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계란서 DDT 검출된 농장주 "난 DDT가 어떻게 생긴지도 몰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나는 DDT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쓸 필요도 없어요. 누구든 DDT를 구해와서 보여주기만 해도 그걸 1㎏당 100만원, 아니 1000만원에 살 용의도 있습니다."

기자들 직접 불러모은뒤 농림부 측 발표에 정면 반박 #과거 과수원 자리…당시 잔류물 검출됐을 가능성 #축산당국, 역학조사로 DDT 유입 경로 조사 예정 #농장주 "DDT 뿌린 적 없지만 오염시 농장 폐쇄"

계란에서 DDT(디클로로디페닐트라클로로에탄) 성분이 검출된 경북 영천시 도동에 있는 재래닭 사육농장 농장주 이몽희(55)씨는 21일 오후 자신의 농장에서 기자들을 불러모아 억울한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21일 경북 영천의 한 재래닭 사육농장에서 농장주 이몽희씨가 기자회견을 자처해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 성분 검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21일 경북 영천의 한 재래닭 사육농장에서 농장주 이몽희씨가 기자회견을 자처해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 성분 검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이 농장은 정부가 전국 683개 친환경 인증 농장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한 결과 DDT 성분이 검출된 2곳(영천·경산) 중 1곳이다. 9개 건물에서 산란계를 비롯한 닭 850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하루에 상품 계란 1850~1900개를 생산해 판매한다.

관련기사

이씨에 따르면 지난 15일 농산물품질관리원 영천사무소 직원이 찾아와 이 농장에서 샘플 계란 20개를 가져갔다. 다음날인 16일 오후 영천의 모든 농장의 검사 결과가 나왔지만 이씨의 농장만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DDT로 추정되는 물질이 검출돼 추가 조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이씨는 17일 오후 자신의 농장에서 DDT가 검출됐다는 공식 통보를 받고 놀랐다고 한다.

이씨의 농장에서 검출된 DDT는 0.047㎎/㎏이었다. 함께 DDT가 검출된 경산 한 농장의 검출량은 0.028㎎/㎏로 나타났다. 이는 DDT 잔류 허용 기준치인 0.1㎎/㎏보다 낮아 '친환경' 마크를 떼고 일반 계란으로 판매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계란에서 DDT 성분이 검출된 경북 영천시 도동 한 산란계 농장의 닭 사육장 모습. 영천=김정석기자

계란에서 DDT 성분이 검출된 경북 영천시 도동 한 산란계 농장의 닭 사육장 모습. 영천=김정석기자

하지만 이씨는 "DDT 검출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DDT가 검출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17일부터 계란을 외부로 반출시키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DDT가 어떤 경로로 자신의 농장에서 발견됐는지에 대한 역학조사를 정부에 요구했다.

그는 "반감기가 최대 40년이라고 하는 DDT는 일반 농약과 다르다. 오염 경로가 밝혀질 때까지는 계란은 외부로 반출하지 않을 것"이라며 "역학조사 결과 농장 토양이 DDT에 오염됐다고 나오면 나는 이 농장을 폐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21일 경북 영천의 한 재래닭 사육농장에서 농장주 이몽희씨가 기자회견을 자처해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 성분 검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농장을 공개했다. 이 농장은 완전 방사형은 아니지만 밀집형보다 닭의 사육 환경이 자유로운 상태다. DDT 성분 검출로 유통이 중단된 계란이 창고에 쌓여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21일 경북 영천의 한 재래닭 사육농장에서 농장주 이몽희씨가 기자회견을 자처해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 성분 검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농장을 공개했다. 이 농장은 완전 방사형은 아니지만 밀집형보다 닭의 사육 환경이 자유로운 상태다. DDT 성분 검출로 유통이 중단된 계란이 창고에 쌓여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그러면서 "DDT를 내가 뿌렸나 안 뿌렸나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뿌리지 않았다"며 "우리 농장에서 파리가 10마리 이상 나오는 걸 발견하는 사람에게 농장을 넘기겠다고 할 만큼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다. (농장 주변) 풀도 제초제를 쓰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데 더운 날씨에 일일이 손으로 벨 정도로 철저히 관리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경상북도는 DDT가 검출된 영천의 이 농장이 과거에 복숭아 과수원이었고, 경산 농장은 사과 과수원이었던 사실을 농립부 측으로부터 DDT 검출 사실을 통보받은 이후에 뒤늦게 확인했다.

이씨는 복숭아 과수원으로 사용되던 현재의 농장 부지(5940㎡)를 전 소유자로부터 약 8년 전에 인수해 재래닭 사육농장을 운영해 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북도는 과거에 과수원에서 사용한 DDT가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소비자단체와 이 농장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DDT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농장주 이씨가 억울함과 오해를 풀 수 있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계란에서 DDT 성분이 검출된 경북 영천시 도동 한 산란계 농장의 농장주 이몽희씨가 21일 오후 기자들 앞에서 억울함을 표시하고 있다. 영천=김정석기자

계란에서 DDT 성분이 검출된 경북 영천시 도동 한 산란계 농장의 농장주 이몽희씨가 21일 오후 기자들 앞에서 억울함을 표시하고 있다. 영천=김정석기자

한편 DDT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전장에서 사용됐다. 당시 기승을 부리던 말라리아와 발진티푸스를 퇴치했다. 6·25전쟁 때 벼룩과 이를 잡기 위해 피란민에게 뿌려진 흰 가루약이 바로 DDT였다. 전쟁 이후에는 농약으로 살포돼 식량 증산에도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DDT는 해충뿐만 아니라 천적마저 없애버려 생태계를 파괴시킨다는 지적을 받았다. 사람이나 동물에게 즉각적인 해는 없더라도 자연상태에서 잘 분해되지 않고 체내에 축적돼 암이나 생식이상을 초래했다. 69년 11월 12일 미국 보건부가 DDT 사용을 금지했다. 한국에서는 79년부터 시판을 금지했다.

영천=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