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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 규제 안하면 A도 B도 개발 '죄수딜레마' 빠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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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호 22면

[세상을 바꾼 전략] 규제가 윈·윈 하려면

1999년 8월 24일 서울 명동 한빛은행 앞에서 환경단체 연합체인 ‘그린벨트 살리기 국민행동’이 그린벨트 해제방침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9년 8월 24일 서울 명동 한빛은행 앞에서 환경단체 연합체인 ‘그린벨트 살리기 국민행동’이 그린벨트 해제방침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배와 권위를 배격하고 자치와 자유를 갈망하는 것은 자존적 인간의 본능이다. 고대 그리스어 ‘안(ν, 無)’과 ‘아르코스(ρχ, 지배자)’의 결합어에서 온 아나키즘(anarchism)은 그런 대표적인 정치철학이다. 그럼에도 통치·국가·정부 등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원초적 인간사회부터 있어 왔고, 근대에 들어서는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고 있다. 국가 또는 규제가 모두를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오늘의 역사에 등장하는 한국사회의 두 가지 행정 규제로 이를 설명해 보자.

정부가 '개발 제한' 강제해서 #A도 B도 환경보전 차선 결과 #소유자들, 재산권 침해라 반발 #정부에 토지 매수 청구 가능해져 #80년 국보위, 과외 금지 조치 #윈·윈 결과 가져올 수 있었지만 #비밀과외 학생만 혜택 봐 불공정

먼저, 지금으로부터 꼭 46년 전인 1971년 7월 30일에 나온 규제 조치다. 이날 건설부는 서울 외곽에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지정고시했다. 난개발과 투기를 억제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이후 1977년까지 총 8차례에 걸쳐 국토의 약 5%가 그린벨트로 지정됐다. 법제화 실례로 1938년 영국 런던까지, 개념적으론 구약성서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그린벨트 지정은 어떤 효과를 지닐까?

간단한 예로, 보전 가치가 있는 토지를 각각 소유한 A와 B만 있는 지역사회에서, A와 B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나오는 네 가지 결과에 대해 ‘혼자만 개발이익’ > ‘환경보전’(둘 다 보전) > ‘환경훼손’(둘 다 개발) > ‘혼자만 보전’ 순의 선호도를 갖는다고 하자.

A의 전략적 계산은 다음과 같다. 먼저, B가 토지를 개발할 때 A도 자기 토지를 개발하면 ‘환경훼손’이, 보전하면 ‘혼자만 보전’이 된다. ‘환경훼손’이 되더라도 개발이익을 얻는 게 ‘혼자만 보전’보다 더 나은 A는 B가 개발을 선택할 때 자신도 개발을 선택한다.
다음, B가 자기 토지를 보전할 때 A로서는 개발을 선택하면 ‘혼자만 개발이익’이, 보전을 선택하면 ‘환경보전’이 된다. A에게 ‘환경 보전’보다 ‘혼자만 개발이익’이 더 나은 결과이기 때문에 B가 보전할 때에도 A는 개발을 선택한다. 즉 A는 B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개발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다. 마찬가지로 B도 개발을 선택한다. 그리하여 환경은 훼손된다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죄수딜레마 상황이다.

이때 정부가 보전을 강제하면 A와 B 모두 ‘환경보전’이라는 차선의 결과를 얻는다. 정부 규제가 없었더라면 모두에게 차악의 결과인 ‘환경훼손’이 됐을 터인데 정부 규제가 있어 ‘환경보전’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서로 윈-윈(win)이 되는 개발제한조치 효과다.

이제 A와 B뿐 아니라 보전 가치가 없는 토지만을 소유한 C도 있다고 하자. C의 개발 여부는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AB의 개발 여부에 따라서만 환경훼손이냐 아니면 환경보전이냐가 좌우된다고 하자. 정부 규제가 없으면 A, B, C 모두 개발하는 환경훼손이 된다. 정부가 환경보전을 위해 AB의 토지에 개발을 제한하면 환경보전은 A, B, C 모두 누리지만 개발이익은 C 혼자 누린다.

그린벨트 토지의 소유주들은 그린벨트 지정이 재산권 침해라고 반발했다. 그렇지만 그린벨트는 박정희 대통령이 지정과 해제에 사전 재가를 받으라고 지시하는 등 보상 방식이 아닌 징발 방식으로 엄격하게 관리됐다. 역설적으로 민주화가 잘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린벨트 지정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린벨트, 민주화 잘 안 돼서 역설적 효과

1980년 7월 30일 국보위가 마련한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 공청회.[중앙포토]

1980년 7월 30일 국보위가 마련한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 공청회.[중앙포토]

민주화 이후 그린벨트 소유주들은 적극적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그린벨트 조정을 공약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 1998년 11월 ‘개발제한구역제도 개선협의회’는 개선 시안을 발표했다. 1998년 12월 24일 헌법재판소는 도시계획법 제21조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1989년 9월 19일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된 이후 무려 111개월이라는 역대 최장의 시간이 지난 후 내린 판결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개발제한구역제도 그 자체는 원칙적으로 합헌적인 규정인데, 다만 개발제한구역의 지정으로 말미암아 일부 토지소유자에게 사회적 제약의 범위를 넘는 가혹한 부담이 발생하는 예외적인 경우에 대하여 보상규정을 두지 않은 것에 위헌성이 있는 것이고, (중략) 입법자가 보상입법을 마련함으로써 위헌적인 상태를 제거할 때까지 위 조항을 형식적으로 존속케 하기 위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하는 것인 바, 입법자는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보상입법을 하여 위헌적 상태를 제거할 의무가 있고, 행정청은 보상입법이 마련되기 전에는 새로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하여서는 아니되며, 토지소유자는 보상입법을 기다려 그에 따른 권리행사를 할 수 있을 뿐 개발제한구역의 지정이나 그에 따른 토지재산권의 제한 그 자체의 효력을 다투거나 위 조항에 위반하여 행한 자신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

