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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 문학

시인과 소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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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황현산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황현산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시인들을 제외하면 소설가들이 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1821~1867)는 사실주의에 대해 자주 불평을 늘어놓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소설과 소설가들에 대한 불평이었다. 소설과 시는 글쓰기의 발상법이 다르다. 소설은 아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지만 시는 반드시 정확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시와 소설은 각기 글쓰기의 다른 측면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경자의 『시인 신경림』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시인 평전은 소설가들의 손에서 나오곤 한다. 송우혜가 쓴 『윤동주 평전』이 그중 한 권이고, 나머지 한 권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이경자의 『시인 신경림』이다.

신경림 시인의 생애가 특별히 파란만장한 것은 아니다. 1935년 4월 충북 충주의 제법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6·25 동란에 의해 투기성 사업을 하던 아버지에 의해 장차 몰락하게 되는 집의 장남이었다. 그 나이 또래 한국의 많은 지식인처럼 가정교사로, 아르바이트로, 때로는 장돌뱅이로 한국 천지를 누벼야 했던 대학생 시절부터 숱한 고난을 겪어야 했다. 신경림 시인을 우리 시대 민주시인으로, 마침내는 ‘시인’으로 키운 것도 이때다.

한국인의 아픔을 따듯하게 어루만져 온 신경림 시인. 가난한 사랑 노래를 불러 왔다. [중앙포토]

한국인의 아픔을 따듯하게 어루만져 온 신경림 시인. 가난한 사랑 노래를 불러 왔다. [중앙포토]

이 고난은 소설가의 직접적 서술보다 평전 중간중간 적절하게 배치된 시편에 의해 더욱 잘 드러난다. 이를테면 제1부 ‘신응식의 시간들’에는 기고만장했지만 실제로는 초라했던 아버지의 초상을 그린 시 ‘아버지의 그늘’이 나온다. (※신응식은 시인의 할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이다.) 또 마지막 7부 ‘우리가 지나온 길에’서는 지난겨울 광화문의 촛불혁명을 다룬 시 ‘별이 보인다’가 등장한다. 평전 속의 시들은 서사를 보충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서사를 촉발하고 확장한다.

신경림 평전에는 이런 책에 자주 나오기 마련인 각주나 미주 같은 것이 전혀 없다. 단지 한 사람의 생애와 이야기와 그 예술이 거기 있다. 시인은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살고 있다. 최근에 성북문화재단은 신경림문학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시인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이 계획은 무산됐지만, ‘시인의 집’을 세우고 거기에 신경림 선생의 방 하나를 마련하자는 안에는 어쩔 수 없이 찬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북구의 솔샘 골짜기에 한국시의 메카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창밖에 쌓이는 것을 내어다보며/ 그는 귀엽고 신비롭다는 눈짓을 한다. 손을 흔든다./ 어린 나무가 나무 이파리들을 흔들던 몸짓이 이러했다.’ 신경림의 시 ‘유아’의 첫 연이다. 신비로운 것은 어디나 있다. 그러나 여린 것들만 신비로운 것을 알아본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