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핵무기만 있으면 달러를 뺏을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고수석
고수석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핵·미사일 개발을 그만둘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어 보인다. 지난 7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에 이어 지난 3일 6차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핵·미사일 폭주를 이어가고 있다. 그저께 북한 정권 수립일(9·9절) 69주년을 맞아서도 추가 도발이 우려됐다. 기념일을 즈음해 도발해 온 북한이 지난해 9·9절에 5차 핵실험을 감행했듯이 올해도 도발이 예상됐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추가적인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이 예고돼 있고, 다음달 10일 당 창건 72주년을 한 달 앞두고 있어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은 핵·미사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할 때 미국의 핵 위협을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첫 번째 이유는 아니다. 북한이 내세우는 첫 번째 이유는 핵·미사일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가장 큰 애국유산이라는 것이다.

김정일은 1990년 1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권총과 미국 달러 다발을 테이블에 놓고 “어느 것을 고르겠냐”고 물은 적이 있다. 참석한 간부들은 둘로 갈렸다. 한쪽은 ‘달러가 있으면 권총을 살 수 있다’며 달러를, 다른 쪽은 ‘권총만 있으면 달러를 빼앗을 수 있다’며 권총을 골랐다. 김정일은 권총을 고른 쪽을 가리키며 “맞다.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 대답”이라며 “우리가 경제 건설을 희생해서라도 핵·미사일을 만드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은 이런 김정일의 선택을 계승해 완성하려고 한다. 김정일은 김일성 생일 100주년이 되던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고 다짐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강성대국은 사상·정치·군사·경제적 강국 건설을 말한다. 김정은은 아버지가 열지 못한 ‘강성대국의 대문’을 2019년까지 핵·미사일을 실전에 배치한 이후 경제 건설에 매진해 열겠다고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은 핵·미사일 개발에 눈을 떼지 않고 있다. 고모부 장성택의 처형도 경제 건설을 위해 핵·미사일 개발의 동결을 생각하는 세력들에 대한 경고였다. 김정은은 ‘핵·미사일로 달러를 빼앗을 수 있다’는 김정일의 선택을 믿고 따르고 있다. 북한은 국가가 핵·미사일을 만들려는 의지가 있으면 반드시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돼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김정은의 선택을 멈추게 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국들도 마찬가지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20년 넘게 전 세계가 달라붙어 풀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제는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 자를지를 고민할 때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