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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경기 만에 승리 따낸 로치 "승리의 기쁨 잊을 뻔"

중앙일보

입력

"정말 오래 걸렸다."
7일 서울 잠실구장 3루 더그아웃에서 만난 kt 투수 돈 로치(28)의 표정은 밝았다. 무려 20경기 만에 승리를 따낸 전날 경기 여운이 남아있는 듯 했다.

kt 외국인투수 돈 로치. [사진 kt 위즈]

kt 외국인투수 돈 로치. [사진 kt 위즈]

kt는 지난 시즌 뒤 로치 영입을 발표하며 "2선발급"이란 표현을 썼다. 28살의 젊은 나이지만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뛴 선수이기 때문이다. 2008년 LA 에인절스에 지명된 로치는 2014년 처음 빅리그를 밟은 뒤 3년 동안 빅리그와 마이너를 오갔다. MLB에선 거둔 성적은 21경기에서 3승1패 평균자책점 5.77. kt가 구단 역사상 최고인 85만 달러(약 10억원)를 안긴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프로야구 최다 15연패 위기 벗어난 kt 로치

출발은 좋았다. SK와 개막전 선발로 나선 로치는 6이닝 2실점하고 데뷔 첫 등판을 승리로 장식했다. 이후 두 차례 등판에선 7이닝 2실점(삼성), 5이닝 5실점(2자책·넥센)하고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4월 19일 수원 KIA전에서 7이닝 1실점하고 시즌 2승째를 올렸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로치는 이후 140일 동안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19번의 등판에서 승리 없이 14개의 패전만 기록했다.

로치의 평균자책점은 5.04다. 규정이닝의 70% 이상을 던진 42명 중에서 33위다. 홈런과 삼진 등 수비와 관계없는 기록만으로 계산하는 FIP(수비무관자책점)도 5.40으로 좋은 편은 아니다. 24번의 선발 등판 중 5회를 못 넘기고 교체된 건 1번 뿐이었다. 하지만 운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 소속팀 kt가 최하위긴 하지만 로치가 나올 땐 유독 타선이 터지지 않았다. 로치가 선발일 때 평균득점지원은 3.00점에 그쳤다. 42명 중 꼴찌다. 불펜진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로치가 남긴 주자 10명 중 7명이 홈을 밟았다.

로치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의 주인공이 될 뻔도 했다. 14연패를 기록해 장명부(삼미)가 세운 최다연패(15) 기록과 동률을 이룰 뻔 했다. 하지만 6일 수원 넥센전에서 로치는 드디어 악몽의 연패를 끊었다. 7이닝 7안타 2실점 호투를 펼쳐 140일 만에 시즌 3승째를 따냈다. 로치는 "오래간만에 이겨서 좋다. 이렇게 오랫동안 승리를 따내지 못한 건 야구 인생 처음이다. 승리의 기쁨을 잊어버릴 뻔 했다.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기도 했다"고 미소지었다. 그는 "등판 전엔 KBO리그 최단 연패 기록이 걸린 줄 몰랐다. 경기 뒤 피어밴드가 알려줬다"고 했다. 그는 "승리는 신나고 좋지만, 패배하면 끔찍한(terrible)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기지 못하는 것보다 지지 않는 게 내겐 더 중요하다"고도 했다.

로치의 주무기는 싱커다. 직구처럼 빠르게 날아오다 뚝 떨어져 땅볼을 유도하는 게 특기다. 하지만 로치 등판 때 수비가 흔들리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 로치는 "그런 부분에 대해선 생각을 안 하려고 했다. 나는 내 역할을 했고, 팀의 승리를 위해 던졌다. 동료들도 내게 승리를 안겨주기 위해 노력한 걸 안다"고 했다. 그는 "(연패가 길어져)자존감이 내려갈 수도 있었는데 투수로 한 단계 성장하고 발전한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올시즌 로치는 팔꿈치 통증으로 한 차례 로테이션을 걸렀을 뿐 큰 부상 없이 시즌을 마무리했다. 로치는 "오프시즌 동안 준비를 많이 했다. 특히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다. 덕분에 피로를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시즌 중에도 가벼운 웨이트트레이닝과 어깨 보강 운동을 열심히 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팔꿈치 통증을 처음 느꼈는데 잘 넘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로치는 올 겨울을 고향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낼 계획이다. 그는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운동센터에서 몸을 만들 계획이다. 메이저리거들도 운동하는 곳인데 스크럭스(NC)도 같이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로치는 "치어리더와 관중들이 다같이 노래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갈비나 불고기 같은 한국 음식도 좋았다"고 했다. 대화를 많이 나눈 동료로는 "포수 이해창과 박기혁, 고영표, 그리고 세미 수퍼소닉(semi supersonic·로치는 '수퍼소닉' 이대형에는 못 미치지만 잘생겼다며 엄상백을 이렇게 불렀다)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했다. 로치가 내년에도 한국에서 뛸 가능성은 냉정하게 높지 않다. 그렇지만 로치는 한국 생활과 팀에 대해 만족한다고 했다. "내년에도 kt에서 뛰고 싶냐고? 물론이다. 한국도, kt도 다시 오고 싶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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