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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 검증으로 선수 선발, 태극마크 사명감 강조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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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호 25면

야구대표팀 1호 전임 감독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선임된 선동열 전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감독이 24일 야구회관에서 밝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구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선임된 선동열 전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감독이 24일 야구회관에서 밝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개최국 한국은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5-2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 유명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3점 홈런’ 덕분이었다. 하지만 대회 최우수선수상의 주인공은 대표팀 막내 선동열(54)이었다. 선동열은 일본·대만·미국을 상대로 완투를 펼치며 3승을 따냈다. 35년이 지난 2017년, 선동열은 또다시 태극마크를 단다. 위기에 놓인 한국 야구 대표팀을 구원할 1호 전임 감독으로서다.

국제경험 풍부, 선수 장악력 좋아 #이전 대표팀 감독은 '독만 든 성배' #연봉도 없고 소속팀 선수 못 챙겨 #올림픽 종목 진입 계기로 전임제

왜, 지금 전임 감독제인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야구 대표팀은 프로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다. 이에 따라 김응용·김인식 등 프로팀 감독들이 지휘봉을 잡았다. 한국 야구는 이후 국제 대회에서 잇따라 성과를 냈다. 시드니 올림픽(감독 김응용)에선 동메달을 따냈고,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선 4강에 올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김경문)에선 9전 전승 우승이란 신화를 썼다. 국제대회 선전 덕분에 바닥을 쳤던 프로야구 인기도 급상승했다. 2004년 233만 명에 그쳤던 관중숫자가 2009년 두 배가 넘는 592만 명으로 늘어났다.

역설적이게도 대표팀이 승승장구할수록 감독직은 ‘기피대상’이 됐다. 선수들에겐 병역 특례, FA 보상 규정 등의 ‘당근’이 따랐지만 감독들에겐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책임감’뿐이었다. 고액 연봉과 명예를 누리는 축구대표팀 감독직이 ‘독이 든 성배’라면 야구대표팀 감독직은 ‘독만 든 성배’에 가까웠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은 그나마 시즌이 중단돼 부담이 적지만 WBC의 경우 소속팀 훈련을 지켜볼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다. 2009년 WBC 준우승을 이끈 김인식 감독은 소속팀 한화가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하면서 재계약에 실패했다.

자연스럽게 대표팀 감독 구성은 KBO의 골칫거리가 됐다. 대다수 감독들이 대표팀을 이끌어달라는 요청을 고사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전년도 프로야구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을 맡는다는 규정이 생기기도 했다. 2015년 프리미어 12와 2017 WBC에선 야인(野人)이었던 김인식 감독이 나서기도 했다.

KBO는 과거 전임감독제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1년에 스무 차례 이상 A매치가 열리는 축구와 달리 국제대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2020 도쿄 올림픽엔 야구 종목이 포함돼 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 12, 2021년 제5회 WBC까지 매년 국제대회가 열린다. 지난해 김응용 전 한화 감독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아마추어 기구와 소통도 원활해졌다.

대안은 없었다, 오직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감독과 코치로 호흡을 맞췄던 김인식(왼쪽) KBO 총재특보와 선동열 감독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감독과 코치로 호흡을 맞췄던 김인식(왼쪽) KBO 총재특보와 선동열 감독

KBO는 전임감독제를 채택하기 전부터 선동열 감독을 후보로 올렸다. 그리고 지난 24일 야구대표팀 감독으로 최종 선임했다. 선수 선동열은 두말 할 필요없는 전설이다. 1981년 세계청소년 선수권, 1982년 세계선수권 우승을 이끈 그는 1985년 프로야구단 해태에 입단했다. 프로야구에서는 1995년까지 11시즌 동안 통산 146승(40패)·132세이브·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했다. 마무리 투수 시절엔 ‘선동열이 몸을 푸는 것만 봐도 상대팀이 경기를 포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김응용 감독은 “정말 동열이가 나갈 수 없는 상황에도 몸을 풀게 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에선 4년(1996~1999년) 동안 10승(4패)·98세이브·평균자책점 2.70을 기록했다.

지도자 선동열도 승승장구했다. 2005년 삼성을 맡자마자 우승을 차지했고, 삼성의 사상 첫 2연패도 달성했다. 2010년 준우승 이후 삼성을 떠났지만 역대 최강전력으로 ‘왕조’ 구축에 초석을 다졌다. 고향팀 KIA에선 다소 아쉬운 결과를 냈지만 신임 감독 하마평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선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긴 이유는 풍부한 국제대회 경험이다. 선동열 감독은 2006년 WBC 당시 투수코치를 맡았다. 김인식 감독은 투수 운용의 밑그림을 선동열 감독에게 맡겼다. WBC엔 투구수 제한이란 까다로운 규정이 있다. 선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선 한 번도 마무리를 해 본 적이 없던 박찬호에게 뒷문을 맡겼다. 박찬호는 대회 초반 3경기 연속 세이브를 올렸고, 2라운드 멕시코전에선 다시 선발로 변신해 5이닝 무실점 호투했다. 박찬호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보직을 선뜻 맡을 수 있었던 건 야구계 대선배인 선동열 감독의 믿음과 격려 덕분이었다. 선 감독은 2015 프리미어 12에서도 김인식 감독과 호흡을 맞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선동열호 첫 번째 과제, 세대교체

선동열 감독은 24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대표팀 구성은 철저한 검증과 데이터를 통해 최고의 멤버를 선발하겠다”고 말했다. 이전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는 선수의 병역 특례를 고려한 인상이 있다. 병역 미필자 위주로 뽑았고 이 마저도 각 팀에 안배를 했다. 병역 특례가 없는 대회에서는 선수들이 부상 등의 이유로 참가하지 않아 100% 전력을 꾸리기 어려웠던 전례도 있었다. 2015 프리미어와 2017 WBC에선 두산 선수들이 각각 8명씩 차출됐다. 리그 우승팀이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선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태극마크에 대한 사명감이 부족한 것 같다”면서 대표급 선수들의 자기관리를 당부했다.

선동열 감독은 “대표팀은 성적을 위해 있는 것이다. 베테랑 선수들이 잘한다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때도 뽑아야 하는게 당연하다”며 인위적인 물갈이를 하지 않을 뜻을 시사했다. 그러나 최종 목표가 도쿄 올림픽이란 점을 감안하면 젊은 선수들의 비중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오승환·김태균·이대호·정근우 등 대표팀 붙박이 선수들은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에 38살이 된다. 류현진·강정호·김현수 등 메이저리거들도 팀의 반대로 합류할 가능성이 매우 작다.

데뷔전 역시 젊은 선수들과 치른다. 11월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이다. 한국·일본·대만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엔 만 24세(1993년 1월 1일 이후 출생) 또는 프로 입단 3년차 이하의 선수가 출전(와일드카드 3명 포함)한다. 선동열 감독은 “24세 이하 챔피언십 와일드카드는 포수로 구상하고 있다. 꾸준히 2군 경기나 아마추어 경기를 통해 선수들의 기량을 확인하겠다. 프리미어 12에서는 올림픽 엔트리의 윤곽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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