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첫 정기국회 맞은 정세균 국회의장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정기국회가 지난 1일 개회했다. 올해 정기국회는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출발했다. 당장 촛불정국에 이어 조기대선이 치러지면서 국회에서도 여야가 바뀌었다. 반면 여소야대와 다당제라는 한국 정치사에서 흔치 않은 구도는 지난해와 다를 게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입법전쟁이 예고되고 있듯 정치권의 해묵은 대립과 갈등도 그대로다. 그런 만큼 협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개헌과 민생이라는 두 가지 현안도 당면과제다.
권력구조 포함 개헌안 연내 확정 #여론 수렴 후 내년 5월 국회 의결 #대통령 권한 분산, 지방 분권 역점 #與 거수기, 野 발목 잡기 구습 벗고 #먼저 양보하는 게 협치의 출발점 #새 정부, 권위주의 답습 경계하고 #조금 더디더라도 정도 걸어가야
이처럼 복잡다난한 과제를 과연 올해 정기국회에서 얼마나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국회 수장으로서 여야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선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정기국회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협치와 개헌의 해법은 어떻게 찾아낼 것인지 들어봤다. 인터뷰는 정기국회 개회를 이틀 앞둔 지난달 30일 국회의장실에서 1시간10분간 진행됐다.
- 지난 1년을 되돌아보자면.
- “정말 역동적인 1년이었다. 다이내믹했달까, 다사다난했달까.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특히 국가적으로 대통령이 제 역할을 못하는 어려운 시기에 어깨가 굉장히 무거웠다. 국회의장으로서 권한은 없는데 책임은 막중한 상황이었다. 사실 지난해 탄핵안도 의석 구조상 가결될 수 없는 구조였다. 바른정당이나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로서는 눈감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너무 질서정연하게 3분의 2 이상 탄핵안에 찬성하며 무혈혁명을 이뤄낸 데 대해서는 우리 국회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세계 의회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거다.”
- 여소야대 다당제하에서 협치가 화두인데.
- “그동안엔 사실상 양당제를 하다가 이젠 5당 체제가 되지 않았나. 원내교섭단체만 4개다. 협치가 안 되면 여당도, 야당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전대미문의 정치 실험이 진행 중인 셈이다.”
- 협치가 잘 안 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 “무엇보다 여당은 정부의 거수기가 되면 안 된다. 야당도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구습을 버려야 한다. 이걸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여야 모두 필요하다. 내가 먼저 양보하는 게 협치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이게 가능하려면 공천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각 당 원내지도부도 신념을 갖고 보다 독립적으로 결단을 내릴 수 있다. 협치의 성공이 선거·정당제도 개혁과 연계돼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도 국회를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존중해야 한다. 혼자 하는 건 파트너십이 아니잖나.”
동물국회 피하려다 식물국회 돼버려
정 의장은 지난해 정기국회 개회사 때 정부와 정치권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논쟁을 불렀다. 올해도 지난 1일 개회사를 통해 국민 기대에 못 미치는 협치 현실에 자성을 촉구하는 동시에 개선 방안 중 하나로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제안하고 나섰다.
- 국회선진화법이 뭐가 문제라는 건가.
- “원래는 양당제하에서 거대 여당과 국회의장의 권한 남용을 제어하기 위해 만든 거다. 이를 지금의 다당제에 적용하려니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있다. 당장 어느 당이 안건조정제도를 발동해 브레이크를 걸면 의원 3분의 2가 찬성해도 180일을 마냥 기다려야 한다. 이래선 탄핵도, 개헌도 할 수가 없다. 서로 치고받기만 하는 동물국회를 면하기 위해 이 법을 만들었더니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국회가 돼버린 상황이다.”
정 의장은 그러면서 예산안 문제를 거론했다. “반대로 예산안의 경우 정부 여당이 버티면 야당이 어찌할 방법이 없게 돼 있다.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인데, 입법은 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이 유리하고 반대로 예산은 여당이 편안하게 법이 바뀌면서 둘 다 균형을 상실해 버렸다. 이래선 곤란하지 않겠나. 그렇다고 선진화법을 폐기하자는 게 아니라 다당제 현실에 맞게 합리적으로 손을 좀 보자는 거다.”
- 여야 입장은 어떤가.
- “19대 국회 때는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개정하자니까 민주당이 강하게 반대했다. 그런데 지금은 또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이젠 이런 부끄러운 모습은 그만 보이자. 우리 정치도 1987년 이후 10년 단위로 정권이 바뀌지 않았나. 더 이상 장기집권은 힘들어졌다. 이렇듯 언제든 여야가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듯 역지사지할 줄 모르면 국민의 심판을 면키 어렵다.”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넉 달이 돼가는데 총평을 하자면.
-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 어려운 계층을 돌보려는 자세, 열심히 소통하며 권위주의를 없애려는 모습 등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하다. 내가 새 정부에 주는 점수보다 국민이 더 후하게 주니 참 고맙다. 그런데 굳이 꼽자면 과거 권위주의 정부와 지도자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선 안 되며 좀 달라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내로남불이란 말도 있지 않나. 예전에 ‘저건 아닌데’ 했던 것은 지금도 아니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무슨 일이든 절대 민주적 절차를 생략하거나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조금 더디더라도, 돌아가더라도 정도를 걸어야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지 않게 된다. 그게 느린 것 같지만 더 빨리 가는 길이다.”
