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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언제나 올 수 있어…옥석 고르는 기회로 삼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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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호 20면

[ECONOMY] 1997년 외환위기의 교훈

1997년 12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직후 달러당 원화가치는 2000원 밑으로 급락하기도 했다. [중앙포토]

1997년 12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직후 달러당 원화가치는 2000원 밑으로 급락하기도 했다. [중앙포토]

아시아 외환위기가 시작된 지 꼭 20년이 된다. 1997년 여름 태국에서 비롯된 외환위기는 전 세계로 번져 나갔다. 외환위기의 형태를 띄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금융 분야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

정부 재정 긴축, 은행 구조조정 등 #IMF의 잘못된 처방이 피해 키워 #외환·금융위기 다시 올 수 있지만 #공포 이겨 내고 투자대상 골라야

태국 정부는 1997년 7월 2일 미국 달러화에 연동돼 있던 바트화에 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 효과적으로 바트화 가치를 떨어뜨려 외환수지를 개선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지만 세계적인 환투기꾼들이 가세하면서 바트화 가치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태국 중앙은행이 수개월간 바트화 가치를 방어하는 데 외환보유고를 다 써 버리면서 경제위기가 불어닥쳤다.

1997년은 투자자들에게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이러한 파국적인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태국의 많은 기업들은 미 달러화 대출이 바트화 대출보다 훨씬 금리가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환율 변동의 위험에 대한 우려가 있긴 했지만, 태국 중앙은행이 필요할 경우 바트화 가치 방어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자 태국 기업들은 안심했다. 불행하게도 바트화 가치가 폭락하자 이들 기업 중 일부는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됐다. 부채비율이 높았던 수많은 기업이 부도를 냈고, 이에 태국 주식시장은 급락했다.

아시아 외환위기는 분산 투자의 이점을 깨닫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태국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적정 가격에 매도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전 세계에는 언제든지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다른 투자 대상이 있었다. 대부분의 펀드 투자자들이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무차별적인 환매에 나서지 않았던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많은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재앙이었다. 금융위기로 인해 저명한 태국 기업의 임원 한 명은 파산 지경에 이르러 생계를 잇기 위해 거리에서 샌드위치를 팔아야 했다.

태국의 외환위기는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고, 여러 국가들이 취약성을 드러내면서 이머징마켓은 전반적으로 신뢰를 잃었다. 아시아 외환위기는 아시아를 넘어 다른 지역으로 파급되면서 러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또한 위기를 겪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머징마켓은 추가적인 타격을 받았다.

20년이 지나 당시를 돌아보면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게 된다. 태국 중앙은행은 환율을 통제하려고 노력했지만 방어할 수 있는 충분한 외환보유고가 없었고, 안타깝게도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들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당시 많은 중앙은행들은 환율을 통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급격한 평가절하는 없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에 기업과 개인들은 현지통화 가치가 꾸준히 유지되어 환율 변동의 위험이 거의 없다고 판단해 금리가 현지통화보다 훨씬 낮은 미 달러 차입에 나섰다. 결국에는 각국의 중앙은행이 통화가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미 달러 대비 현지통화 가치를 크게 평가절하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게 됐다.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를 비롯한 국제금융기관들 또한 위기에 대처하는 데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판단된다. 어려움에 처한 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부채 상환용 자금을 지원하기보다는 해당 정부에 가혹한 조치를 가했다. 정부 지출을 줄이고 위기에 처한 은행을 파산시키도록 요구했는데, 결과적으로 위기가 더욱 악화되고 문제가 확산됐던 것이다. 반면, 10년 후 서브프라임 위기가 발생하자 미 연준(Fed)은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고 전혀 다른 접근방식을 통해 금융기관을 지원했다.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중앙은행과 정부는 시장에 맞서 환율을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와 개인은 주요 소득의 기준이 되는 통화와 다른 통화로 부채를 부담하기에 앞서 관련 위험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이머징마켓의 많은 국가·기업·개인들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통해 값비싼 교훈을 얻은 셈이다. 이후 이머징마켓의 많은 국가들은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채 비율을 낮췄다. 이런 노력과 함께 다른 요인을 감안할 때, 현재의 이머징마켓 전망은 매우 양호해 보인다.

물론 그런 위기는 자유 자본시장 체제의 일부분이며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가 아무리 완벽하게 규제하고 감독한다고 해도 또 다른 시장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많은 투자자들 사이에는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7~2009년 사이에 선진국을 휩쓸었던 글로벌 금융위기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투자자들은 때때로 공포에 빠져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이머징마켓이 동일한 펀더멘털을 지니고 있어 똑같다고 오해하는 투자자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물론 일부 이머징마켓이 아직도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다른 이머징마켓 국가들은 상당히 양호하며 경제성장과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사례별로 개별 투자기회를 구별하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공포의 시기를 활용해 견조한 기반과 밝은 전망을 지닌 투자대상을 선택하는 데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 이머징마켓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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