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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을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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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영훈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서비스본부장
김영훈 디지털담당

김영훈 디지털담당

돈 좀 있다는 그는 요즘 비트코인을 사고 있다. 혹시나 해서란다. 한반도 긴장이 높아진 이후부터다. 불안감의 크기보다 더 관심이 간 건 그의 대응법이다. 비트코인을 안전한 자산 피난처로 여기는 생각 말이다. 가상 화폐를 실물 화폐보다 더 안전하다고 믿는다는 얘기다. 여전히 ‘사이버=신기루’라는 인식이 엄연할 걸 감안하면 놀랍다.

여유 있는 사람의 지갑만이 아니다. 벼랑에 선 난민은 이제 비트코인에 생계를 건다. 핀란드의 핀테크업체 모니는 비트코인을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카드를 서비스한다. 주요 고객은 유럽 전역으로 쏟아져 나오는 아프리카·중동 난민이다. 국적에 관계없이, 신원 증명서가 없어도 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줄이 실물 화폐가 아니라 가상화폐란 얘기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 변화를 보면 생뚱맞은 얘기일 수 있다. 두세 배 상승이 우습다가도 단번에 폭락하는 게 비트코인 값이다. 안전 자산은커녕 투기 대상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도 비트코인 자체의 불안에 규제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비트코인의 불안은 오히려 현실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 지정학적 위기, 아프리카의 내전 등이다.

사실 출생부터가 그랬다. 비트코인은 2008년 생겼다. 세계 금융위기 와중이었다. 각국 정부는 돈을 찍어내 돈의 위기를 막았다. 망해 가는 금융사를 살리느라 세금을 퍼부었다. 열심히 저축한 서민의 돈 가치는 떨어졌다. 막대한 세금이 구제금융에 쓰였다. 관리자로서 공적 권한을 행사했던 정부, 중개자로서 돈을 번 금융사가 이용자에게 덤터기를 씌운 것이다. 비트코인은 이에 대한 무정부주의적 저항이다. 중앙집권이 아닌 분산, 중개 없는 1대 1 거래를 기반으로 한 전자화폐라는 구상의 실현이 곧 비트코인이다. 정보를 한 곳으로 모아 관리하지 않고 조각으로 쪼개 수많은 사람이 보관함으로써 해킹 위험에 대처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뒤를 받쳤다.

비트코인에 대한 당장의 규제는 속는 사람이 없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있다. 대박을 노리며 수작을 걸고 있는 자금이 있는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멀리, 더 넓게 보는 눈도 필요하다. 정책의 초점을 투기 방지에만 두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의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부동산을 투기 문제로만 보면 해결이 안 되는 이치와 같다. 비트코인 인기는 균형자이자 관리자로서 국가 역량에 대한 경고다.

다른 측면에서 비트코인은 대전환의 전조일 수도 있다. 상거래의 기본인 돈도 중앙집권이 아니라 네트워크 기반의 분산형 모델로 갈 수 있다는 예고편이다. 가상화폐를 대하는 금융 당국의 자세가 규제여서만은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영훈 디지털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