정 의장은 이에 더해 ‘실무적 완결성’을 주문했다. “정책을 추진할 때 최대한의 완결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 서두르다 보면 지향하는 바가 아무리 옳고 바르더라도 공격의 빌미나 허점을 제공하게 되고, 그로 인해 본말이 전도돼 오히려 본래 취지가 훼손되고 평가도 제대로 못 받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정기국회에서 특히 중점을 두는 부분은.
- “개헌에 필요한 작업을 최대한 진행하는 것, 협치 틀을 만들어가는 것, 민생 관련 법안 처리에 성과를 내는 것. 이게 이번 정기국회의 3대 목표다.”
- 개헌이 최대 쟁점인데, 지금 이 시점에서 개헌이 왜 필요하다고 보나.
- “제2의 최순실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 집중된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 중 우리나라 대통령이 가장 제왕적이지 않나. 독재국가 빼고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분권하는 수밖에 없다. 이젠 30년 된 낡은 틀을 바꿀 때가 됐다. 또 하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분권이 확실히 보장돼야 한다. 지금은 말이 지방자치지 반쪽 자치도 아니고 2할 자치에 불과하다.”
- 기본 원칙이 있다면.
- “나름대로 3대 원칙을 세워뒀다. 먼저 국민에 의한 국민참여개헌이 돼야 한다. 지금까지 9번 중 7번은 권력자들의 필요에 의한 개헌이었다. 4·19 이후 3차 개헌과 6·10 민주항쟁에 의한 현행 헌법에 그나마 국민의 뜻이 반영됐지만 이 또한 한계가 뚜렷했다. 또한 미래지향적 개헌을 통해 분권화를 이뤄야 한다. 열린 개헌도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전국 순회 대토론회를 여는 한편 국회 잔디마당에 자유발언대를 만들어 누구든 와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 개헌 시간표는 마련해 놓았나.
- “올 초 국회 개헌특위가 구성됐는데 여기서 연말까지 개헌 합의안을 도출해 내도록 할 것이다. 늦어도 내년 초까진 결론을 내고 내년 3월까지 국민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뒤 내년 5월 국회 의결 후 내년 6월 국민투표에 부치는 게 목표다.”
-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인데, 만약 이 부분에서 합의가 안 되면 빼고 갈 수도 있나.
- “그건 앙꼬 빠진 찐빵 아니겠나. 핵심을 빼놓고 헌법을 개정했다고 할 순 없다. 어떻게든 권력구조 합의까지 이뤄낼 생각이다.”
- ‘그게 합의가 되겠어’라는 회의도 적잖다.
- “그런 우려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국민 75%와 전문가 88%, 국회의원 90% 이상이 개헌에 찬성하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도 적극 하겠다고 하지 않나. 이렇게 개헌 여건이 좋았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이 기회를 꼭 살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헌은 국민과 국회·정부 등 세 주체가 함께하는 개헌이 됐으면 좋겠다. 대통령과 정부도 의견을 내면 개헌특위에서 적극 수렴하도록 하겠다. 민주주의에선 국민이 주권자 아니냐. 개헌은 말로만 주권자인 시대에서 진정한 국민주권시대로 나아가는 확실한 계기가 될 것이다.”
증세 불가피, 꼭 할 일은 하는 게 진짜 정치
- 민생국회에 주력하겠다고 했는데.
- “지금 경제주체 중 누구도 편안한 데가 없다. 정말 잘나가는 초대기업 빼곤 다 힘들다. 그런 측면에서 규제개혁을 하더라도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먼저 배려하고 양극화 완화 입법도 최우선으로 처리할 생각이다. 그래서 중산층과 서민들이 ‘아, 국회도 우리에게 힘이 돼줄 때가 있구나. 잘하면 민생고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갖게 해줘야 한다.”
- 증세 논란이 뜨겁다.
- “원론적으로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 다만 증세를 누가 부담하느냐, 그 차이만 있을 뿐이다. 세금이 걷혀야 지출도 할 것 아니냐. 하지만 증세는 인기가 없다 보니 모두들 눈치만 보고 있는데, 인기 없는 정책이라도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비록 표를 손해 보더라도 실행에 옮기는 게 진짜 정치다. 그렇지 않을 거면 정치를 뭐하러 하나.”
- 법인세 인상도 주요 쟁점 중 하나다.
- “김대중 정부 때 법인세를 28%에서 26%로 내리려고 할 때 내가 국회 본회의에서 수정안을 내며 강력히 싸워서 결국 27%로 막은 적이 있다. 지금도 법인세가 경쟁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 아니다. 문제는 세계적으로 법인세를 내리는 추세라는 점이다. 이를 역행하는 게 어떨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변수 사이에서 운용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 이는 이념의 문제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초대형 우량법인만 조금 더 부담시키는 정부안은 나름 괜찮다고 본다. 소득세 신규 구간 신설은 적극 찬성이다. 다만 뺏는 식으로 하지 말고 돈을 내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 국회 세종시 이전에 대한 견해는.
- “관습헌법상 국회는 수도인 서울에 위치해야 한다. 추후 개헌안에 명시될 경우 이전이 가능해질 수는 있을 거다.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설치하는 건 개헌과는 무관하다. 다만 적잖은 재정이 소요될 것인 만큼 재정 대비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 충분한 검토를 거쳐야 할 것이다.”
- 내년 국회의장 퇴임 후 계획은. 대권 도전설에 도지사 출마설까지 벌써 정가의 관심이 적잖다.
- “퇴임하면 평의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웃음).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랬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다. 그저 탄핵과 개헌을 잘 마무리했다, 국민의 삶에 조금이나마 힘이 됐다는 평가를 받으면 그걸로 족하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