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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읽는 북한(5)]김정은, 푸에블로호 사건의 추억을 떠올리나?

중앙일보

입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또 ‘사고’를 쳤다.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한 지 24일 만에 2차 시험발사를 감행했다. 남북 군사회담 제안에 대답을 기대했던 문재인 정부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ICBM급 성공으로 능력 '과시'했다고 자랑 #미국 본토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왔다고 선전 #1968년 푸에블로호 '승리'를 재현하려는 듯 #6자회담에서 핵·미사일 능력 '과시' 시작 #9.19공동성명으로 성공하는 듯 했으나 제자리 #북한 핵·미사일 풀기 어려우니 잘라야 할 때

조선중앙TV는 29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28일 밤 실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미사일 2차 시험발사를 지켜보는 영상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조선중앙TV는 29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28일 밤 실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미사일 2차 시험발사를 지켜보는 영상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김정은의 ‘사고’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 말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향후 몇 차례 더 ‘사고’를 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화성-14형의 발사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김정은의 말이다. 김정은은 “이번 시험발사를 통해 대륙간탄도로켓체계의 믿음성이 재확증되고 임의의 지역과 장소에서 임의의 시간에 대륙간탄도로켓을 기습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 ‘과시’됐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미국에게 화성-14형을 ‘과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김정은은 “미국 본토 전역이 사정권에 있다는 것이 뚜렷이 입증됐다”고도 덧붙였다. 북한은 미국에 ‘과시’하면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 그 기원은 1968년 1월 북한의 미국 해군 정찰함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평양시민들이 대동강반에 전시돼 있는 미국 해군 정찰함 푸에블로호를 참관하고 있다. 이 함선은 1968년 1월 23일에 조선인민군 해군에 의해 나포된지 49년이 된다. [ 연합뉴스 ]

평양시민들이 대동강반에 전시돼 있는 미국 해군 정찰함 푸에블로호를 참관하고 있다. 이 함선은 1968년 1월 23일에 조선인민군 해군에 의해 나포된지 49년이 된다. [ 연합뉴스 ]

이 사건의 발단은 북한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푸에블로호가 북한으로 납치된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그 이후 억류된 미군 83명의 송환을 위해 11개월 동안 29차례의 협상을 벌였다. 그 결과 미국은 북한에 대한 첩보 활동과 영해 침범을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판문점을 통해 생존자 82명과 시체 1구를 송환받을 수 있었다. 북한은 푸에블로호 사건을 미국에 대한 ‘승리’로 선전하고 미국과의 협상에서 자신감을 얻게 됐다.

북한의 ‘과시’는 2003년 8월에 개최한 제1차 6자회담에서도 나타났다. 북한의 농축우라늄으로 제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지 10개월 만에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영일 외무성 부상은 “미국이 우리로 하여금 핵 억지력과 운반 수단을 ‘과시’하는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일 부상은 노동당 국제부장까지 역임한 사람이다.

북핵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제1차 6자회담이 2003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각국 대표가 회의 시작에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야부나카 미토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태평양국장,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김영일 북한 외무성 부상, 왕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알렉산드로 로슈코프 러시아 외무차관,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 [베이징=연합뉴스]

북핵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제1차 6자회담이 2003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각국 대표가 회의 시작에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야부나카 미토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태평양국장,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김영일 북한 외무성 부상, 왕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알렉산드로 로슈코프 러시아 외무차관,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 [베이징=연합뉴스]

북한은 이때부터 핵․미사일을 ‘과시’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김영일은 “부시 행정부가 사회주의 제도를 압살하려 해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핵 억지력을 준비하게 됐다”며 “북조선(북한)에 핵 억지력이 없었더라면 벌써 오래전에 미국이 우리를 군사적으로 덮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영일은 핵·미사일을 과시하면서 미국에 던진 협상 조건은 3가지였다. 첫째, 북·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둘째, 북·미 사이에 외교관계를 수립하며 셋째,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경제 거래를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를 받은 김영일의 ‘과시’는 9.19 공동성명으로 효과를 보는 듯 하다가 결국은 좌절됐다. 김영일이 제시한 첫째 조건에 대해 미국은 “우리의 관행에 맞지 않으며 그런 조약을 체결한 국가가 없으며, 그런 예외적인 사례를 만들 준비도 돼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김영일은 미국으로부터 불가침조약 체결에 대한 약속을 미리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핵무기 및 운반 수단에 대한 과시를 반복했다.

둘째, 외교관계 수립은 미국과 북한의 입장이 서로 애매했다. 북한은 핵 폐기를 완료한 이후에도 미국이 수교를 하지 않고 미사일·마약·재래식 무기 등의 문제를 계속 꺼집어내 물고 늘어지지 않겠느냐고 의심했다. 이에 미국은 불법행위 단속 은 범법행위에 대한 문제이므로 당연한 것이며, 북한이 이런 범법 행위가 없도록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대응했다.

셋째, 북한의 경제 교류를 미국이 방해한 부분인데, 미국은 방해한 적이 없으며 북한이 타국 간 경제 관계의 어려움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라고 반박했다.

이렇게 커다란 입장 차이를 안고 시작한 6자회담은 2005년 제4차 회의에서 미국이 북·미 불가침조약 대신에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했다는 내용을 9.19 공동성명에 담았다. 그리고 북·미는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고, 경제협력을 양자 및 다자적으로 증진시킬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9.19 공동성명은 마카오에 있는 소규모 은행인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있던 북한 돈 2400만 달러가 묶이면서 ‘일장춘몽’이 돼 버렸다. 북한 핵문제가 일단락을 맺는 듯 했으나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한 때 김영일의 ‘과시’가 효과를 보는 듯 했지만 결국 물거품으로 끝났다.

지금 김정은이 보여주는 핵·미사일 ‘과시’는 김정일과 달리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다. 김정일보다 자신감이 더 붙은 것 같다. 6자회담 같은 다자 해결 보다 북·미 양자 해결로 단판을 지으려고 한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일간지 조선신보는 29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이 조선(북한)에 대한 전략적 시각을 바꾸어 전향적 행동을 일으킬 때까지 미국의 면상을 후려칠 탄도탄 세례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ICBM급 미사일의 성공으로 49년 전에 발생한 ‘푸에블로호의 승리’를 재현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김정은의 착각이다. 당시 미국은 보복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베트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고 연말에 대선을 앞두고 있어 군사적 조치보다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게다가 린든 존슨 대통령이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지 2개월 후인 68년 3월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적극적인 해결의 구심점마저 잃어버렸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는 그 때와는 다르다. 탄핵 국면이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지만 베트남 전쟁과 같은 전쟁 상황이 아니고 출범한 지 7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극적 타결이냐 극적 대결이냐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더 이상 꼬일 수 없을 정도 꽉 꼬여 있다. 20년 넘게 6자 회담 등을 통해 강대국이 달려들었고 내노라는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고민했지만 해법을 찾지 못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이를 풀기는 불가능해 보이고 풀 사람도 없어 보인다. 이제는 풀려고 하지 말고 잘라야 할 때다. 지금부터는 어떻게 자를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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