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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용환의 동의보감 건강스쿨(2) 허준의 '신형장부도', 입벌리고 눈은 아래를 보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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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을 연구하는 한의사다. 한국 최고의 의학서로 손꼽히는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제시하는 노년의 질환에 대비하는 방안을 질환별로 연재한다. <편집자>

동의보감의 첫 부분을 척 하고 펼치면 그림 하나가 그려져 있다. 양의학의 해부도에 해당하는 '신형장부도(身形藏府圖)'다.

양의학의 해부도와 달리 살아있는 사람의 기운 묘사 #호흡하며 원기를 배로 모으는 '의수단전' 중요시

신형장부도 전체 그림 [사진 박용환]

신형장부도 전체 그림 [사진 박용환]

첫 느낌은 참 못 그렸다는 것이고 이어 두 번째로 '왜 이런 식으로 그렸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간혹 한의학을 비하하는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해부학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그림을 그린 이유를 전혀 모르는 무지함에서 나온 소치다.

인체의 이해뿐 아니라 이렇게 그리게 된 역사, 철학 등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 '아~이것은 그런 뜻으로 그린 것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당시 동아시아 의학의 판도를 바꾸고, 몇백년을 이어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의학서적의 그림이 별생각 없이 찍찍 그은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초등학교 수준의 그림 실력

먼저 초등학생 수준의 그림 실력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다. 옛사람들이 그림 그리는 수준이 낮아서 이렇게밖에 못 그렸을까? 절대 아니다. 수많은 동양화를 보면 사실주의적 기법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펜도 아닌 붓을 가지고 호랑이나 까치의 터럭 한 올 한 올까지 다 그려내는 데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동양화는 표현이 사실적이지만, 그 기상까지 그대로 느껴지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런 사실감은 화폭에서 툭 하고 튀어나올 듯한 극적인 느낌까지 전해진다. 옛사람들이 벽에 나무를 그렸더니 새가 와서 앉으려고 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

특히 초상화를 보면 이런 느낌이 더욱 두드러진다. 조선시대 이채나 윤두서의 초상을 보면 수염 한 올 부터 입고 있는 옷 안의 무늬까지 자세히 그려 놓았다. 표정에서 읽히는 단아함이나 강직함 등 기상까지 느껴져 정말 '엄지척'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채의 초상화. 사실적인 인물묘사 뿐만 아니라 옷 속 무늬까지도 그렸다. [사진 박용환]

이채의 초상화. 사실적인 인물묘사 뿐만 아니라 옷 속 무늬까지도 그렸다. [사진 박용환]

윤두서의 초상화. 터럭 한 올까지 신경을 썼으며 기상까지 느껴진다. [사진 박용환]

윤두서의 초상화. 터럭 한 올까지 신경을 썼으며 기상까지 느껴진다. [사진 박용환]

이 정도로 정확하게 그려내는 수준의 사람들이 묘사한 인체의 그림이 이렇게 허무할 정도라니!
옛날에는 꼭 실습으로 해부를 하지 않아도 사람 몸 안에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관심만 가지면 볼 기회가 많았다. 칼로 겨루는 싸움이 잦았고, 형벌도 찢고 자르는 것이 난무했다. 전장터에선 보기 싫어도 사람의 내장까지 볼 수 밖에 없다.

만약 의사의 신분으로 항상 몸 안이 궁금하던 차라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째든 그림과 달리 본문 안의 오장육부를 묘사한 내용을 보면 상당히 구체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 왜 이런 식으로 그렸지?'라는 의문이 풀린다. 결론은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 이렇게 그린 것이지 싶다. 한의학은 살아있는 사람의 기운을 중요시한다. 기와 혈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오장육부가 나타내고자 하는 뜻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살아 있는 기운이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하다보니 각 부분에 숨어 있는 스토리만 전해도 인체를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해부학적인 지식은 당연히 한의학에서도 중요하다. 해부학적인 면의 기능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죽은 사람의 것이라 살아 있는 기를 표현하지 못한다. 살아 있는 기를 표현하려면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

양의학에서는 시신을 해부한 모습이 가장 중요하다. 수술을 하려면 정확한 해부학적인 지식이 핵심이다. 그래서 수술에 필요한 혈의 위치와 신경이 전하는 경로를 그리는 게 맞다. 하지만 대부분의 질병은 기능적인 면을 고려한다.