1999년 7월 22일 건설교통부는 ‘개발제한구역제도 개선안’을 발표하여 7개 중소도시권 전면 해제와 7개 대도시권 부분 조정을 실시했다. 2000년 1월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여 같은 해 7월부터 시행하고 있는데, 그린벨트 소유자는 정부에 토지 매수를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의 희생이 공익보다 크다면 그런 규제를 해서는 안되고, 공익이 더 크다면 개인 희생을 보상해 줘야 한다. 그 와중에도 그린벨트로 지정된 토지를 싸게 구입했다가 지정이 해제된 후 비싸게 되팔아 큰 이득을 취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규제 조치는 이런 불공정을 막고 사회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적 계산에서 기획되어야 한다.

여기서 살펴볼 두 번째 행정 규제는 지금으로부터 꼭 37년 전인 1980년 7월 30일에 나온 것이다. 이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재학생의 과외교습 및 입시학원 수강금지를 포함한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을 발표했다. 과외(사교육) 금지 조치는 모두에게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들려는 취지였을 것이다.

과외 금지가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보기 위해 간단한 모델을 만들어 보자. 입학정원이 고정된 대학입시 결과는, 학생의 선호도가 ‘혼자만 과외’ > ‘과외 금지’ > ‘모두 과외’ > ‘혼자만 과외 불참’ 순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이것 역시 전형적인 죄수딜레마 게임이다. 상대가 어떻게 선택하든 자신은 과외를 수강하는 것이 수강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너도나도 모두 과외를 수강하게 된다.

‘과외 금지’와 ‘모두 과외’의 입시 결과는 ‘중간’으로 서로 비슷하지만, 과외비와 삶의 질 등의 여러 비용을 감안하면 ‘모두 과외’보다 ‘과외 금지’가 D와 E 모두에게 더 낫다. 즉 그냥 두면 너도나도 과외 받는 ‘중간-’가 되는데, 강제적으로 과외를 금지시키면 ‘중간+’의 결과가 된다는 점에서 과외 금지는 모두에게 윈-윈의 결과를 가져다주는 바람직한 규제가 될 수도 있다.

2004년 5월27일 강남구청에서 열린 수능과외 방송 개국 기념 행사.[중앙포토]

2004년 5월27일 강남구청에서 열린 수능과외 방송 개국 기념 행사.[중앙포토]

그러나 실제 사교육 금지 조치는 그렇게 나은 세상을 만들지 못했다. 금지된 사교육을 비밀리에 받은 수험생이 큰 혜택을 봤다는 점에서 공정하지 못했다.
2000년 4월 27일 헌법재판소는 “사교육의 영역에 관한 한, 우리 사회가 불행하게도 이미 자정능력이나 자기조절능력을 현저히 상실했고, (중략) 사교육에서의 과열경쟁으로 인한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중략) 균등한 정도의 사교육을 받도록 하려는 (중략) 정당한 공익이라고 하겠다. (중략) 입법목적의 실현효과에 대하여 의문의 여지가 있고, 반면에 (중략) 기본권제한의 효과 및 문화국가실현에 대한 불리한 효과가 현저하므로” 사교육 금지 법률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수능 외 전형의 비중을 높이면 사교육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내신, 논문 작성, 대회 참가, 스펙 쌓기, 입시원서 작성 등을 대비한 다른 종류의 비싼 사교육만 유발했다. 입시의 다양한 유형은 학생들이 입시를 혼자 준비하게 어렵게 만들어 사교육을 증대시켰고 학생들 여건에 따른 불평등도 심화시켰다.

완전 블라인드 채용은 로또에 불과

강남구청 건물 앞에서 열린 학원 단체 회원들의 수능과외 방송 반대 집회. [중앙포토]

강남구청 건물 앞에서 열린 학원 단체 회원들의 수능과외 방송 반대 집회. [중앙포토]

실력이 없어도 간판만으로 먹히는 학벌 구조가 존속하는 한, 입시 경쟁은 과열될 수밖에 없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학벌을 철폐하기 위해 블라인드 방식으로 채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진학이나 취업 과정 등에서 출신 학교 이름을 전혀 쓸 수 없게 되면 간판의 효능은 현격히 감소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학벌 등 간판의 비중이 실제 축소하려면 지원자의 실력이나 자질을 확인할 수 있는 대안적 기준이 활용 가능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로또의 일상화에 불과하다. 사회 발전에 역행하는 적폐를 척결하는 것 대신에 열심히 일해 온 사람들에게서 빼앗는 방식은 오히려 불공정한 분배를 가져다줘 체제 경쟁력을 줄일 뿐이다.
세수 증대 및 입시 개혁 등 각종 규제는 평등권, 교육권, 재산권, 소급 금지 등의 헌법 조항을 충족시켜 위헌 소지가 없게 조치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해관계나 정서에 기초한 여론뿐 아니라 정합성과 일관성을 충족시키는 체계적 조치여야 한다. 규제란 공정한 윈-윈의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이다.

김재한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로체스터대 정치학 박사. 2009년 미국 후버 내셔널 펠로.2010년 교육부 국가석학으로 선정됐다. 정치 현상의 수리적 분석에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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