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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고노담화 검토 보고서에 시사점 많다”는 위안부 TF 위원장, 반면교사로 삼아야

중앙일보

입력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있는 ‘고노담화 검토 보고서’를 잘 봐라. 그게 우리에게 상당히 많은 시사점이 있다.”

지난달 31일 발족한 외교부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의 오태규 위원장은 TF 운영 방식 등을 묻는 기자들에게 “꼭 그런(이 방식을 차용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하는 게 아니고, 국제기구 등에서 쓰는 형식들이 있으니 참고하려 한다”며 이처럼 답했다.

그가 언급한 ‘고노담화 검토 보고서’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최초로 인정했던 고노담화(1993년)에 대해 일본 아베 내각이 “강제동원 등 표현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2014년 검증한 결과물을 뜻한다.

회의내용 발표하는 오태규 위안부 TF 위원장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39;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39; 오태규 위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TF 1차 회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2017.7.31  kimsdoo@yna.co.kr(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회의내용 발표하는 오태규 위안부 TF 위원장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39;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39; 오태규 위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TF 1차 회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2017.7.31 kimsdoo@yna.co.kr(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오 위원장의 말대로 2014년 6월20일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부장관이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제출한 A4용지 21쪽 분량의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한 간 협의 경위’라는 보고서를 다시 살펴봤다. 당시 일본은 법률가와 교수 등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검증팀을 꾸려 약 두 달 간 고노담화 도출 경위를 검증했다.

검증팀은 외교문서와 전 군부 인사들의 증언 기록 등을 살펴봤다. 총리실이 당시 업무를 맡았던 일본 정부 당국자들을 조사하고, 이 내용을 넘겨받아 검토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고노담화 문안이 한국 정부와의 집중적이고 구체적인 조정에 의해 나왔다”는 것이었다.

검토보고서는 고노담화에 들어간 ‘군 당국의 요청을 받은 업자’‘반성의 마음을 갖고 사죄한다’ 등의 표현은 한국 측의 요청을 반영한 것이고, 양국 정부는 문안 조정을 협의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일절 밝히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내용도 담았다. 한·일 외교당국 간 비공개 협의 내용까지 공개했다. 그러면서 고노담화가 ‘일본이 위안부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사죄한 것’이 아니라 ‘양국이 서로 타협해 만들어낸 정치적 결과물’이라고 폄훼했다. 일본 우익의 고노담화 폐기 요구에 근거를 마련해주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수정주의적 시각이 그대로 반영된 결론이었다.

오 위원장이 검토보고서를 언급한 건 검토 방식에 있어서 참고할 점이 있다는 뜻이었을 게다. 그럼에도 시작부터 결론까지 정치적 왜곡으로 점철된 검토보고서를 굳이 그 예로 든 것은 적절치 않다.

아베 총리가 검토보고서로 인해 받아든 초라한 외교적 성적표를 보면 검토보고서는 오히려 위안부 TF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례에 가깝다. 일본이 고노담화 검증 결과를 발표하자 한국은 “사실관계 호도로 고노담화의 신뢰성을 훼손했다”고 반발, 한·일관계가 급랭했다. 유엔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는 “고노담화 검증은 그 동안 일본이 해온 사과의 효력도 감소시켰다”고 지적했다.

미국도 불편해했다. 일본이 검증을 시작할 무렵 한국을 찾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위안부 피해를 “전시(戰時)임을 감안해도 충격적인 성폭행”, “끔찍한 인권 침해”라고 규정했다. 검증 결과 발표 직후 미 국무부는 “미국은 고노담화의 계승이 일본이 이웃나라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중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미 연방 하원의원 18명은 일본 대사에게 공식 연명 서한을 보내 고노담화 훼손 시도를 비판했다.

결국 일본은 고노담화에 실컷 흠집을 내놓고도 “이를 계승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없다”고 밝혔다. 자기모순이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일본은 고노담화를 교섭과 타협의 결과물처럼 만들어 진실을 흐리려는 목적이었는데, 결국엔 이를 부정하지도 못하고 계승한다고 했다. 아베 총리가 국내 지지세력의 요구로 검증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외교이익을 해친 실패작”이라고 진단했다. 위안부 TF가 포퓰리즘이나 정치 진영 논리로 흐르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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