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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라는 브랜드의 탄생, 소비되는 것은 문학만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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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호 26면

[CRITICISM] 문제적 캐릭터 작가의 등장

김영하

김영하

‘김영하의 소설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김영하라는 이름을 둘러싼 그 모든 이미지들이 ‘김영하’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낸다. 소비되는 것은 김영하의 소설 그 자체가 아니라, 김영하라는 캐릭터를 둘러싼 기호들이다. 이를테면 ‘김영하라는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라고 말해야 한다. 김영하라는 작가 캐릭터는 처음부터 특별한 데가 있었다. 진지함과 감동이라는 익숙한 코드 대신에 시니컬함과 위트, 트렌디한 소재와 장르적인 요소를 장착했던 그의 소설들은, 도시적이고 댄디한 작가적 이미지와 결합되었다.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말할 수 있는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태도의 과감한 표명은, 공동체적 가치에 짓눌려 있던 기성의 작가들에 비하면 신선한 것이었다.

TV 예능프로 입담, 박학 선보여 #라디오, 개인 팟캐스트도 진행 #‘문학적인 삶’의 다양한 문화확장 #최근 소설집 『오직 두 사람』 펴내 #7년 동안의 문학적인 변화 감지 #김영하의 본령은 소설임을 확인

책 속 언어와 저자 이미지 함께 소비

최근 김영하라는 브랜드는 다시 업그레이드 되었다. 이미 적지 않은 팬덤을 거느리고 있던 작가는 한 케이블 방송의 예능프로그램에 출현하면서 한 차원 높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게 된다. 김영하라는 브랜드는 이제 ‘입담’, ‘박학다식’ 등의 또 다른 상징 자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기네스’의 광고 모델이기도 하다. 작가 캐릭터의 확장은 몇 년 전부터 진행된 것이기도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과 개인 팟캐스트를 진행했으며, 자택 근처의 난개발에 대해 항의했고, ‘동물원법’을 발의한 국회의원의 후원회장이 되기도 했으며, 촛불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영하의 개인주의는 개인적인 것을 보호하기 위해 대중과 시장으로부터 스스로를 유폐시키지 않으며, 김영하의 자유주의는 미디어의 바다 위에서 유영한다. 이 풍부한 상징가치들을 ‘김영하의 문학’에서 제외시킬 수는 없다. 문학을 소비한다는 것은 책 속의 언어만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물질적 매력과 저자가 보유한 이미지를 함께 소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소비되는 것은 문학 그 자체가 아니다. 김영하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작가적 이미지의 다채로움은 한국문학장 안에서 문제적이고 흥미로운 사례이다.

최근작인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의 대중적 성공은 급격하게 확장된 대중적인 인지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작인 『살인자의 기억법』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개봉 역시 적절한 시점에서 대중적 관심을 높여줄 것이다. 미디어 노출의 정도가 문학시장에서의 성패를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필연적인 사태다. 종이책이라는 오래된 매체는 뉴미디어에 의해 자신의 대중적 지위를 빼앗겼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디어의 도움에 의지하여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 문명사적 전환의 사태를 개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런 상황을 단지 문학의 왜소화로 보기보다는 문학적인 경험과 소비의 다양화라고 역설적으로 말할 수 있다. 대중들은 ‘문학적인 것’을 단지 책 속의 언어가 아니라, 미디어의 이미지로 경험하고 소비한다. 작가가 출현하는 미디어를 접하고 작가의 낭독회에 참여하고 책의 이미지와 언어들을 SNS에 올리는 행위 등으로, ‘문학적인 삶’은 문화적으로 확장된다. 놀랍게도 문학적인 것은 증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처음과 끝이 책 속에 펼쳐진 문학의 육체로서의 언어에 있다는 점은 다시 환기될 필요가 있다. 김영하라는 브랜드의 풍부함을 소비하는 것과 함께, 김영하 소설의 내부에 대해서 섬세한 관심을 갖는 것은 김영하 문학을 향유하는 핵심적인 것이다. 7년 만에 발간된 소설집에는 7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의 문학적인 변화들이 감지된다.

케이블 방송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입담과 박학을 선보인 소설가 김영하. [중앙 포토]

케이블 방송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입담과 박학을 선보인 소설가 김영하. [중앙 포토]

