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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사립유치원 집단휴원 파동이 남긴 숙제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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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17일 휴업을 최종 철회하면서 18일 보육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18일 휴업을 강행한 사립유치원은 '0곳'이다. [연합뉴스]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17일 휴업을 최종 철회하면서 18일 보육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18일 휴업을 강행한 사립유치원은 '0곳'이다. [연합뉴스]

 주말 내내 학부모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사립유치원들의 집단휴업이 철회되면서 18일 보육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교육부는 이날 “휴업을 강행한 유치원은 전국에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교육부 “18일 휴업 유치원 한곳도 없어” #사립유치원, 휴업 소동으로 여론 뭇매 #사립유치원의 요구도 대부분 지지 못받아 #국공립 유치원 증설 필요성만 더 부각 #하지만 국공립유치원 증설 계획 아직 미정 #교육부 “이르면 10월 국공립 확충 계획 발표” #저출산 여파 속에 기존 사립 어려움 불가피 #전문가들 “사립유치원 퇴로 마련 등 대책 필요”

 이처럼 사립유치원 집단휴업은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이번 파업을 주도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측의 요구사항이 단 하나도 관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유총은 정부에 ▶국공립 유치원 확대 중단 ▶사립유치원 학부모 지원금 인상 ▶사립유치원에 대한 지나친 감사 중단 등을 요구해왔다.

 한유총이 집단휴업까지 들고 나온첫번째 이유는 현재의 국공립 유치원 취학률을 현재 25%에서 2022년까지 40%로 확대하겠다는 교육부 계획때문이다. 사립유치원 입장에서는 저출산으로 원아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공립유치원이 더 많아지면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경기지역 사립유치원의 한 원장은 “현재도 국공립유치원 추첨에서 떨어진 애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사립유치원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데 국공립유치원이 더 늘어나면 누가 사립유치원으로 오겠느냐.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사립유치원들은 국공립유치원 확대 정책을 철회하고, 사립유치원 누리과정 지원금을 국공립수준으로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유총은 국공립유치원에 다니는 원아 한 명에게 주는 지원금이 매월 98만원인 반면 사립유치원이 받는 액수(매월 29만원)는 턱없이 적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유경 교육부 유아정책과장은 “국공립유치원 지원비는 시설비, 교사 인건비 등 운영 전반의 예산을 합친 액수라 이 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학부모 입장에서는 시설이나 교육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국공립 유치원을 선호하고 있어 이를 확대하지 말라는 사립유치원의 요구는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설립자의 재산권을 인정하고 지나친 회계 감사를 중단하라는 요구도 논란이다. 한유총이 문제를 삼는 것은 교육부가 이달부터 적용한 사립유치원 재무회계규칙이다. 여기에는 유치원을 사립학교처럼 여겨 회계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립유치원 설립자는 유치원이 사유재산을 들여 설립한 개인 재산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만큼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론도 대체로 사립유치원에 우호적이지 않다.

18일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정치하는 엄마들’이 주최한 정부-한유총 졸속합의 우려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이날 국공립 확대, 사립 공공성 강화, 당사자 참여보장 등을 요구했다.[조문규 기자]

18일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정치하는 엄마들’이 주최한 정부-한유총 졸속합의 우려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이날 국공립 확대, 사립 공공성 강화, 당사자 참여보장 등을 요구했다.[조문규 기자]

 결과적으로 한유총은 이번 오락가락 행보로 학부모의 불신을 자초하고,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동력마저 잃어버리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공립유치원 확대에 반대해 휴업을 선언했지만 거꾸로 ‘국공립을 늘려야 한다’는 여론만 불러일으킨 셈이 됐기 때문이다. 6세 딸을 키우는 직장맘 이모(38·서울 목동)씨는 “국공립유치원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모든 사립유치원을 국공립유치원으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과연 계획대로 국공립유치원을 확대할 수 있느냐 여부다. 교육재정 전문가인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국공립유치원 신·증설에 5년 간 3조3900억원이 든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교육부는 아직까지 재원조달 방법은 물론 구체적인 계획도 마련하지 않은 상황이다. 하유경 교육부 과장은 “중장기 계획은 현재 정책 연구 중이다. 10월~11월까지 2018학년도 국공립유치원 확충 기본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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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은 보다 원활하고 효율적인 유아교육정책을 위해서는 사립유치원과의 소통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공립유치원 확대 기조는 유지하되, 사립유치원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그에 맞게 적절한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는 “과거 사립유치원이 정부를 대신해 유아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들을 무조건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아붙일 게 아니라 사립·국공립유치원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공립유치원이 확대되면 자연스레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사립유치원들의 퇴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에서 유치원을 운영 중인 한 원장은 “현재 사립유치원은 전국 유치원의 75%를 차지하고 있는데, 국공립유치원 비율이 40%로 늘면 사립유치원 중 15%는 문을 닫아야 한다”며 “이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하유경 교육부 과장은 “국공립유치원 확대에는 사립유치원 공영화도 포함돼 있다. 내년부터 일정 기준을 통과한 유치원 중 희망하는 곳을 대상으로 공영유치원 형태로 전환하는 정책을 시범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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