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근로자 5명 중 1명꼴로 임금 오를 것 … 중기·영세사업자 부담 커져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41호 면

[긴급 좌담] 최저임금 7530원의 정치경제학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된 뒤 노사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20일 민주노동당은 청와대 광장에서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라는 집회를 열었다(왼쪽 사진). 반면 영세사업자는 임금 부담이 커졌다. 서울 종각 인근 식당에 붙은 구인 광고. [뉴시스·연합뉴스]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된 뒤 노사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20일 민주노동당은 청와대 광장에서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라는 집회를 열었다(왼쪽 사진). 반면 영세사업자는 임금 부담이 커졌다. 서울 종각 인근 식당에 붙은 구인 광고. [뉴시스·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16.4% 오른 시간당 7530원이다. 2001년(16.8%) 이후 최대 인상률이다. 정부는 최저임금이 소득 주도 성장의 마중물이 돼 소비 증대→생산 확대→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은 영세사업자·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에 따른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적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앙SUNDAY는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최저임금에 따른 고용효과를 분석한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노동법 전문가인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함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제적 파급 효과와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는 21일 오후 서울 중앙일보 본사에서 진행됐다.


근로자 구매력 늘어 vs 실질 임금은 줄어

내년도 최저임금이 예상보다 많이 올랐다. 최저임금 1만원을 향해 첫발을 뗀 셈이다.
도재형 교수=과거 노동계와 사용자 위원들의 불참으로 파행을 겪던 최저임금위원회와 비교해 보면 민주적인 의사결정이었다고 본다. 특히 양측이 제시한 최저임금안을 토대로 27명 전원이 투표했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회보험 의무가입 대상 늘리되 #영세사업자는 일부 보조해줘야 #기형적인 임금제도도 개선 필요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복지제도 잘 갖춘 유럽 국가들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 낮은 편 #한국도 사회안전망으로 보완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저임금 근로자 소득 늘 수 있지만 #영세사업자 돈을 이전하는 셈 #소득분배 효과 기대보다 낮아

이정민 교수=경제학자 입장에선 최저임금 7530원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계산이 안 된다. 2020년까지 1만원 달성도 문재인 정부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정치적 목표이지 경제적 의미를 찾는 게 쉽지 않다. 한 국가의 중요한 임금 문제가 경제적 영향보다 정치적으로 결정된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권순원 교수=현재의 경제적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최저임금이 과하게 높다는 뜻인가. 지난해 기준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가운데 14위로 중위권에 속했다.

이 교수=OECD 통계는 큰 의미가 없다.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OECD 1위로 올라가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지 않나. 이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근로자 비중이 2016년 기준 18.2%다. 이번 인상으로 내년엔 5명에 한 명꼴로 높아질 것이다. 이처럼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빠르게 늘고 있어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자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의 효과를 두고 논란이 많다.
권 교수=현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의 입장에서 보면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근로자들의 구매력을 증대시켜 유효수요를 확대한다. 이를 통해 상품 수요가 증가하면 생산이 늘어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다. 반대 입장은 최저임금의 외부화 효과를 강조한다. 즉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자의 비용 부담을 확대해 일자리를 축소하고, 더불어 비용을 상품에 전가하는 경우 물가가 올라 근로자의 실질 임금이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 주장한다.

이 교수=고용노동부 자료를 토대로 최저임금이 2006년 이후 8년간 고용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최저임금이 10% 오르면 고용은 주당 44시간 일자리 수 기준으로 1.4%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과 고졸 이하, 29인 이하 사업체 등 취약계층에서 부정적 고용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소득 주도 성장론은 경제학에서 주류 개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뚜렷한 근거가 없는 얘기다.

도 교수=하지만 독일과 영국 사례를 보면 최저임금 도입 후 근로자 일자리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1999년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영국은 지난해 4월부터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임금으로 최저임금보다 8~9% 높은 생활임금을 도입했다. 2015년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독일은 실업률이 2016년 3월 기준 4.2%로 1년 전보다 0.6%포인트 감소했다.

권 교수=한국도 그동안 최저임금이 올랐지만 고용률에 큰 변화가 없다. 2001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6%로 역대 최대치였다. 당시 고용률은 60%로 1년 전보다 1%포인트 오히려 늘었다. 2006년에도 최저임금이 13.1% 올랐지만 고용률(59.7%)은 큰 변화가 없었다. 수퍼마켓 같은 영세사업자는 이미 고용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근로자를 줄이기 힘들다. 다만 롯데리아·맥도날드 등 대형 프랜차이즈업체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교수=영세사업자의 임금 지불 능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게 중요하다. 물론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해서 내년 1월 1일부터 영세사업자나 소상공인이 문을 닫지는 않겠지만 사업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또 사업을 시작하려는 입장에선 임금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보완 대책에 연 6조7000억원 들어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분배 효과도 기대할 수 있지 않나.
이 교수=오히려 소득 양극화를 키울 수 있다. 최저임금이 높아지면 기업 입장에선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저숙련 근로자의 수요를 줄일 수밖에 없다. 대신 고숙련 노동자나 무인자동화기기가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 결국 저임금 근로자의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권 교수=지난해 말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 대상이 되는 소득 1분위 가계(2인 가구 기준)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155만원이다. 한 달 소비지출은 179만원으로 소득만으로는 적자 구조다. 가처분 소득의 90% 이상을 소비한다. 저소득층 가구는 버는 대로 다 쓰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다. 최저임금이 인상될 경우 구조적 적자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소비 확대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도 교수=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층 가구가 돈을 쓰는 곳은 자신이 사는 동네일 것이다. 이들이 소비를 하게 되면 영세사업자가 혜택을 받게 된다. 소득 주도 성장이 실패할 것으로 예단하긴 이르다. 실제 독일은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뒤 소비 성향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독일 시장조사업체인 GFK에 따르면 2015년 5월 독일인의 소비성향은 2001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소비자들의 가계 수입은 1년 전보다 8%가량 늘었는데 구매 욕구는 26%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이 교수=물론 저임금 근로자에게 소득을 이전시켜 소비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다. 그러나 저임금·저숙련 근로자를 고용하는 영세사업자에게 돈을 빼서 저소득층에 이전하는 게 맞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보완 대책을 내놨다.
권 교수=5년간 평균 인상률에 해당하는 7.4%인 479원은 사업자가 부담하고 나머지 581원은 정부가 부담하기로 했다. 대략 연간 6조7000억원의 예산이 든다. 이러한 지원 방식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집행 과정에서 지원 대상을 선별하고 전달하는 방식을 두고 논란이 많을 것이다.

