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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지자체 85곳 30년 내 사라진다…전남, 소멸위험지역 첫 진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6년 충북 괴산군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120명이다. 사흘에 한 명도 안 된다. 군 단위 평균(355명)에 한참 못 미치고, 전체 인구 대비 출생아 수도 0.308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적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오랫동안 산부인과도 없었다. 그나마 보건복지부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에 선정된 지난해부터는 군내 한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분만 시설은 없다. 결국 출산을 하려면 인근 타 지역 병원으로 가야 한다.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박사 연구 #고령인구와 젊은 여성인구 상대비 따져 #지역별 소멸 가능성 판별해보니 #소멸 가능성은 경북 의성, 전남 고흥, 경북 군위 순 #부산·대구 등 광역시도 안전지대 아니야 #경북도청 소재지 안동도 소멸위험군에 포함

한산한 신생아실 / 강남성모병원=최승식

한산한 신생아실 / 강남성모병원=최승식

이런 지방자치단체가 한둘이 아니다. 전국 228개 지자체 중 3분의 1 이상은 30년 후 없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중앙일보가 단독 입수한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부연구위원의 연구 결과다. 이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으로 소멸위험지수가 0.5 미만인 지자체는 85곳에 이른다. 소멸위험지수는 고령인구(65세 이상) 대비 20~39세 여성인구의 비중을 말한다. 가임여성의 90%가 분포하는 20~29세 여성인구 비중에 주목한 지표로 이 부연구위원이 일본 마스다 히로야가 쓴 『지방소멸』에서 착안해 개발한 것이다.

고령화가 심각한 마을 중 한 곳인 충남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의 한 폐가. 서천=프리랜서 김성태

고령화가 심각한 마을 중 한 곳인 충남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의 한 폐가. 서천=프리랜서 김성태

이 지수가 1.5 이상이면 소멸 저위험, 1.0~1.5 미만이면 정상, 0.5~1.0 미만이면 소멸주의 단계다. 0.5 미만이면 소멸위험 지역으로 보고, 특히 0.2 미만인 곳은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한다. 이 부연구위원은 “소멸위험지수 1.0 밑으로 떨어지면 해당 공동체가 인구학적으로 쇠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라며 “소멸위험군에 속하는 지자체는 극적인 전환의 계기가 없다면 30년 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연구에 따르면 전국 전체 소멸위험지수는 2016년 7월 1.0이 됐다. 고령인구(A)와 20~39세 여성인구(B)의 숫자가 같아졌다는 의미다. 그리고 1년 새 0.95(2017년 7월)까지 떨어졌다. A는 늘고, B는 줄면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라남도는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소멸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전남은 젊은 여성인구 19만6000명으로 65세 이상 인구 40만5000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소멸위험지수가 0.48까지 떨어졌다.

나머지 광역자치단체도 안심할 수 없다. 비수도권의 모든 ‘도’ 지역이 소멸주의단계(1.0 미만)에 진입했고, 광역시 중에서도 부산(0.86)과 대구(0.92)가 1.0 아래로 떨어졌다. 소규모 지자체뿐만 아니라 광역 수준에서도 인구 감소 위험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정부 중앙부처가 밀집한 세종시는 급속한 젊은 인구 유입으로 광역 단위 중 유일하게 소멸 저위험 지역(1.5 이상)으로 분류됐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기초 지자체 단위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28개 지자체 중 소멸위험지역(0.5 미만)은 85개다. 이 부연구위원은 “5년 전인 2012년 7월보다 15곳이나 늘어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르다”며 “일부 농어촌 낙후지역뿐만 아니라 지방 대도시 권역으로 문제가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부산 동구(0.47)’와 ‘부산 영도구(0.46)’가 소멸위험 단계에 진입한 데 이어 올해는 경북 안동시(0.48)가 새로 포함됐다. 안동은 이전한 경북도청의 소재지다.

85곳 중 7곳은 소멸위험지수가 0.2 미만인 소멸 고위험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 의성군(0.158)이 가장 낮았고, 전남 고흥군(0.167). 경북 군위군(0.174), 경남 합천군(0.174), 경남 남해군(0.183) 등이 뒤를 이었다. 울산광역시 북구(2.034)는 전국 지자체 중 소멸위험지수가 가장 낮았다. 대전광역시 유성구(1.972), 경북 구미시(1.905), 경기도 오산시(1.878), 경기도 화성시(1.734) 등도 비교적 안전지대로 분류됐다. 주로 대규모 산업단지나 연구기관이 있는 곳이다.

소멸위험지역은 대체로 젊은 여성 인구의 유출이 가팔랐다. 소멸 저위험 지역은 2012~2016년까지 20~39세 여성인구 순유입률이 10.2%에 달했다. 그러나 소멸위험 단계에 진입한 지역은 같은 기간 동안 순유출율이 13.2%나 됐다. 낮은 출산율로 교육 기반 역시 붕괴되고 있었다. 2016년 소멸 고위험 지역의 초등학교 학생 수는 2011년 대비 23.7%나 감소했다.

교사 수와 학교 수도 각각 8.5%, 7.4% 줄었다. 이 부연구위원은 “지역 내 초등교육 기반의 붕괴로 교육 환경이 나빠지면서 자녀 교육을 위해 지역을 떠나는 현상이 뚜렷하다”며 “지방소멸과 교육소멸이 상승 작용을 하면서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멸위험이 높을수록 재정자립도 역시 낮았다. 85개 소멸위험 지차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16.6%로 정상 지역(39.1%)과 비교해 크게 떨어졌다.

이 부연구위원은 청년층이 지방을 떠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일자리 부족을 꼽았다. 그는 “한국 경제는 정보기술(IT)과 중화학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는데 IT는 서울·수도권, 중화학 제조업은 비수도권 일부 지역에 집중된 형태”라며 “최근 조선·철강·자동차 등 핵심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면서 비수도권의 고용위기가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4차 산업혁명 따른 기술 변화가 지방의 쇠퇴를 더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부연구위원은 “행정수도 이전이나 혁신도시 같은 인프라 중심의 균형발전만으론 한계가 있다”며 “서비스업 분야 중 가장 가파르게 일자리가 늘고 있는 ‘사회서비스업’ 분야를 육성하는 지역균형발전2.0 플랜을 세울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낙후지역이나 지방 중소도시일수록 복지 수요가 많다”며 “다양한 맞춤형 서비스를 확대하면 괜찮은 일자리 만들어낼 여지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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