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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재무부도 혀 내두른 북한의 선박 위장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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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장. 마셜 빌링슬리 재무부 테러ㆍ금융정보 담당 차관보가 위성사진과 지도를 슬라이드 화면으로 보여주며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석탄 밀수출을 돕고 있다고 비판했다.

 12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 석탄 밀수출 증거를 설명하고 있는 마셜 빌링슬리 미 재무부 테러ㆍ금융정보 담당 차관보. [A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 석탄 밀수출 증거를 설명하고 있는 마셜 빌링슬리 미 재무부 테러ㆍ금융정보 담당 차관보. [AP=연합뉴스]

 미 정보 당국이 포착한 '바이 메이 8'이란 이름의 선박은 카리브 해의 세인트키츠네비스 국기를 달고 러시아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트랜스폰더'(배의 위치를 알려주는 무선 신호기)를 끄고 북한으로 가 석탄을 실었다. 북한을 빠져나온 뒤 트랜스폰더를 켠 이 배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하루 정박한 뒤 중국으로 가 석탄을 하역했다.
 빌링슬리 차관보는 “파나마 국기를 단 '선 유니언호'와 자메이카 국기를 단 '그레이트 스피링호' 두 척도 북한에서 러시아로 석탄을 옮기는 것을 돕고 중국으로 돌아갔는데, 북한이 선박의 정체를 조작한 것”이라며 “명백한 제재 회피"라고 주장했다. 공화당 테드 포 의원은 “몇 년 간 우리는 북한 김씨 일가에 놀아났다"고 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오지 근무 교원 축하모임에 참석해 교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오지 근무 교원 축하모임에 참석해 교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새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국제사회가 압박하고 있지만, 북한의 불투명한 선박 교역 네트워크가 경제를 유지해 주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3일 보도했다.
 북한 국적으로 의심되는 선박 수백 척이 홍콩에 기반을 둔 유령 해운회사들에 의해 소유·운영되고 있으며, 국기를 바꾸거나 소유권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경제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니콜라스 에버스타트는 “거미줄처럼 얽힌 선박 교역 네트워크가 북한의 무역과 통화의 균형을 유지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수년 전 베트남 국기를 달고 있는 돌핀26호의 모습. 이 배는 소유주와 배 이름을 자주 교체했다. [마린 트래픽, FT 캡처]

수년 전 베트남 국기를 달고 있는 돌핀26호의 모습. 이 배는 소유주와 배 이름을 자주 교체했다. [마린 트래픽, FT 캡처]

 FT는 홍콩회사 유니언 링크 인터내셔널이 소유한 '돌핀26호'가 대표적이라고 소개했다. 이 회사는 중국, 탄자니아, 팔라우 등 다양한 국기가 달린 소규모 화물선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선박정보시스템(Equasis)에 따르면 돌핀26호는 지난 8년 동안 소유주와 관리인이 6차례, 선박 이름이 3차례 바뀌었다. 달고 다니는 국기는 5년간 네차례 변했다. 이 회사가 관리하는 '오리엔탈 레이디호'도 2003년 이후 국기를 6차례 바꿨는데, 두번은 북한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과정을 밟으면 선박의 배후와 활동을 추적하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한다.
 미국 안보분야 연구기관인 C4ADS는 북한과 연계된 사업을 하는 248개 해운회사 중 160곳이 홍콩에 등록돼 있다고 발표했다. 이 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회사는 선박의 국기를 자주 바꾸며, 자산이 없는 껍데기 뿐인 유령회사를 설립해 등록하는 방식으로 실제 소유주를 가리고 있다.
 유니언 링크의 ‘바지 사장' 역할을 맡다 최근 그만둔 지 퀀은 FT와 중국 다롄에서 만나 “지난 2월까지 북한 고객과 연계된 일을 했는데, 북한 회사를 돕는 게 불법인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홍콩에선 자산이 없어도 회사를 등록할 수 있어서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된 작은 선박 회사들이 여럿 있었다고 지 퀀은 말했다.
 돈을 받고 명의만 만들어주는 회사가 많아지면서 같은 주소에 등록된 선박 회사도 여럿 확인됐다고 FT는 보도했다.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북한 전문가인 마르커스 노란드는 “북한 국기를 단 노후 선박들은 단속의 타깃이 되기 때문에 점점 북한 교역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고, 동남아나 아프리카 국기를 단 선박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선박 네트워크 때문에 유엔 안보리가 금수 물품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에 대해 검색이 가능하게 한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단속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AP=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AP=연합뉴스]

유엔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로 활동했던 윌리엄 뉴콤 전 미 재무부 자문관은 “이 회사들이 정체를 숨기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 돈을 생각하면 북한에게 선박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빌링슬리 차관보는 북한이 제재를 피하기 위해 선박의 정체를 숨기는 기만적인 행위를 하는지 더 자세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청문회에서 “북한 선박에 보험을 제공하거나 유지 보수 등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며 돕는 측도 제재의 타깃으로 삼겠다"며 중국측을 압박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FT "8년간 소유주 6번, 이름 3번 바꿔 … 국기도 수시 교체" #北 연계 사업하는 248개 선박회사 중 160곳이 홍콩에 등록 #美 재무부 차관보, 의회 청문회서 선박 위성사진 등 공개 #"무선신호기 끄고 북한 들어가 석탄 싣고 중ㆍ러로 날라" #단속 피하려 동남아나 아프리카 국기 선호하는 추세 #美 "선박 보험, 유지 서비스 제공해도 재제" 중국 압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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