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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3분 진료 모니터만 보고 끝, 15분 땐 가족력까지 꼼꼼히 확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전북 전주에 사는 최옥현(80) 할머니는 지난 1월 갑자기 가래가 자주 나오는 탓에 감기인 줄 알고 집 근처 병원을 찾았다. 몇 달 약을 먹었는데도 낫지 않아 서울대병원에 예약을 했다. 그런데 세 시간가량 걸려 도착한 이 병원 내과에서 의사를 만난 시간은 고작 1~2분이었다.

내달 도입하는 15분 심층진료 #서울대 등 국립대병원서 먼저 실시 #다른 병원서 치료하기 힘들거나 #진단 못해 의뢰한 환자만 대상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의사가 내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았어요. 눈도 맞추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만 보더라고요.”

최씨를 지난달 20일 오후 이 병원 호흡기내과 임재준 교수 진료실에서 만났다. 이날은 임 교수가 ‘15분 진료’를 하는 날이다. 임 교수는 2년 전부터 독자적으로 이렇게 진료해 왔다. 최씨는 “다른 과에서 검사한 X선 영상을 켜놓고 비교해 줬고 질문에 다 답해 줬다. 의사가 먼저 질문도 하더라”며 “계속 진료받고 싶다”고 말했다.

‘3분 진료’와 ‘15분 진료(심층진료)’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이날 오전 서울대병원의 내과 진료 대기실. 1~30번 진료실 대기실에 환자들이 빼곡했다. 15분 단위로 4~5명의 환자가 들어갔다. 의사들은 두세 개 진료실을 터놓고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마치 컨베이어벨트처럼 돌며 모니터만 보고 진료하는 모양새였다.

서울대병원의 하루 평균 외래환자는 9000명이다. 평균 진료시간은 3분. 그런데 여기만 그런 게 아니다. 상당수 대형병원들이 비슷하다. 그래야만 낮은 수가를 벌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3분 진료는 모두를 패배자로 만든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은 “▶환자는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의사는 제대로 진단하기 어렵다. 부족한 것은 고가의 검사가 대신한다. ▶건강보험 재정도 더 나간다”고 진단한다. 권 단장은 “15분 진료는 한국 경제의 압축 성장 부산물인 압축 의료를 깨고 적정 진료로 가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그동안 일부 의사가 이런 틀을 깨려 시도했다. 그런데 ‘개인 돌파’다 보니 한계가 분명했다. 그래서 정부가 이번에 제도화하려는 것이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장은 “진료시간이 늘면 환자가 증상·병력·가족력 등을 의사에게 충분히 얘기할 수 있다. 이런 걸 의사가 충분히 들어야 진단이 정확해진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15분 진료 수가를 10만원으로 정해도 병원으로서는 손해다. 그래서 서울대·충남대 같은 국립대병원이 먼저 나섰다. 서울대병원은 임 교수를 비롯해 내과·소아청소년과·신경외과·유방외과·피부과·산부인과 14명의 의사가 참여한다. 주당 외래진료 한 타임(반나절)만 한다. 초진환자가 주 대상이다. 송민호 충남대병원장은 “15분 진료를 하면 다른 병원에서 가져온 검사 결과를 충분히 비교하고 가족의 질병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며 “불필요한 검사가 줄어들고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환자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한계도 있다. 모든 환자를 15분 진료하는 게 아니다. 다른 병원에서 진단을 못하거나 치료하기 힘들다고 의뢰한 사람이 대상이다. 환자 부담 증가도 불가피하다. 상급종합병원 진찰료(현재 2만4040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다 부담한다. 원칙대로 하면 15분 진료 수가(9만~10만원)도 환자가 다 내야 한다. 하지만 당분간은 지금보다 15% 정도만 늘어나게 제한한다. 이 제도를 본격 시행하면 이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

윤석준 고려대 의대(예방의학) 교수는 “자칫 15분 진료 병원으로 환자가 몰릴 수 있다. 꼭 필요한 환자가 가야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의료전달체계 개선 등 제도 보완이 따르지 않으면 환자에게 불편만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안기종 회장은 “15분 진료의 질이 따르지 않으면 수가만 올리는 꼴이 된다. 15분 진료의 평가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박정렬·백수진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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