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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의 재발견] 김종관 감독의 손

중앙일보

입력

[매거진M] 김종관 감독은 20여 편의 단편과 ‘조금만 더 가까이’(2010) ‘최악의 하루’(2016)에 이어 세 번째 장편 ‘더 테이블’(8월 24일 개봉)을 내놓았다. 이 영화들엔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오래된 골목, 그 한구석에는 정갈한 카페가 있다. 여성 배우의 아름다운 클로즈업과 여백의 공간을 잡은 롱쇼트, 작은 떨림의 순간에 대한 포착…. 특히 ‘손’의 반복을 눈여겨볼 만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김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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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테이블’엔 사소하지만, 김종관 감독의 작품을 꾸준히 본 관객이라면 조금은 특별하게 받아들일 장면이 있다. 경진(정은채)과 민호(전성우)가 만나는 시퀀스다. 그들은 과거에 단지 세 번 만났던 사이다. 그런데 남자가 갑자기 몇 달 동안 여행을 떠나면서 연락이 끊겼다가, 오늘 네 번째 만나게 되었다. 당연히 경진은 화가 나 있고, 민호는 풀어 주려고 한다. 마음이 불편한 경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민호는 잡는다. 이때 민호의 손이 경진의 손에 살짝 닿는데(사진 1-1), 민호는 그 접촉마저 미안한 듯 손을 뗀다.

김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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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은 두 사람. 민호는 그제야 좀 더 진솔한 이야기를 내놓는다. 그리고 갑자기 경진의 손을 어루만진다(사진 1-2). “손도 다시 잡고… 좋네요.” 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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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감독의 영화에서 손은 관계다. 첫 장편인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 영수(오창석)와 세연(염보라)의 러브신은 그래서 인상적이다(이 장면은 손으로 시작해서 손으로 끝난다). 방에서 파티가 끝난 후, 파티 멤버였던 후배 세연이 다시 돌아온다. 고백을 위해서다(흥미로운 건 세연의 등장을 문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아니라, 세연의 손 클로즈업(사진 2-1)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영수는 커피를 주는데, 이때 세연은 살짝 손을 피한다(사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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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은 육체적으로 점점 가까워진다. 하지만 영수는 세연을 손으로 어루만질 뿐(사진 2-3) 육체관계엔 서툴며 거칠다. 점차 세연이 주도하는데, 이때 세연은 영수에게 핸드플레이를 해준다. 그렇게 첫 관계는 끝나고, 영수는 세연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갠다.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은 모두 손으로 표현되는 셈이다.

김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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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최악의 하루’도 마찬가지다. 은희(한예리)는 현오(권율)와 있을 때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다. 그다지 좋지 않은 그들의 관계다. 그러다 우연히 운철(이희준)을 만나는데, 카페에서 그들의 과거를 떠올릴 때, 마치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는 매개체처럼, 손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운철은 손을 조용히 내밀고(사진 3-1) 은희의 손은 망설이는 듯하다(사진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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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플래시백은 그들의 키스로 끝나는데, 이때 두 사람은 서로를 손으로 감싸고 있다(사진 3-3).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은희는 현오든 운철이든, 자신의 손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길에서 처음 만난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에겐 아름다운 손동작의 춤사위를 보여주며(사진 3-4), 춤은 “몸으로 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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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통해 감정을 전하고 대사 이상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김종관 감독에겐 단편 시절부터 익숙한 것이었다. ‘영재를 기다리며’(2005)는 여자(하라다 카나)가 남자(김영재)를 기다리는 시간을 5분의 상영 시간에 담아낸다. 그녀는 추운 겨울 길 위에서 그를 기다린다. 도착한 남자는 여자의 손을 녹여 주려는 듯 손을 어루만진다(사진 4). 이때 내레이션이 흐른다. “기다리는 건 싫지만… 손을 잡아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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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이별을 담은 ‘길 잃은 시간’(2007)에서 그들은 손을 잡고 말한다. “잘 살아라.” “그래 너도 잘 살아라.” 그들은 그렇게 한 동안 손을 잡고 있다(사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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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디드’(2002)와 ‘사랑하는 소녀’(2003)는 마치 하나의 작품과도 같은데(후자는 전자의 확장이다), 여기서 남녀의 잡고 있는 손은 가장 중요한 이미지다. 두 영화엔 반복되는 신이 있는데, 횡단보도 장면이다. 남자와 여자는 손을 잡고 신호를 기다리는데(사진 6·7), 여자가 신발 끈을 묶는 동안 남자 혼자 길을 건너버린다. 손의 연결이 풀린 두 사람은, 마치 ‘길 잃은 시간’의 두 남자가 플랫폼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도로 양쪽에 마주 보고 서게 된다. 손이라는 믿음을 저버린 결과다.

‘사랑하는 소녀’에서 정선(홍윤정)과 종환(설창희)은 그렇게 서로 떨어진 후 다시 만나는데, 이때 정선은 종환에게 소리친다. “나 좀 혼자 두지 마, 제발!” 낙태 수술을 해야 하는 소녀와 연인인 소년. 손을 잡고 있는다는 건, 그들에겐 스킨십 이상의 거대한 의미다(이 영화는 몽타주 신을 통해, 손의 이미지가 이 영화의 모티브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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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그의 영화엔 기억에 남는 손들이 있다.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에서 첫사랑을 느끼는 소녀(정유미)의 머뭇거리는 두 손(사진 8), ‘누구나 외로운 계절’(2006)의 흰 담벼락과 여자(정보훈)의 담배 낀 손가락(사진 9), ‘최악의 하루’에서 료헤이와 은희가 헤어질 때 화면엔 은희의 손만 보이는 장면(사진 10), ‘더 테이블’에서 흩어진 꽃잎을 끌어 담던 혜경(임수정)의 손 동작(사진 11), ‘아카이브의 유령’(2014) 수록 단편 ‘옛날 영화’에서 영화 보는 노인의 주름진 손(사진 12)….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이런 작은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진 모자이크이며 정물화이다.

글=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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