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방향은 옳은데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박근혜 출당’ 방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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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박근혜 출당 방침’은 올바른 방향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은 정치적 책임의 문제로 당에서 본격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이 지금 겪고 있는 고초에 대해 “국정을 잘못 운영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형사적으로 죄가 된다, 안 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고 했는데 정곡을 찔렀다. 우리는 법원에서 실정법상 유무죄를 다투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유죄성에 대해 어떤 예단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문제와 박 전 대통령이 한국 정치에 끼친 참담한 폐해, 어두운 유산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박 전 대통령은 일찌감치 그 수치와 부끄러움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당적을 정리했어야 했다. 아니면 당적이 박탈됐어야 했다. 지난해 총선 때 벌어진 ‘친박 공천’과 친박세력의 발호, 공적 시스템은 내팽개치고 민간인 최순실에게 국정을 넘긴 행위만으로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사망 선고는 정당한 것이었다. 이 정당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음으로써 한국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의 혼란을 경험하고 탄핵 사태로 국력을 소모해야 했다. 보수 세력은 자체 분열과 선거 대패로 존재감조차 찾기 어려운 궤멸 상황에 처하게 됐다. 과거에 대한 책임도 책임이지만 보수가 손가락질 받고 좌우의 균형이 현저하게 깨진 한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도 박근혜 흔적은 깨끗이 지워져야 한다.

문제는 대선 때는 대구·경북 표와 박근혜 세력의 도움이 필요해 “출당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등 뒤에서 칼을 꽂으란 말이냐”고 했던 홍 대표가 그의 출당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내 장악력 확대와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략적 포석 아니냐는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올바른 방향이라도 진정성이 의문시되고 신뢰성이 떨어지는 정치 지도자의 길은 늘 불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