도 교수=정부 지원책은 단기적 처방이다. 특히 사회보장 사각지대에 놓인 1인 소상공인과 영세사업자는 최저임금 지원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보험의 의무가입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영세사업자도 임의가입이 가능하지만 비용이 부담돼 가입을 꺼린다. 한국도 선진국처럼 누구나 의무적으로 사회보험 체계에 편입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보험료 부담이 큰 영세사업자를 위해 정부가 사회보험료의 일부를 보조해주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권 교수=지난해 기준 한국의 공공사회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4%로 OECD 평균(21%)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30개 회원국 중 꼴찌다. 사회복지 수준이 뛰어난 서유럽은 워낙 사회안전망이 탄탄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다. 우리나라는 당장 복지지출을 크게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통한 저임금 근로자 보호는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복지 지출을 점차적으로 늘려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최저임금에 걸리는 부담을 낮추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이 교수=실질적으로 저소득 가구를 도우려면 최저임금보다 근로장려세제(EITC)가 효율적이다. 학계에서 최저임금은 복지에 무딘 정책이라고 표현한다. EITC는 우리나라의 경우 연 소득이 2500만원 미만(맞벌이 가족 기준)일 경우 연간 최대 230만원까지 근로장려금을 세금으로 돌려주는 형태로 지급하는 제도다. 1975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한 뒤 영국·캐나다 등 선진국으로 확대됐다. 한국엔 2009년 생겼지만 우월한 제도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EITC가 최저임금과 상충된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 연봉도 뛰면서 EITC 적용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영세사업자와 중소기업 부담 없이 저소득 지원이 필요하다면 EITC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낫다.

도 교수=EITC는 내용은 사회보장이지만 조세 제도에 속해 국세청에서 집행·운영한다. 즉 사회보험제도와 분리 운영돼 사회보장 기능을 제대로 못 살리고 있다. 사회보험 당국이 EITC와 사회보험체계를 통합 운영하거나 국세청이 갖고 있는 과세 자료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임금 전문가들 참여 명확한 기준 마련해야

최저임금 제도를 개선하려면.
권 교수=최저임금위원회는 현재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노사 대표가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을 두고 싸우는 모습이다. 심도 있는 토론 대신 서로의 입장만 주장한다. 이보다 노사 대표가 추천하는 임금 분야 전문가들이 연구·조사한 뒤 명확한 기준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두 달간 바짝 임금 협상을 벌이기보다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지속적으로 활동하면서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이 교수=맞는 얘기다. 최저임금위원회가 합의점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도 명확한 임금 체계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노사 양측이 각자에게 유리한 자료만 뽑아 주장한다. 최저임금 관련 학술 연구와 논의를 진행한 뒤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아직까지 국내에선 최저임금 관련 학술 연구가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도 교수=최저임금제도 산입 범위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현재 최저임금 대상은 한 달 단위로 지급되는 기본급과 매월 고정적으로 받는 직무수당 정도다. 덩치가 큰 정기 상여금, 성과급, 외국인 근로자에게 제공되는 기숙사비 등은 제외한다. 여러 수당을 기본급화하면 해결된다. 지금 당장 바꾸긴 어렵지만 정기 상여금이나 기숙사비처럼 사실상 기본급과 성격이 비슷한 항목부터 산입 범위에 반영할 수 있을지 살펴봐야 한다.

권 교수=현재처럼 과소 기본급과 과잉 변동급의 왜곡된 임금 구조는 개선돼야 한다. 만약 성과급 등 수당 항목을 기본급으로 합치면 초과근로 수당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올라간다. 사업주의 임금 부담이 배로 커진다. 따라서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조정할 때 지금 논의되고 있는 시간외 근로수당 또는 휴일 근로수당 할증률을 노사가 절충해 나가야 한다. 또 임금 격차를 지역별로 차별화하는 실험엔 찬성한다. 광주형 일자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임금을 조금 낮추면서 대신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지역별 차등화 전략이 성공하면 지역 노동시장이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리=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취약계층, 오히려 피해 볼 수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