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지키기 나선 청와대 “공도 과도 함께 봐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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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기영 본부장이 10일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 앞서 자진사퇴할 뜻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박 본부장, 채영복 전 과기부 장관, 김지영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이사장. [강정현 기자]

박기영 본부장이 10일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 앞서 자진사퇴할 뜻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박 본부장, 채영복 전 과기부 장관, 김지영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이사장. [강정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에 대한 각계의 임명 철회 요구를 일단 뿌리쳤다.

박수현, 브리핑서 임명 배경 설명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보면 된다” #박 본부장 “구국의 심정” 사퇴 거부 #과학계 “승부조작 인물이 심판?” #손혜원도 “이쯤 되면 알아서 나가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7시 “이날 브리핑 내용은 모두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보면 된다”며 7일 임명 때에 이어 두 번째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먼저 “인사 문제로 걱정을 끼쳐 드려 국민들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과(過)와 함께 공(功)도 평가받아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IT(정보기술)와 과학기술 분야의 국가경쟁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가장 높았다. 그 점에서 박기영(당시 청와대 과학기술) 보좌관은 공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 본부장은 당시 과학기술 부총리제와 과기혁신본부 신설 구상을 주도한 주역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적임자”라며 “IT 경쟁력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후퇴한 것은 과기부와 정보통신부를 폐지한 데 기인한 측면이 크다”고 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2시30분 박기영 본부장이 11년 만에 황우석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당시 그는 황 박사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끌어낸 컨트롤타워였다. 또 기여 없이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으며 연구비를 받기도 한 사실이 드러났었다.

그는 “(황우석 사태에 연루된 사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하며 사죄한다”고 말했다. 논문 공저 문제에 대해선 “2002년 논문을 기획하던 단계에서 연구에 참여했다. 다만 기획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건 처절하게 반성 중”이라고 했다. 박 본부장은 그러나 사퇴 의사를 묻는 질문엔 “구국의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거나 “일할 기회를 허락해주면 혼신의 힘을 다 해서 노력하겠다”며 거부했다. 기자회견 말미에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박 본부장의 기자간담회 직후 참모진과 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곤 참모들에게 “인사의 배경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박 대변인이 브리핑을 한 배경이었다.

박 본부장의 사과와 문 대통령의 임명 고수 방침에도 과학기술계의 집단 반발 분위기는 이어졌다. 최리노 인하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승부조작에 관여한 사람을 심판에 앉힌 셈”이라며 “학계는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와 가까운 진영이 더 거세다. 이날 행사장 앞에도 박 본부장 선임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이게 사과로 끝날 일이냐” “박기영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이들이 박 본부장을 막아서면서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반발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과 가까운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손 의원은 ‘여론몰이하지 말고 조용히 의견을 전달해 달라’라는 댓글에 “우리 편이라고 다 좋다고 가만히 있을 때는 아닌 것 같다. 이쯤 됐으면 본인이 알아서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도 “(청와대가) 민심을 잘못 읽었다”고 비판했다.

강태화·문희철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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