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자신에 찬 대통령 100일 회견에서 아쉬웠던 몇 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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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모두 신선했다. 취임 100일에 즈음한 회견은 역대 정부에서 계속돼 왔지만 이번처럼 각본 없이 진행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회견 장소를 춘추관보다 넓은 영빈관으로 정한 것과 기자단 의자를 반원형으로 배치한 것, 대통령이 책상 앞에 앉아서 질의응답을 한 것 또한 눈높이를 맞춘, 보다 폭넓은 소통을 상징하는 데 충분했다.

국정 전반 장악, 신뢰 주기 충분 #강력한 개헌 의지도 평가할 만 #북핵 관련 지나친 낙관은 금물

질문 내용을 사전 통보받지 않았음에도 문 대통령의 답변은 거침이 없었고 자신에 차 있었다. 외교·안보를 비롯해 경제, 사회, 정치, 위안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에 이르기까지 국정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확실한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해 주길 바라는 국민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었다.

특히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집권하고 나면 없던 일로 치부하던 역대 정권과는 달리 국회 개헌특위에서 개헌 논의에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정부 주도로 개헌에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하겠다는 로드맵을 다시 한번 천명함으로써 정치권으로서는 보다 적극적인 개헌 논의 압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에 지나치게 낙관적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의구심을 다시 한번 들게 만들었다.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는 것을 ‘레드라인’이라고 규정하고 북한에 레드라인에 다가가는 도발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다. 그러나 기자의 질문에 답한 것이고, 대화 여건이 갖춰진 다음이라는 전제를 달았다고는 해도 “‘대북 특사’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적절했나 하는 의문이 든다. 지금처럼 국제적인 대북제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자칫 북한에 그릇된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반도 위기 해결을 위해 물밑에서는 대북 특사 검토를 넘어 막후 대화 채널까지 가동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가장 납득이 안 가는 대목은 인사에 대해 “균형·탕평·통합 인사라고 국민이 평가한다”고 말한 것이다. 문 대통령 스스로 세웠던 ‘5대 공직 배제 사안’을 어기고도 사과없이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것은 문 정부가 가장 잘못한 것으로 인사를 꼽고 있는 다수 국민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상당수 국민들이 우려하는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점, ‘약속 대련 없는 회견’이라 자랑해놓고 주류 언론에는 질문 기회가 돌아가지 않은 점들도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합격점을 줄 만하다. 어떠한 정부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100% 이해시키고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다름’이 곧 ‘틀림’은 아니다.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른 생각을 경청해 양쪽의 공감대를 최대화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