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통상임금 판결 후폭풍…법·근무체계 등 변화 움직임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31일, 기아자동차 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리하며 사측이 총 1조원에 이르는 추가비용을 안게 되자 재계와 정치계에서 여러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정계에선 법 개정 등을 통해 통상임금 범위와 내용을 못 박자는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재계에선 특근 등 근로체계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아차 통상임금 관련 1심 선고가 내려진 31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김성락 기아차노조지부장과 변호사 및 노조원들이 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기아차 통상임금 관련 1심 선고가 내려진 31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김성락 기아차노조지부장과 변호사 및 노조원들이 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통상임금의 법적 범위를 명확히 하도록 근로기준법의 조속한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1심 판결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통상임금 논란이 입법 미비에서 시작된 만큼 근거법에 산정 기준을 명확히 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현행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 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일급·주급·월급 또는 도급 금액'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한 가산임금(초과근로수당), 해고예고 수당, 연차휴가 수당, 퇴직금 등이 산정된다. 그런데, 법률상 명확하지 않은 통상임금의 정의로 기업들은 제각각 노사간 협의를 통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정한 상태다. 때문에 다수 기업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상 불명확한 정의는 결국 소송에서 재판부에 따른 해석의 차이를 불러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998년, 당시 고용부는 "1임금 지급기(1개월)마다 지급되는 상여금만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지침을 내렸지만 2013년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소송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임금 지급기(1개월)를 초과해 지급하는 금품도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이 있다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통상임금에 대한 정의 외에도 '신의칙'이라 불리는 노사간 신의성실의 원칙 적용을 놓고도 재판부마다 판단이 갈려 불확살성을 가중시킨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의칙이 인정되는 경우, 회사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추가되더라도 과거 임금까지 소급 지급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재판부마다 사측의 경영·재무적 타격 정도 등에 따라 신의칙 적용 여부를 판단하다보니 서로 다른 재판마다, 또는 각 심급 재판부에 따라 이에 대한 판단은 달라지곤 한다. 이번 기아차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았고, 결국 정부 차원에서 통상임금의 범위를 법률을 통해 구체적으로 명시하겠다는 방침이 나왔다는 분석이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 [연합뉴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 [연합뉴스]

한편, 이번 판결을 '통상임금 폭탄'으로 바라보는 재계에서도 여러 대책 마련으로 분주한 모습이다. 당장 1심에서 패한 기아차는 이번달 특근을 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근수당도 통상임금에 연동되는 만큼 임금 인상 요인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단기적 처방을 내린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통상임금으로 늘어난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일감을 줄이고, 그 결과 임금 총액은 물론 일자리까지 줄어 고용 불안이 야기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근·연장 근로 폐지로 줄어드는 생산력은 해외 생산기지를 통해 메울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