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검사·면접 올인" 하반기 채용 준비하는 취준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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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신입직원 채용 설명회가 열렸다. 금감원은 이번 채용에서는 서류전형이 폐지하고 객관식 필기시험을 도입한다. 또 지난해 면접전형에서 적용했던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입사지원부터 전 과정으로 확대 실시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신입직원 채용 설명회가 열렸다. 금감원은 이번 채용에서는 서류전형이 폐지하고 객관식 필기시험을 도입한다. 또 지난해 면접전형에서 적용했던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입사지원부터 전 과정으로 확대 실시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필기에서 당락이 좌우될 것 같아서 NCS(국가직무능력표준) 시험과 적성검사에 ‘올인’했어요."

취업준비생 김모(24)씨는 올해 입사시험에서 자기소개서 작성보다 필기와 면접 준비에 집중하기로 했다. 학력·인적사항 등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이 올해 하반기 취업 시장의 대세로 떠오르면서 김씨처럼 입사 전략을 짜는 취준생들이 늘고 있다. 서류 통과 가능성이 높아진 기회를 살려보겠다는 생각에서다. 이달 주요 공공기관과 삼성 등 대기업의 서류 접수가 진행돼 필기나 면접 준비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7일 서울 영풍문고에 비치된 직무적성검사 수험서. 여성국 기자.

7일 서울 영풍문고에 비치된 직무적성검사 수험서. 여성국 기자.

인터넷 서점 YES24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NCS 관련 도서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7.9% 증가했다. GSAT(삼성그룹 적성검사) 등 대기업 적성검사 도서도 전년 대비 57.9% 판매가 늘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5만6650권이 팔린 NCS 수험도서는 올해는 8만4615권이 판매돼 49.4%(2만 7965권) 증가했다. 적성검사 교재도 같은 기간 5만7163권에서 6만7264권으로 1만권 이상 더 팔렸다.

실제로 지난 6일 서울 여의도에서 채용설명회를 실시한 금융감독원은 서류전형을 폐지하는 대신 객관식 시험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면접에서만 적용했던 블라인드 채용을 전 과정으로 확대한다는 게 금감원의 계획이다.

필기시험이 없거나 그 비중이 낮은 곳에 입사하려는 취준생들은 면접에 집중하고 있다. 금융권 준비생 김모(25)씨는 "금융권은 공기업보다 필기시험 경쟁이 덜 치열해서 면접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 스터디를 꾸려 세일즈 면접, 상황 면접, 압박 면접 등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준생들의 ‘필기·면접 올인’ 전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블라인드 채용이 형식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어서 ‘김칫국 마시기’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취준생 김기태(26)씨는 "지난해 블라인드 서류 전형에 합격해 한 식품대기업의 면접에 갔는데 면접장에서 종이를 나눠주며 부모님의 직업, 학력·주량까지 다 쓰게 했다. '이게 무슨 블라인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A씨는 "면접에 가면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를 다 제출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블라인드 채용의 혜택을 볼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지방국립대의 취준생 임모(26)씨는 “학교에서는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전형 단계가 올라갈수록 블라인드 항목들을 다 알게 돼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고 한숨지었다.

7일 서울 영풍문고에 비치된 직무적성검사 수험서. 여성국 기자.

7일 서울 영풍문고에 비치된 직무적성검사 수험서. 여성국 기자.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는 기업들이 새로운 평가 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취준생들에겐 부담스러운 현상이다. 일부 대기업은 블라인드를 조건으로 신사업 아이디어와 증빙 자료 등 까다로운 요구를 하기도 한다. 자동차 부품 대기업 현대모비스는 올해부터 ‘창의력 서술 평가’를 신설했다. 취준생 전모(27)씨는 “역사 에세이, 창의력 서술 평가 등 결국 취준생의 준비 부담만 매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블라인드 채용의 준비가 부족하면 취준생들의 혼란만 가중시킨다고 분석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블라인드 채용은 아직 구직자들이 예측가능한 전형으로 준비된 상태가 아니다. 기준과 요건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달 31일 '공공기관 채용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고'라는 보고서에서 “현재 공공기관의 역량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할 경우 청탁과 같은 부정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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