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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진리! ‘고진교’의 탄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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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호 28면

그는 대식가다. 한 방송에서는 1박 2일 동안 무려 17끼를 먹어 치우는 괴력을 발휘했다. 직업은 음식 전문 기자. 음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신문사 입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학 3학년 시절 육류 수출협회 주최 창작요리대회에 나가 돼지고기 부문 3등 수상, 부상으로 쇠고기 식육세트 10kg 받음’. 이력서에 쓴 이 한 줄이 당락을 좌우했다나.

이지민의 "오늘 한 잔 어때요?" #<32> 한육감 서울로점

“채소는 살기 위해 먹고, 고기는 없어서 못 먹는다”는 철학대로, 고기는 그의 전부다. 눈앞에 놓인 수북이 쌓인 고기를 바라볼 때의 그 천진난만한 표정. 불판에서 익는 고기에 육즙이 차오를 때 그의 눈에 그려지는 환희….

그런 그가 한 고깃집 사장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허영만 선생의 만화 식객 ‘소고기 전쟁’ 편의 실제 주인공, 이준수 대표다. 그가 운영하는 고깃집 ‘한육감’은 1974년부터 한우 목장과 육가공 회사로 시작한 ‘참누렁소’에서 비롯된 곳이다. 오랜 기간 쇠고기를 다룬 전문성을 그대로 담아낸 덕분에 이미 그랑서울, D타워점에서 유명세를 떨쳤다.

서울로와 연결된 서울로 테라스몰(대우재단빌딩)에 최근 오픈한 ‘한육감 서울로점’은 독특하다. 앞서 소개한 ‘먹 기자’의 ‘고기 사랑’에 크게 영향받은 이 대표는 ‘고기가 진리’라는 이념의 ‘고진교’를 창시(?)하기에 이른다. “고기 좋아하는 분들은 점심에 고기 먹고 저녁에도 고기를 먹죠. 이런 분들에게는 외식도 회식도 혼술도 모두 고기가 진리입니다. 그래서 고진교를 컨셉트로 잡았습니다.”

아예 ‘고진교’ 상표 등록도 마쳤다. 멤버십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한육감에서 ‘고진교’를 접하고 경험한 손님들의 반응은 뜨겁다. <#회식은 #고기가진리 #저기압일땐 #고기압으로 #한우는살안쪄 #내가찌지 #식사기도는짧게 #고기탄다 #한우계의 #스티브잡수> 는 식의 해시태그가 SNS를 장식하고 있다.

새 매장의 인테리어도 인상적이다. 매장의 형태는 정육면체. 여섯 개 면이 모이면 육면체 큐브가 완성 되도록 설계했다. 앞 접시부터 고기 플레이트까지 모두 정사각형. 면과 면이 만나 또 다른 형태의 면을 탄생시킨다. 영화 ‘큐브’를 연상시킨다. 입구는 냉동 창고로 들어서는 느낌에 옷장도 냉장고 같다. 정육점 핑크빛 조명으로 분위기를 살렸다. 한구석에는 미국 금주법 시대의 불법 무허가 주점인 스피크 이지(Speak easy) 스타일을 본 딴 14인용 룸도 있다. 도축용 도구들로 한쪽 벽을 장식해 놓아 살짝 으스스한 느낌도 든다.

서울로점의 메뉴는 그랑서울과 D타워점 인기 메뉴의 장점만 뽑아냈다. 서울로 테라스몰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싸서 임대료를 덜 내는 만큼 가격을 낮췄다. 타 매장에 비해 단품은 10~15%. 세트는 20% 정도 저렴하다. ‘고진교’의 본산인 만큼 질 좋은 고기를 싸게 많이 주겠다는 전략이다.

강추 메뉴는 티본 스테이크. 60개월 이하의 건강한 한우 암소, 새끼를 한 번 낳은 암소를 쓴다. 고기 맛이 진하고, 쫀쫀한 저작감이 특징이다. 1인분 300g, 가격은 인당 5만원. 2인 이상 주문 가능하다. 질문을 던졌다. “가격이 참 좋네요. 그런데 임대료·인건비·운영비·식재료비 내고 나면 남는 게 있으세요?”

그는 웃으며 말한다. “같은 그람(g) 수의 고기를 9만원에 파는 곳도 있습니다. 스테이크 전문점 가면 20만원 넘는 가격을 주고 먹어야 하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가격 측면을 절대 무시할 수 없죠. 저희가 테이블에서 돈을 많이 남기고자 하면 소비자들은 바로 알아차립니다.”

플레이팅도 인상적이다. 안심과 등심, 각종 야채가 푸짐하게 담겨 나온다. 육류 절단용 대형 칼(Butcher Knife)이 꽂혀 있어 생동감을 더한다. 소를 막 잡아서 낸 느낌이다. 여기에 5000원만 추가하면 솥밥과 듬뿍한우 된장찌개, 와사비 아이스크림이 나와 코스로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 솥밥은 주물냄비 ‘스타우브’에 막 지어낸 밥을 낸다. 치킨 스톡과 버터를 넣고 지은 뒤 어니언 플레이크를 뿌렸다. 보글보글 끓여낸 된장찌개를 곁들여 먹으면 꿀맛이다. 후식인 와사비 아이스크림은 메이플을 발라 바삭하게 구워낸 베이컨을 꽂아냈다. 묘한 조합인데 요즘 인기라는 ‘단짠단짠’한 맛이다.

점심에는 ‘두툼고기덮밥’을 꼭 맛보아야 한다. 나고야식 장어덮밥 ‘히츠마부시’를 응용했다. 밥과 장어를 먼저 먹고 파·김·와사비를 넣어 비벼 먹다 가다랑이 육수를 부어 마무리하는 것처럼, 그릴에서 조리한 투플 등급 설기살을 와사비와 함께 먹으면 된다. 평일 50개 한정이다.

참! 술 얘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주류 종류는 다양한데, 맥주는 핸드앤몰트 엑스트라 페일에일과 에비수 생맥주를 판다. 합리적인 와인 가격은 이 집의 자랑이다. 프리미엄 샴페인으로 유명한 뵈브 클리코는 8만 8000원, 돔페리뇽은 22만원이다. 면세점 판매 가격과 비슷해 와인 마니아들은 열광한다. 게다가 와인 콜키지도 없다. 채끝 스테이크에 어울리는 와인으로 남아공의 로렌스 리버 밸리를 강력 추천한다. 깊은 풍미, 좋은 발란스, 긴 피니쉬. 스테이크를 한 점 넣고 씹다가 와인을 한 모금 입에 흘러 넣으면 육즙과 와인이 어우러져 음~ 소리가 나오는 기분 좋은 마리아주를 만들어 낸다.

원고를 마무리 하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다섯시 반. 글을 쓰다 보니 배에서 ‘고기!’하고 신호가 온다. 대식가 기자님에게 ‘고기&한잔?’이라고 문자를 했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바로 콜! 사인이 왔다. 역시 #고기는진리다. ●

이지민 : ‘대동여주도(酒)’와 ‘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 콘텐트 제작자이자 F&B 전문 홍보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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