞장서고 있다. 김해시는 지난 2월부터 시청 각 부서 직원들의 자리마다 꽃이나 화분을 놓는 ‘1테이블 1플라워’ 운동을 시작했다. 시장 명의로 관내 기업과 관공서 등에도 협조 공문을 보내 이 운동에 동참을 요청했다. 석동원 과장은 “그동안 꽃이 대부분 경조사나 선물용으로 85%, 가정이나 사무용이 15% 정도가 소비되다 보니 김영란법 통과 이후 수요가 크게 줄어들어 화훼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며 “개인들이 집이나 사무실 등 생활속에서 사계절 내내 꽃과 화분을 즐기는 문화를 확산해 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으로 보고 이같은 정책들을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김해=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