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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 마케팅 외면에도 소녀상 마케팅은 활발 …과도하다는 지적도 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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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광복절에는 예년과 달리 거리에서 대형 태극기를 보기 어려웠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도 '애국 마케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한 물품 판매나 이벤트는 늘어나는 추세다. 팔찌·배지가 출시됐고, 시내버스 좌석에 소녀상이 앉혀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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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위안부 팔찌를 구매한 대학생 김하연(25)씨는 “소녀상 버스나 각종 굿즈(상품)를 통해 시민들이 더욱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녀상 제작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졌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동상 세우기에 동참하면서 올해 안에 서울에만 10개 이상의 소녀상이 추가로 세워진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이 국제화되고 시민들이 개인주의화 되면서, 조장된 애국심과 민족주의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진심을 담은 사죄를 하지 않아 시민들이 여전히 민족주의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고 이 현상을 풀이했다.

동아운수는 8월 14일부터 서울 시내버스 151번 5대에 평화의 소녀상을 태우고 운행하고 있다. 소녀상은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 김서경 작가가 제작했다. [중앙포토]

동아운수는 8월 14일부터 서울 시내버스 151번 5대에 평화의 소녀상을 태우고 운행하고 있다. 소녀상은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 김서경 작가가 제작했다. [중앙포토]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위안부 문제를 다루면서 민족주의에 기대는 것은 극단적 전체주의(파시즘)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의 실화를 다룬 영화 ‘귀향’은 독립영화임에도 이례적으로 관객 358만명을 불러모았다. 당시 영화평론가인 이동진씨가 “역사에 대한 울분. 영화에 대한 한숨”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별점 2개를 주자, 이씨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이동진 평론가가 지난해 영화 '귀향'에 남긴 별점.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에 별점을 낮게 줬다는 이유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왓챠 캡처]

이동진 평론가가 지난해 영화 '귀향'에 남긴 별점.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에 별점을 낮게 줬다는 이유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왓챠 캡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민이라면 우리 한민족이라면 절대로 이 영화에 대해서 작품성이라는 헛된 잣대로 진정성을 퇴색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의 감상평이 '베스트 감상평'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최근엔 위안부 피해자 기림주화 판매를 목표로 하는 ‘평화의 소녀상 네트워크’라는 온라인 쇼핑몰이 개설됐다. 소녀상을 최초 제작한 김운성ㆍ김서경 부부 작가가 민간기업에 외주를 줘 만들었다. 이들 부부는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 등 전국의 소녀상 55점을 제작했다. 부부는 기림주화는 차드공화국의 명의로 발행된다고 밝히며 국민 공모 형식으로 자금을 모으고 있다. 1300차 위안부 수요집회(9월 13일) 이전까지 발행하는 것이 목표다.

위안부 기림주화 제작을 추진하고 있는 '평화의소녀상 네트워크' 홈페이지. 일본 측 압력으로 발행이 취소됐다고 적혀 있지만, 확인 결과 이에 대한 근거는 없었다. [평화의소녀상네트워크 홈페이지 캡처]

위안부 기림주화 제작을 추진하고 있는 '평화의소녀상 네트워크' 홈페이지. 일본 측 압력으로 발행이 취소됐다고 적혀 있지만, 확인 결과 이에 대한 근거는 없었다. [평화의소녀상네트워크 홈페이지 캡처]

쇼핑몰 초기화면에는 ‘위안부 피해자 기림주화 일본 측 압력으로 발행 취소’, ‘절대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 ‘9월10일까지 2차 국민 공모 중’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김운성 작가에게 일본 측 압력에 대해 물어 보자 “확인된 바는 없다. 심증일 뿐이다”고 대답했다. 쇼핑몰 수익금의 70%는 기부금으로 쓰인다고 홈페이지에 적혀 있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아직 기부 단체는 정해지지 않았다.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또 홈페이지에서는 기림주화 프로젝트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공이자, 실질적인 주역'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수요집회를 주도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관계자는 “기림주화 사업과 위안부 피해자들 사이에 관련성은 없다. 이후에 기부를 받을 순 있겠지만, 우리의 사업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위안부 굿즈가 위안부 문제를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만,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방해하는 국수주의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근식 교수도 “과거 사례에서 우리가 숱하게 봤듯이 상업과 민족주의가 결합되면 위험한 전체주의로 빠져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운성 작가는 “소녀상이 상업화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나 역시 미니어처 판매 수익 1억3000만원 전액을 기부했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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