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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체도 납품업체 판촉 직원 인건비 분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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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세종청사에서 ‘유통분야 불공정 거래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세종청사에서 ‘유통분야 불공정 거래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하는 시식행사에는 대개 납품업체의 종업원이거나 납품업체가 보낸 파견근로자가 일한다. 여기에 드는 인건비는 납품업체가 주로 부담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관행이 불합리하다고 보고 유통기업도 인건비를 분담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를 어기면 유통업체는 인건비의 최대 3배를 배상해야 한다.

공정위, 유통분야 대책 발표 #위반 업체엔 최대 3배 배상 책임 #복합쇼핑몰·아웃렛도 대상에 포함 #업계는 “현실 모르는 규제” 반발

공정위는 13일 이런 내용을 담은 ‘유통분야 불공정거래 근절대책’을 내놨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현행법 제도와 집행 체계는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행위를 억제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며 “인건비 전가와 같은 비정상적 거래로부터 납품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백화점 등의 판촉행사에 납품업체 직원이 일할 경우 유통·납품업체 간 이익 비율 만큼 인건비를 나눠야 한다. 이익 비율을 추리기 어렵다면 절반씩 분담한다. 공정위는 구체적인 내용을 정해 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한 뒤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반하면 유통업체는 거액을 부담해야 한다. 공정위가 하도급법·가맹점사업법에 이어 대규모유통업법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연내 적용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악의적인 불공정행위 적발 시 손해 추산액의 최대 3배를 물어내는 제도다. 공정위는 적용 대상에 ▶상품대금 부당감액 ▶부당반품 ▶보복행위와 함께 ‘납품업체 종업원 부당사용’을 포함한다는 방침이다. 과징금도 2배로 올린다. 현재 대규모유통업법은 위반금액의 30~70%를 과징금 기준율로 적용하는데, 공정위는 이를 60~140%로 올려 오는 10월부터 적용한다. 납품업체 종업원을 활용하고 인건비를 주지 않았다가 적발될 경우도 마찬가지로 과징금을 지금의 2배로 내야 한다.

유통분야 불공정거래 근절대책 주요 내용

유통분야 불공정거래 근절대책 주요 내용

유통업체는 이런 공정위의 방안이 현실화하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행사를 진행하는 협력업체 직원은 제조업체가 원해서 근로자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며 “인건비 분담을 강제한다면 대형마트 입장에서는 신제품 출시 행사나 시식 행사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언뜻 이번 대책의 수혜 업종으로 보이는 식품업계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긴 마찬가지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식품은 마트에서 실시하는 출시 행사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크다”라며 “인건비를 줄여서 얻는 이득보다, 행사가 줄며 생기는 손해가 훨씬 클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규제에 빠져 있던 복합쇼핑몰과 아웃렛도 대상에 포함된다. 현재 복합쇼핑몰 등은 부동산 임대업자인데,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은 규제 대상을 ‘소매업자’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상품판매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임대업자’조항을 법에 넣어 올 12월부터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스타필드, 코엑스몰 등은 마음대로 납품 회사의 매장을 이동하거나 판촉비를 일방적으로 부담시키지 못하는 등 규제를 받는다. 유통업 개별분야에 대한 점검도 강화한다. 공정위는 올해 가전·미용 전문점에 대해 거래 실태를 점검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TV홈쇼핑과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조사하기로 했다. 아울러 판매수수료 공개 대상은 기존 백화점과 TV홈쇼핑에서 대형마트 및 온라인쇼핑몰까지 확대한다.

납품업체와 영세 상인을 보호한다는 이번 대책의 취지는 좋지만 과도한 규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지나치게 규제 일변도로 가면 유통 산업 전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 이번 대책의 상당수는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법 개정 사항이다. 국회 통과가 되지 않으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다. 법이 통과되도 유통업은 백화점과 전통시장, 온라인 쇼핑몰 등 다양한 성격의 채널이 존재해 실질적인 규제가 쉽지 않다. 김 위원장도 “복잡한 유통산업의 성격상 법 만으로 불공정 거래를 근절하기 어렵다”며 이번 대책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은 인정했다. 대신 롯데·신세계·CJ와 같은 ‘유통 재벌’을 겨냥해 ‘자발적 변화’를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이 좀 더 적극적으로 상생협력 방안을 만들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장주영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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