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대북 원유 중단 협조를” 푸틴 “민간 피해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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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과 러시아 정상의 눈높이는 여전히 달랐다.

북한 핵·미사일 대응 방식에 온도차 #문 대통령 “안보리 제재 강도 높여야” #푸틴 “북을 막다른 골목 몰면 안 돼” #연 4만t 대북 석유 수출 밝히기도 #트럼프 “한반도 우려” 시진핑과 통화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단독 회담과 오찬을 겸한 확대 회담까지 2시간42분에 걸쳐 정상회담을 했다. 지난 7월 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만난 이후 두 번째였다.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강한 제재와 압박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을 멈출 수 있는 지도자가 푸틴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인 만큼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멈추도록 두 지도자가 강력한 역할을 해달라”며 “특히 북한을 대화의 길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의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는 적어도 북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부득이한 만큼 러시아도 적극 협조해 달라”고도 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우리도 북한의 핵 개발을 규탄하고 있다”면서도 “북한은 아무리 압박을 해도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북한에 1년에 4만t 정도의 아주 적은, 미미한 석유를 수출하고 있고, 원유 (공급) 중단이 북한의 병원 등 민간에 피해를 입힐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유엔 안보리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 원유 공급 중단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이어진 공동 언론 발표에도 “한반도 사태는 제재와 압력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며 “감정에 휩싸여 북한을 막다른 골목에 몰면 안 되고, 철저히 냉정하게 긴장을 고조시키는 조치를 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뒤 “정치·외교적 해법 없이는 해결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러시아와 중국이 만든 ‘북핵 해법 로드맵’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지난 4일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중·러 외교부 한반도 문제에 대한 공동성명’을 내놓았다.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결단(핵과 미사일 도발 잠정 중단)→한·미 대규모 군사훈련 잠정 중단→동시 협상 개시→상호 원칙 확정(무력불사용, 불가침, 평화공존)→한반도 비핵화 실현(일괄타결)’의 단계적 로드맵을 담았다. 최종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 북·미, 북·일 간 관계 정상화도 포함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러시아가 제안한 로드맵을 북한이 진지하게 검토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이 도발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과 이어진 언론 발표 등에선 ‘제재’나 ‘압박’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그런 표현은 윤영찬 수석의 전언 형식으로만 공개됐다.

결국 두 정상은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거나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정도의 원론적 내용에만 의견 일치를 봤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은 확고부동하게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힘쓰고, 평화 안전을 수호할 것”이라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견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핵 해결은 평화적 방향으로, 오래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며 “이른 시일 안에 북핵 문제 해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허진 기자,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서울=박유미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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