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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특수학교 세우려고 장애인 부모가 무릎 꿇는 현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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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신설하는 문제로 지난 5일 지역주민과 학부모들이 충돌했다. 이날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인 부모 20여 명이 무릎을 꿇고 “장애아들도 학교는 가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눈물로 호소했다.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반발의 주원인이었다. 무릎 꿇은 장면이 SNS를 통해 확산하면서 사회에 만연한 장애인 혐오의 민낯이 또 한 번 드러났다.

‘내 땅에는 안 된다’는 이러한 님비(NIMBY) 현상이 표출될 때마다 흔히 주민의 이기심을 탓하곤 하지만 주민만 뭐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역구 의원이 지난해 총선 전에 약속한 국립 한방병원 대신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주민의 낭패감도 적잖을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을 이웃으로 둘 수 없다는 삐뚤어진 행태도 이 지역만이 아니다. 서울 시내에 특수학교가 들어선 것은 이달 초 강북구 효정학교를 제외하면 2002년 종로구 경운학교가 마지막이었다.

우리 서민과 중산층은 그 어느 나라보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고단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 장애인이나 저소득층, 다문화 가족에 대한 이웃의 배려가 선진국 문턱에 접어든 나라치고는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러잖아도 장애인은 사회 여러 영역에서 차별받고 있는데 교육 기회마저 온전히 얻지 못해서는 곤란하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덕심에 호소하는 효과가 당장 적다면 이기심을 전제로 특수학교 님비 현상을 완화하는 시도를 한번 해 볼 필요가 있다. 2013년부터 가양동 특수학교 신설을 추진해 온 것은 서울시교육청이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강서구의회가 나서면 어떨까 싶다. 특수학교 설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은 해당 기초자치단체의 ‘구민(區民)’ 민주주의다. 필요하다면 구민 대상 여론조사를 넘어 구민 투표를 실행할 법적·제도적 수단을 마련해 주민자치 거버넌스의 싹을 틔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