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대법관 제청·임명 어느쪽이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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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대법원장의 신임 대법관 제청 문제를 놓고 사법부가 미증유의 진통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한때 청와대에서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대법관 후보의 임명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직급별 법관 대표들의 마라톤 회의 끝에 사법부 내 반발은 수습됐다. 청와대도 제청 거부 움직임을 접고 대법원장의 제청을 수용했다.

다만 법무부 장관과 함께 대법관 후보 제청자문위원직을 사퇴한 대한변협회장은 1958년에도 제청을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전례를 들어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대통령은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의 임명을 거부해도 되는가. 현행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문의 대법원장의 제청, 국회의 동의, 대통령의 임명을 모두 실질적인 권한으로 보면 그런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제청 파동이 제기됐던 14일자 중앙일보 3면 해설기사는 이런 기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오히려 대법원장의 제청보다는 대통령의 임명권 쪽에 더 비중을 둔 느낌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헌정사와 헌법 조문의 변화과정, 그리고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헌법정신 등을 폭넓게 감안하면 그런 해석은 너무 문리적(文理的)이고 단선적이다.

1958년의 전례란 자유당 정권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김병로 대법원장의 후임으로 법관회의가 제청한 김동현 전 대법관의 임명을 제청 50여일이 지나 거부한 것이다.

당시 헌법은 제78조에서 "대법원장인 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만 규정했는데 법원조직법에서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임명은 대법원장.대법관.고등법원장으로 구성된 법관회의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행하도록 구체화했다.

李대통령의 임명 거부에 대해선 독립한 사법부의 유효한 법적 행위를 대통령이 하등의 법적 이유 없이 무시하는 것은 3권분립의 헌법제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사법부의 인사가 행정부에 의해 실질적으로 좌우되는 곳에 사법권의 독립은 있을 수 없다는 등의 비판이 거셌다.

이런 비판은 그 후 헌법에서 사법부의 인사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4.19혁명 후 제정된 제2공화국 헌법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법관의 자격이 있는 자로써 조직되는 선거인단이 선거하고 대통령이 확인한다"고 규정,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선거제를 도입했다.

5.16혁명 후 제정된 제3공화국 헌법에서는 대법원장은 법관추천회의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하고, 대법원 판사는 대법원장이 법관추천회의의 동의를 얻어 제청하면 대통령이 의무적으로 임명하도록 했다.

유신헌법 이후 '의무적 임명조항'은 사라졌지만 그 후에도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거부한 일은 한번도 없었다. 이는 1958년의 전례가 전거(典據)할 만한 선례가 아니라 기피해야 할 악례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밖에 지난 2주간의 기사를 살펴보면 경쟁지들은 15일자 4면에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세명이 4개 언론사를 상대로 개인명의의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소송비용은 청와대 예산으로 지원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개인명의 소송을 납세자의 돈으로 지원한다면 충분히 시빗거리인데 중앙일보엔 보이지 않았다.

18일자 중앙일보 1면 톱과 사회면 톱은 대북송금 특검 수사기록에 근거한 눈에 띄는 단독기사였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 전에 정부와 현대에 교대로 5억달러를 안 주면 회담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는 기사는 송금의 정상회담 대가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같은 날 중앙일보 2면 특파원 부임기사에서 신임 카이로 특파원을 한국 신문사상 최초의 카이로 특파원으로 표기한 것은 사실(史實)오인이다.

중앙일보는 이미 1978년 12월부터 약 1년6개월여 조동국 기자를 카이로에 주재시킨 일이 있다. 당시 정부의 해외특파원 제한정책 때문에 대외적으로 통신원이라는 명칭을 혼용했을 뿐이다.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세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