소설집의 수록 작품 중에서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옥수수와 나」에서는 김영하의 전형적인 소설적 톤과 스타일을 만날 수 있다. 위트와 유머를 창작한 문장들과 대사들은 속도감과 가독성을 자랑한다. 작가인 ‘나’는 편집자인 전처로부터 원고 독촉을 받고 뉴욕에 있는 출판사 사장의 아파트에서 소설을 집필하게 된다. 주인공 작가는 이혼한 아내와 출판사 사장과의 관계를 의심하고, 어떻게 하면 사장을 골탕 먹일까를 친구와 상의하는 성숙하지 못한 인물이다. 소설이 성공해도 사장의 배를 불리고 소설이 성공하지 못해도 자신이 비웃음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작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출판 자본가에게 저항하려 한다. “난해하고 해체적이며 음란한 소설로 사장을 곤경에 빠뜨리기로” 작정한다. 뉴욕에 있는 사장의 아파트에서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인 사장 아내의 방문을 받게 된 ‘나’는 그 여자와의 환상적인 성적 관계를 통해 “문장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경험한다. 출판사 사장에 대한 작가의 적개심은 전처에 대한 질투심이라는 개인적인 층위를 넘어서, 자본과 시장에 대한 작가의 무의식적인 억압과 공포를 반영한다고 읽을 수 있다. 닭들이 작가를 옥수수로 알고 쫓아온다는 착란적인 공포에는 이런 사회문화적인 맥락이 포함된다. 남성 작가가 “신의 선물”인 “압도적인 미모의 여성”과의 성적 관계를 통해 소설쓰기의 에너지를 충전 받는다는 ‘남성 판타지’는 ‘우화’로 읽힐 수는 있으나, ‘젠더 감수성’의 관점에서라면 위태롭다고 할 것이다.

김영하 소설의 변화를 본격적으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수록작인 「아이를 찾습니다」와 「오직 두 사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물들의 불가역적인 불행을 통해 독자는 피할 수 없이 삶에 대한 서늘한 통찰과 윤리적인 질문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이를 찾습니다」에서 한 순간의 부주의로 아이를 잃어버린 젊은 부부의 삶은 완전하게 파괴된다. “무지는 인간을 암흑 속에 가둔다. 그들 인생에서 사라진 이삼 분이 그 암흑 속에 있었다”라는 문장처럼, 진실을 알 수 없는 ‘이삼 분’이 삶 전체를 무너뜨린다. 십일 년이나 지난 뒤 그들 부부에 아이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을 때, 그들의 삶은 이미 회복 될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다. 아내는 이미 미쳐 있었고, 남편의 삶은 한없이 피폐해져 있으며, 돌아온 아이는 자신을 유괴한 여자를 엄마라고 믿고 있었다. 아이는 돌아왔지만 삶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된다. ‘지옥’은 계속되며 다른 문제들이 추가 된다.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결승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라는 의문은, 인물들의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을 통해 독자가 직면하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정말 돌이킬 수 없으며, 새로운 불행은 언제나 다시 시작된다.

「오직 두 사람」은 친한 언니에게 보낸 편지의 형식으로 구성된다. 편지의 화자인 ‘나’의 고백적인 문장들은 딸과 아버지와의 특별한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단 두 사람만이 소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가 사소한 말다툼으로 의절하고 수십 년 후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사태와 같은 것이었다.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은 기이한 보편성을 갖는다. 아빠와의 지나치게 각별한 관계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중독’처럼 ‘나’의 삶 전체와 타인과의 관계를 규정해 버린다. 아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떠났지만 아빠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딸은 “내 삶의 커다란 결락, 더 심각한 중독은 아빠였다는 것”은 깨닫게 된다. 그 중독의 기원 중의 하나는 아빠와의 여행의 어떤 순간, “뉴욕에 있었던 그 두 사람, 오직 두 사람만이 느꼈을 어떤 어둠”의 경험이다. 소통은 단절되고 결국 사람은 돌아가지만, ‘오직 두 사람의 어둠’의 순간들은 ‘희귀 언어’의 흔적처럼 남는다. 소설은 어떤 또렷한 감동도 교훈도 없지만, 삶의 어두운 비의를 경험하게 만드는 영미 소설의 무심하고 매력적인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1인칭의 내면성과 ‘미문’의 아름다움을 비껴가는 김영하의 무감한 문장들이야말로, 유력한 세계 언어로의 ‘번역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블랙유머·경쾌함 사라져도 어쩔 수 없어

한 권의 책 안에서, 가령 「옥수수와 나」와 「오직 두 사람」 사이의 작가적 시간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시간의 속에서 저 유명한 블랙유머와 경쾌함이 사라졌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작가 개인에게는 길냥이 두 마리를 집에 들이거나, 집 앞의 언덕이 포클레인에 의해 짓밟히는 그런 사건들이 있었을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세월호’를 언급하기도 했지만, 어떤 사회적인 사건은 동시대의 모든 예술가들을 다른 차원으로 옮겨 놓는다. 근원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개인들의 사소한 오류와 돌이킬 수 없는 불행, 동시대의 환부에 대해 작가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어떤 수준의 스타시스템에 포함되건 김영하는 작가였고, 계속 작가일테니까 말이다.

이광호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문학평론가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학평론가. 고려대에서 박사(국문학)학위를 받았고 소천비평문학상·팔봉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비평집으로 『익명의 사랑』과 산문집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연구서 『시선의 문학사』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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