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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화재 소방관 2명 매몰돼 숨져…정년 1년 앞둔 베테랑, 임용 8개월 새내기 소방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7일 강원 강릉시 강문동 석란정에서 발생한화재 현장. [사진 강원소방본부]

17일 강원 강릉시 강문동 석란정에서 발생한화재 현장. [사진 강원소방본부]

“퇴직하면 가족여행을 많이 다니자고 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 가실줄 몰랐습니다.”

이영욱 소방위, 이호현 소방사 17일 강릉 석란정 화재 진압 중 숨져 #이 소방위 "정년 1년 앞둔 모범 소방관", 20대 이 소방사 지난 1월 첫발 안타까움 더해

17일 오후 강원 강릉시 강릉의료원 장례식장. 빈소를 지키던 고 이영욱(59) 소방위의 아들(36)은 “아버지는 29년 동안 소방관으로 근무하면서 쉬는 날에도 가끔씩 소방서에 들러 후배들에게 화재 진압 요령이나 노하우를 알려주는 등 사명의식이 투철하셨다”며 울먹였다. 강릉소방서 경포119안전센터 소속 화재진압팀장인 이 소방위와 동료 고 이호현(27) 소방사는 이날 새벽 강원도 강릉시에서 발생한 화재 진압에 나섰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숨졌다.

고 이영욱 소방위와 이호현 소방사의 빈소가 마련된 강릉의료원 합동분양소. [사진 강원소방본부]

고 이영욱 소방위와 이호현 소방사의 빈소가 마련된 강릉의료원 합동분양소. [사진 강원소방본부]

두 소방관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강릉의료원 장례식장은 유족과 동료들의 눈물로 가득했다. 이 소방사의 아버지 이광수(57)씨는 “소방관이 천직이라며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운동을 했던 아들이 붕괴 사고를 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했다.

강원소방본부에 따르면 이 소방위와 이 소방사는 이날 오전 4시 29분쯤 강릉시 강문동 석란정에서 난 불을 끄다 정자가 무너지는 바람에 잔해에 매몰됐다. 두 소방관은 20여분 만에 구조됐으나 병원 치료를 받다 숨을 거뒀다.

이영욱 소방위

이영욱 소방위

이 소방위는 퇴직을 1년여 앞둔 베테랑 소방관이었다. 91세 노모를 모시며 아내(56), 아들과 함께 생활해왔다. 1988년 서울 성동소방서에서 소방관 생활을 시작해 95년부터 강릉소방서에서 일해왔다. 2014년 겨울 폭설 대책 유공자로 선정돼 강원도지사 표창을 받는 등 모범적인 소방관이었다고 동료들은 전했다. 지난 7월부터 경포119안전센터 화재진압 팀장을 맡았다.

이호현 소방사

이호현 소방사

이 소방사는 지난 1월 임용된 새내기 소방관이다.  부모와 여동생(26)과 함께 생활했으며 미혼이다. 강원도립대 소방환경방재학과를 나온 그는 소방관이 꿈인 청년이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하고 지난해 2월 졸업 후 소방관 시험에 합격해 6개월간 소방학교에서 기본교육을 받았다. 경포119안전센터가 첫 근무지다. 임용한 지 8개월만에 사고를 당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당시 화재는 경포119안전센터 소방관 4명이 진압에 나섰다. 센터에서 가장 고참인 이 소방위는 새내기 소방관인 이 소방사와 한조로 근무했다. 이들은 정자 가운데서 잔불을 정리하다 참변을 당했다.

김남기 강릉소방서 예방계장은 “이 소방위는 정년을 앞둔 상황에서도 늘 화재 현장에서 먼저 뛰어들어 진압에 나서는 등 솔선수범하는 동료였다”며 “이 소방사 역시 성격이 밝고 적극적인 대원으로 이 소방위를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말했다.

강릉 석란정 화재. [사진 강원소방본부]

강릉 석란정 화재. [사진 강원소방본부]

최상규 경포 119안전센터장은 “두 소방관은 목재문화재 화재대응 절차와 붕괴위험에 따른 조치 등 표준작전절차(SOP)를 따른 것으로 알고 있다"며"다만, 목조건물은 ‘부지직’하는 소리 등 붕괴 전조 증상이 없이 갑자기 무너지고, 야간 상황이어서 갑작스런 붕괴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불이 난 석란정은 1956년 지어진 목조 기와 정자로 높이 10m, 면적은 40㎡다. 비지정 문화재로 강릉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주민들은 석란정 인근에 K호텔 공사가 시작되면서 건물에 금이 가는 등 안전이 우려되자 보강조치를 요구했었다. 정자에 생긴 금이 벌어지면서 지난 6월 파이프로 보강 작업을 하고 지붕에는 천막을 설치하는 등 조치가 이뤄지기도 했다.

대전대 이재오 교수(소방방재학과)는 “목조건물은 불이 순식간에 옮겨붙어 삽시간에 타버리는데다 금방 무너지는 특성이 있다”며 “이런 건물 화재 진압을 하려면 건물 내부로 진입하지 말고 화재가 더 커지는 것을 막는데 주력하고 적극적인 화재 진압활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원 강릉 석란전 화재. [사진 강원소방본부]

강원 강릉 석란전 화재. [사진 강원소방본부]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서 붕괴 사고로 숨진 사건은 이번 만이 아니다. 2001년 3월 서울 홍제동에 위치한 연립주택 건물이 무너지면서 소방공무원 6명이 숨졌다. 2008년 8월 서울 대조동 나이트 클럽화재 당시 천장이 무너지면서 소방관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간 화재진압이나 구조활동 등을 하다가 현장에서 숨진 소방관은 모두 49명이다.

소방당국은 순직한 두 대원을 1계급 특진 추서하고 국가유공자 지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영결식은 19일 강릉시청 대강당에서 열린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떠난 분들을 기억하며 남은 이들의 몫을 다하겠다”며 “국민 모두의 안전을 위해 한시도 방심하지 않겠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천붕과 참척의 아픔을 겪은 유가족에게 마음을 다해 위로의 말씀 드린다”며 두 소방관을 애도했다.

강릉·세종=최종권·김방현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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