살아 있는 사람의 기운의 모습, 그것이 동의보감식의 동양학에서 그린 인체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름도 해부도가 아니라 신형장부도인 것이다.

신형장부도 입 부분. [사진 박용환]

신형장부도 입 부분. [사진 박용환]

그림을 관찰해 보면, 입을 벌리고 있다. 이는 사람의 호흡을 중요시 했다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눈은 어슴츠레 하게 떠서 살짝 아래를 본다. 의수단전(意守丹田. 의식을 단전에 집중하는 것)이라 해서 호흡하며 생각을 단전에 모으는 데, 그 때 시선은 앞을 보는 게 아니라 배를 향하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배는 배꼽을 중심으로 파도를 치고 있다. 얼핏보면 배꼽을 너무 지나치게 크게 묘사했고, 배에는 주름이 가득한 게 이런 설명을 듣지 않고 본다면 우스꽝스러울 법 하다. 배의 주름은 호흡을 통해서 기운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신형장부도 배꼽 부분. [사진 박용환]

신형장부도 배꼽 부분. [사진 박용환]

배꼽은 사람 몸의 중심

서양의학에서는 배꼽은 존재가치가 없는 흔적기관일 뿐이지만, 한의학에서 배꼽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부위다. 사람 몸의 중심으로, 선천적인 기운과 후천적인 기운이 이어지는 부분이다. 여기로 단전의 기운이 모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항상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의보감, 제(배꼽)문의 내용을 요약함) 서양에서도 기능 위주로 인체를 이해하는 곳에서는 배꼽을 강조한다. 그냥 서 있으면 인체의 중심은 다른 곳이겠지만, 팔을 활짝 벌려 서 있으면 배꼽이 중심이 된다는 것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생각이었다.

이렇듯 배꼽은 인체의 중심이요, 단전의 기운이 보존되는 통로다. 한의학에서는 단전에 있는 원기를 보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배꼽은 크게 강조되어 있다.

오장육부의 그림들은 위치만 대략적으로 그려놓았고, 해부학적인 생김새가 아니라 각각의 기능과 연관되어서 그것을 묘사하기 위한 그림이다. 이것은 후에 오장육부를 알려 드릴 때 설명하려 한다.

신형장부도 척추 부분. [사진 박용환]

신형장부도 척추 부분. [사진 박용환]

또 하나 눈에 확 띄는 것은 척추부분이다. 꼬리뼈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치 쇠사슬 체인처럼 올라가 뇌수(髓海腦)라고 적힌 부분으로 연결된다. 각 부분은 아래로부터 미려관, 녹로관, 옥침관으로 3 부분으로 나뉘어 이름이 적혀 있다.

척추는 한의학에서 기운이 오르내리는 통로를 의미한다. 기운의 순환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한의학적으로 사람을 관찰할 때에는 척추가 매우 중요한 곳이 된다. 그리고 단전을 통해서 생긴 에너지가 넘쳐나면 척추를 따라 올라가서 뇌까지 들어간다고 보았다. 척추는 정기가 흐르는 통로기 때문에 반드시 강조하고 그려야 할 부분인 것이다.

이렇게 차근차근 알고 보니, 차라리 이렇게 그리는 게 훨씬 전달력이 크다는 점에서 천재적인 방식 같아 보인다. 서양의 어느 유명한 화가가 이런 식으로 생각해 그렸다면 그 가치가 엄청 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의보감은 이 그림으로부터 시작한다. 질병부터 떡 하니 나와 병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기 보다는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부터 적어 안내를 한다. 아침· 점심·저녁에 따라 다른 하루의 일과, 봄·여름·가을·겨울 마다의 섭생, 장소마다 혹은 신체의 부분마다 다른 방식으로 건강하게 사는 원칙을 그림 한 장으로 요약한 것에서 허준의 재치가 느껴진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동의보감의 바다로 나가는 배의 돛을 올려보자!

박용환 하랑한의원 원장 hambakusm@hanmail.net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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