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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 꼬리표’ 달릴까 … 광복절 애국 마케팅 자취 감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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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15년 8월 서울스퀘어에 형상화된 대형 태극기.[중앙포토]

2015년 8월 서울스퀘어에 형상화된 대형 태극기.[중앙포토]

72주년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서울의 도심에서는 태극기를 보기 힘들었다. 광복 70주년이던 2년 전과는 딴판이다. 당시 서울 광화문 일대의 빌딩은 대형 태극기로 뒤덮이다시피 했다. 소공동의 롯데백화점 본점에는 그때 1500개의 태극기가 내걸렸다. 지난해 광복절에도 리우 올림픽과 연계한 ‘애국심 마케팅’이 활발했다.

광복70돌 2년 전 빌딩마다 태극기 #올해는 내건 건물 찾기 힘들고 #빅3 백화점, 마트 특별이벤트 없어 #“탄핵 과정서 태극기 이미지 훼손” #“국가주의, 자연스러운 변화 ”분석도

올해 광복절에는 태극기나 애국심을 활용한 마케팅을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과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중 광복절 관련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 곳은 없다. 최기봉 신세계이마트 홍보팀 과장은 “여름 할인 행사가 이미 진행 중이다. 광복절을 활용하기보다는 추석 대목을 준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산 무명천 사용을 독려한 물산장려운동의 광고. [중앙포토]

국산 무명천 사용을 독려한 물산장려운동의 광고. [중앙포토]

이처럼 양상이 바뀐 것에 대해 국정 농단 사건과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태극기의 이미지가 실추됐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이른바 ‘태극기부대’가 태극기의 존엄성을 훼손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 입장에선 굳이 위험 부담을 안고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태극기를 볼 때 ‘태극기집회’를 떠올리는 경향이 시민들에게 생겼다. 일종의 국정 농단 사태 후유증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뽕(국가+필로폰)’이라는 단어가 태극기나 애국심 관련 정서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일부 시민들은 애국심을 조장하거나 국가를 찬양하는 일을 국뽕이라고 조롱하고, 산업계나 문화계에선 국뽕 꼬리표가 붙는 것을 꺼린다. 지난달에 개봉한 영화 ‘군함도’는 예고편에 욱일승천기를 찢는 장면이 등장해 ‘국뽕 영화’라는 입소문을 탔다. 개봉 후 제작진은 “절대 국뽕은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항변했다.

박정희 정부 때의 국산품 사용 장려 운동. [중앙포토]

박정희 정부 때의 국산품 사용 장려 운동.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국가주의 정책을 강조해온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작용인 측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국뽕 혐오 현상은 박근혜 정부 말기에 부상했다. 시민들이 국가주의에 대해 그만큼 예민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애국심을 둘러싼 다양한 견해가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근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주의와 개인주의가 경쟁을 거쳐 축소와 확대를 반복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표현의 자유가 커지고 소통 창구가 늘면서 조장된 애국심이 설 자리가 줄어든 것이다”고 설명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들은 여전히 월드컵 경기나 대통령 선거에는 자발적인 관심을 갖는다. 인위적으로 애국심을 고취하기보다는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자연스럽게 갖도록 하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판매되기 시작한 815 콜라. [중앙포토]

1998년 외환위기 때 판매되기 시작한 815 콜라. [중앙포토]

◆뿌리 깊은 애국심 마케팅=애국심 마케팅의 원조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의 ‘물산장려운동’이다. “조선 사람 조선 것”이란 구호가 등장했다. 광복 이후에는 정부 주도의 애국심 마케팅이 주류였다. ‘국산품 애용’을 장려한 박정희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해 수입품 사용을 막기도 했다.

애국심 마케팅은 90년대 후반 경제위기 때 절정에 달했다. ‘금 모으기 운동’이 대표적이다. 351만 명의 시민이 집에 있던 금붙이를 들고 은행에 갔다.

현대증권은 99년에 한국 증권시장의 주가 총액(137조원)이 일본 회사(NTT, 157조원) 하나보다 못하다는 내용의 ‘바이 코리아(Buy Korea) 펀드’ 광고를 냈다. 4개월 만에 12조원이 모였다. 98년에 출시된 815 콜라는 다음 해에 시장 점유율을 13.7%까지 끌어올렸다.

최규진·송승환 기자 choi.k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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