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법정 최고금리 인하의 역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8면

최근 10년 사이 법정 최고금리는 49%에서 27.9%까지 떨어졌다. 최고 금리 인하로 타격을 받는 곳은 대부업체다. 수익성이 나빠진 대부업체는 급전이 필요한 서민이 주로 찾는 ‘무담보·무보증 즉시 대출’ 심사를 깐깐하게 할 수밖에 없다. 저신용자의 신용대출 길이 막히는 이유다. 이들에 대한 금융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10년 새 49% → 27.9%로 떨어지자 #대부업체, 저신용자 대출 심사 깐깐 #일부는 불법 사금융 시장 내몰려 #전문가 “금융 취약계층 지원책 필요”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올 6월 신용대출을 취급하는 대부업체는 49곳으로 지난해 3월(79곳)보다 30곳 줄었다. 이 30곳 중 17개 업체는 폐업했다. 수익성 악화→신용대출 중단→대출고객 감소→적자 폭 확대→폐업으로 이어졌다. 자산 200억원 이하의 중소형 대부업체 위주로 신용대출 중단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닫은 A사의 주모 대표는 “최고금리가 떨어지면서 중소형 대부업체 대부분이 신용대출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 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 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2015년 9월 127만 명 수준이던 대부업 이용자 수는 지난해 말 120만 명으로 5% 줄었다. 최고금리 인하에도 이용자 수가 줄어든 건 그만큼 많은 사람이 대출 심사에서 탈락한다는 의미다. 2015년 9월 7~10등급의 저신용자 중 대부업체 이용자 수는 94만 명이었지만 지난해 말 84만 명으로 9.7% 감소했다.

대부업체의 대출심사가 깐깐해지며 신용등급이 낮거나 담보가 없는 서민 중 일부는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린다. 대부금융협회 분석에 따르면 2015년 33만 명 수준이던 불법 사금융 이용자는 2016년 43만 명으로 늘었다. 1인당 이용금액 또한 2162만원에서 3159만원으로 증가했다.

법정 최고금리는 현재 27.9%에서 더 떨어질 예정이다. 정부는 법정 최고금리를 단계적으로 20%까지 인하한다는 내용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담았다. 우선 올해 안에 대부업법상 최고 금리(27.9%)를 이자제한법상의 최고 금리(25%)와 맞추기로 했다. 최고금리는 2002년 66%에 달했다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

업계 사정이 악화하자 일부 대부업체는 금리를 속이거나 허위·과장 광고와 같은 ‘불법 대출 영업’도 서슴지 않는다. 법정 최고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는 찬성 여론이 우세한 이유다.

서울시가 최근 대부업체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한 결과 50개의 대부업체가 불법영업과 과장광고 등으로 적발됐다. 서울시는 6개 업체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고, 1개 업체는 등록취소, 3개 업체는 수사의뢰 조치했다. 일부 대부중개업체는 고객대출금을 횡령하거나, 컨설팅 명목으로 중개수수료를 불법 수취하는 등 위법·부당행위 사례도 많았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인해 제도권 금융사에서 소외되는 취약계층을 끌어안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저신용자 대출은 금융시스템보다는 ‘햇살론’이나 ‘디딤돌 대출’처럼 복지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최고금리 인하 정책은 대출 심사에서 탈락할 저신용자들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각론’이 부족하다”며 “풍선효과 등에 대한 보다 정교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