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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기업 블라인드 채용 확산...하반기 공채에도 적극 반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왜 생과일주스는 다 비쌀까요?”

KT·롯데·신세계 등 이어 스타트업과 보수 업종서도 확대 #공공부문은 필기 대비, 민간 기업은 면접 준비가 중요

올 7월 KT에 입사한 이형주(25) 유통채널담당 신입사원은 지난 4월 9일 KT 광화문빌딩 면접장에서 면접관들로부터 질문을 받기 전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런 다음 직접 푸드트럭을 끌고 4개 광역시를 돌면서 장사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장사하면서 찾아낸, 생과일주스가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에 이어 어떻게 해야 값을 내리고 소비자들을 끌어올 수 있을지 해답을 제시하자 질문이 쏟아졌죠.”

이씨가 본 면접 전형은 KT가 지난 2014년 도입한 블라인드 채용 방식 ‘KT 스타 오디션’이다. 화려한 스펙이 없더라도 채용될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지원자가 5분간 어떤 제한도 없이 자유로운 주제로 발표하면, 면접관이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고 선발 여부를 결정한다.

한 지원자는 남들이 단순히 관광 코스를 도는 여행을 할 동안 ‘광장’이란 특정 소재를 갖고 세계인의 소통 방식을 탐구했던 여행담을 준비했다. 입사해서도 능동적인 연구를 할 수 있음을 강조해 합격했다. 5분간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담아 작사한 노래를 불러 합격점을 따낸 지원자도 있었다. KT는 매년 십여명이던 블라인드 채용 인원을 올해 수십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다음 달 4일부터 하반기 신입 공채를 진행하는데, 전체 채용 규모도 전년보다 120명 늘어난 440명이다.

7월 부산에서 열린 한 특성화고교 채용박람회에서 구직 중인 학생들이 박람회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연령과 학력을 보지 않는블라인드 채용이 최근확산되면서 다양한 연령대의취업준비생들을 사로잡고 있다. [중앙포토]

7월 부산에서 열린 한 특성화고교 채용박람회에서 구직 중인 학생들이 박람회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연령과 학력을 보지 않는블라인드 채용이 최근확산되면서 다양한 연령대의취업준비생들을 사로잡고 있다. [중앙포토]

기업들의 블라인드 채용 확대 바람이 거세다. 카카오는 28일부터 진행 중인 신입 개발자 공채에 블라인드 방식을 도입했다. 스펙을 기재하지 않아도 세 차례의 코딩 테스트에 응시해 합격하면 면접을 볼 수 있다. 제조·금융 같은 보수적인 업종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을 늘리는 추세다. 현대자동차는 ‘힌트(H-INT)’라는 블라인드 상시 채용 면담 프로그램을 오는 10월부터 도입한다. 지원 자격에 제한 없이 누구나 자기소개서와 연락처만 남기면 면담할 수 있다. 김은아 현대차 인재채용팀장은 “면담 결과가 좋으면 바로 채용되거나 내년 상반기 공채 때 서류 전형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동아제약도 제약업계 최초로 올 하반기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다. 면접관이 지원자 인적 사항을 모르는 상태에서 직무 역량 평가만으로 인턴 40여 명을 선발해 일부를 정규직 전환한다. 우리은행도 원서에서 학력·전공·자격증·어학점수 항목을 없앴다.
블라인드 채용은 이미 스타트업으로도 확산됐다. 모바일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지원자가 키·몸무게 등 신체 정보, 가족관계, 결혼 여부를 원서에 적어내지 않도록 했다. 새로 블라인드 채용에 나선 기업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정부 정책과도 관련이 깊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올 하반기 공공부문의 블라인드 채용 확대를 주문했다.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은 하반기 채용에서 지원서의 스펙 기재란을 없애는 등 블라인드 방식을 도입키로 했다. 이에 민간 기업들도 발을 맞추기 시작했다.

기존에 블라인드 채용을 해오던 기업들 역시 규모를 확대했거나, 확대를 검토 중이다. 뽑은 인재들에 만족해서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블라인드 채용에 합격한 인재일수록 적극적이며 자기 어필에 능한데 이는 커뮤니케이션에 강점이 있다는 뜻”이라며 “입사해서도 업무를 화합적으로 잘 처리해내고 있다”고 했다. 도입 초기 “객관적으로 검증된 스펙을 안 보면 우수한 인재를 가려낼 수 있겠느냐”던 우려가 해소됐다. 롯데그룹은 2015년부터 스펙 대신 직무 수행 능력만 평가하는 이른바 ‘스펙태클 오디션’으로 지금껏 540명을 채용했다. 신세계도 2014년부터 2차 면접 단계에서 ‘드림 스테이지’라는 블라인드 방식 오디션을 진행 중이다.

같은 블라인드 채용이지만 취업준비생 입장에선 공공부문과 민간 기업의 차이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공기업 취업교육 브랜드 ‘공기업단기’의 서민교 강사는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에선 필기시험의 변별력이 높아지면서 한층 중요해졌다”며 “공기업들이 도입한 직업기초능력평가(NCS)는 기업별로 출제 유형과 난이도가 상이해 맞춤형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민간 기업 블라인드 채용에선 면접에서 타 지원자와 차별화해 자신을 어필하는 전략이 이전보다 중요해졌다. 창의성과 적극성을 보이면서 사소한 경험이라도 지원 직무와 연결해 풀어내려 고민해야 한다.

한편 주요 기업들은 이달 말부터 하반기 공채에 나선다. 포스코그룹은 이달 30일, 현대차는 31일, 롯데그룹은 다음 달 1일, 삼성전자는 7일부터 각각 대졸 신입사원 원서 접수를 받는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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