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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육영수 소파, 티파니 시계, 국산 시가 … 13년 만에 열린 박정희 ‘비밀의 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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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경북 구미시 선산출장소의 이른바 ‘박통 방’에 보관돼온 박정희 전 대통령 유품들. 봉황과 무궁화가 새겨진 은제 담배 케이스와 재떨이. [사진 독자, 중앙포토]

경북 구미시 선산출장소의 이른바 ‘박통 방’에 보관돼온 박정희 전 대통령 유품들. 봉황과 무궁화가 새겨진 은제 담배 케이스와 재떨이. [사진 독자, 중앙포토]

지난 3일 오전 경북 구미시 선산읍 구미시청 선산출장소. 1층 직원 당직실을 지나 출장소 3층으로 올라가자 부서명이 쓰여 있지 않은 각 60㎡ 크기의 사무실 3곳이 나타났다. 출입문은 전자키·열쇠·자물쇠로 잠금장치가 돼 있었다. 1층과 2층 어디에도 보이지 않은 폐쇄회로TV(CCTV) 4대가 사무실 출입문을 감시 중이었다.

구미 선산출장소 유품 5670점 보관 #애연가 답게 파이프만 수십여 점 #박정희 자료관 지으면 옮길 예정

육영수 여사가 사용했던 노란색 패브릭 소파. [사진 독자, 중앙포토]

육영수 여사가 사용했던 노란색 패브릭 소파. [사진 독자, 중앙포토]

경계가 삼엄한 이 방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전에 사용하고 보관한 손때 묻은 유품 수천 점이 들어 있다. 구미시청 한 간부는 “박 전 대통령 유품을 보관하는 방이라고 해서 일부에서 ‘박통 방’으로 부르기도 한다”며 “도난·훼손 등 관리 문제로 직원들 중에서도 인가된 몇몇만 출입이 가능한 공간이다. 수장고처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1971년 발행된 중앙일보. [사진 독자, 중앙포토]

1971년 발행된 중앙일보. [사진 독자, 중앙포토]

박통 방은 2004년 처음 생겼다고 한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측에서 생가가 있는 구미시에 유품 수천 점의 보관을 맡기면서다. 7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박정희 대통령 유품 보관실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방엔 5670점의 유품이 보관돼 있다. 유품을 지키기 위해 박물관 수장고처럼 항온항습기가 설치돼 있다. 사계절 온도 20~25도, 습도 55~60% 내외를 유지 중이다.

방 안 유품들은 기념품·미술품·공예품·생활용품·사무용품·가구류·기록물·기타류로 구분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생전 곁에 두고 보관하거나, 직접 쓰던 물건들이다.

미국 브랜드인 티파니 시계. [사진 독자, 중앙포토]

미국 브랜드인 티파니 시계. [사진 독자, 중앙포토]

미국 브랜드 티파니 시계, 붉은 빛을 띠는 물소가죽 재질의 슬리퍼, 국내 생산 ‘시가’, ‘COREA’라고 쓰인 독일제 가죽 골프가방,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여행용 가방 세트 등이다. 박 전 대통령이 사용한 가죽 소파, 육영수 여사가 앉았던 노란 패브릭 소파도 있다. ‘삼성-산요’가 함께 만든 TV, 1964년 도쿄 올림픽 기념 지포(Zippo) 라이터(사진), 나무 전축, 바퀴에 전해지는 힘을 바꿀 수 있는 기어 달린 ‘로드스타’라고 쓰인 자전거도 보관 중이다. 69년 7월 20일 발행된 달착륙 기념 메달도 있다.

기어가 장착된 고급 자전거. [사진 독자, 중앙포토]

기어가 장착된 고급 자전거. [사진 독자, 중앙포토]

담배를 즐긴 박 전 대통령의 유품엔 담배 흔적이 유독 많았다. 재떨이와 지포 라이터, 담배 파이프만 수십 점이다. 당시 행사 기념품으로 재떨이를 많이 제작한 듯 보인다. 62년 5월 열린 한·미군 친선골프대회, 62년 12월 호남비료 나주공장 준공 때도 재떨이를 만들어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오는 10월부터 구미시는 200억원을 들여 구미시 상모동 박 전 대통령 생가 인근 부지 3만5289㎡에 전시실과 수장고·세미나실 등으로 이뤄진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을 짓는다. 완공하면 자료관에 박정희 전 대통령 유품을 옮긴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구미참여연대는 성명을 내고 “전직 대통령의 자료는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는 것이 맞다. 신축 계획을 취소하지 않으면 반대 시민 서명 운동 등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구미=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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