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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신고리 5,6호기 공사 잠정중단 결정...이사 13명 중 조성진 교수 한 명만 반대, 거수기 논란 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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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씨년스런 신고리 원전  (울산=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장맛비와 안개가 덮인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원전 주변이 을씨년스럽다. 왼쪽 위는 내년에 준공될 신고리 원전 4호기, 오른쪽 골리앗 크레인이 있는 곳은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공사 현장, 아래는 신고리 5,6호기 부대시설 부지로 철거 중인 서생면 신리부락. 2017.7.2   leeyoo@yna.co.kr(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을씨년스런 신고리 원전 (울산=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장맛비와 안개가 덮인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원전 주변이 을씨년스럽다. 왼쪽 위는 내년에 준공될 신고리 원전 4호기, 오른쪽 골리앗 크레인이 있는 곳은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공사 현장, 아래는 신고리 5,6호기 부대시설 부지로 철거 중인 서생면 신리부락. 2017.7.2 leeyoo@yna.co.kr(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국수력원자력이 14일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열고 신고리 5,6호기 공사 잠정 중단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공사는 공론화위원회 발족 후 3개월 간의 공론조사 기간 동안 잠정 중단되며, 공론조사 결과에 따라 완전히 중단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도둑 이사회”라고 비판할 정도로 결정 과정에서의 모양새가 좋지 않은데다가, 노조가 법적 대응을 천명하고 있어 진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 오전 경주 스위트호텔서 기습 이사회 개최 #어제 노조 저지로 본사 진입 무산되자 오늘 외부서 은밀히 의결 #김정훈 한국당 의원, “이사 13명 중 12명이 찬성...반대자는 조성진 교수 단 한 명” #조 교수, “원자핵 분야 전공 교수로서 일시 중단 및 영구 중단에 반대” #공론화위원회 설립 후 3개월 간 공사 중단...이 기간 중 피해액만 1000억원 #노조,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 예고...진통 계속될 듯

전날 경주 본사에서 노조의 반발과 위력시위로 무산된 한수원 이사회는 이날 본사 인근 경주 스위트호텔에서 기습적으로 열렸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정훈 의원에 따르면 이날 한수원 이사회에는 재적 이사 13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12명이 공사 일시 중단에 찬성했다. 의결 반대자는 비상임이사인 조성진 경성대 에너지학과 교수 한 명 뿐이었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조 교수는 이날 이사회에서 “나는 원자핵 전공 교수로서 원자핵 분야 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다수의 연구와 교육을 했다. 이 경험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일시 중단과 향후 논의 가능성이 있는 영구 중단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재적이사 중 과반수가 찬성하면 안건은 의결된다. 한수원 이사회는 이관섭 사장 등 한수원 임원 6명이 상임이사로 있고, 나머지 7명의 비상임이사는 교수와 전문가 등 외부 인사로 이뤄져있다. 공공기관인 한수원 인사들로 채워진 상임이사들은 정부의 요청에 반대표를 들기 힘든 상황이라 비상임이사 1명만 찬성하면 의결 정족수를 채울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사회가 열릴 경우 의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한수원은 이사회 의결 직후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의결 사실을 알렸다. 한수원에 따르면 공사 일시중단 기간은 정부의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 발족 시점부터 3개월간이다. 한수원은 3개월 내에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다시 이사회를 열어 추후 방침을 재결정하기로 했다. 공사 일시중단 기간 중 기자재 보관, 건설현장 유지관리, 협력사 손실비용 보전 등에 약 1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경주=프리랜서 공정식 / 2017.07.13

경북 경주시 양북면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경주=프리랜서 공정식 / 2017.07.13

한수원은 “구체적인 손실비용 보전 및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을 협력사와 강구할 예정”이라며 “공사가 일시 중단되더라도 향후 공사재개 시 품질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노무인력을 최대한 활용해 공사현장 점검, 기자재 세척, 방청 및 포장 등 특별 안전조치를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원자로 건물 마지막 기초(3단)는 원자로 안전에 매우 중요한 부위로 원자로 품질 확보를 위해 마무리 작업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일시 중단 기간에도 최단 시일 내(8월 말) 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한수원은 전날 이사회를 열어 안건을 다루기로 했지만 노조의 반발로 이사회 개최가 무산됐다. 이사회 개최 시간인 13일 오후 3시 직전 승합차 1대를 함께 타고 한수원 본사를 찾았던 비상임이사 6명은 노조에 막혀 본관에 출입도 하지 못했다.

13일 오후 경북 경주시 양북면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에서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건설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짓는 한수원 이사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김병기(왼쪽) 한수원 노조위원장과 조성희 한수원 이사회의장이 이사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본관(광명이세관)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노조원이 출입문을 봉쇄한 채 노조와 이사회는 10여분간의 대화 끝에 이해의 폭을 좁히지 못한 채 이사회 일행은 돌아갔다. 이후 이사회는 한차례 더 진입을 시도했으나 노조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이사회는 열리지 못했다. 경주=프리랜서 공정식 / 2017.07.13

13일 오후 경북 경주시 양북면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에서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건설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짓는 한수원 이사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김병기(왼쪽) 한수원 노조위원장과 조성희 한수원 이사회의장이 이사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본관(광명이세관)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노조원이 출입문을 봉쇄한 채 노조와 이사회는 10여분간의 대화 끝에 이해의 폭을 좁히지 못한 채 이사회 일행은 돌아갔다. 이후 이사회는 한차례 더 진입을 시도했으나 노조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이사회는 열리지 못했다. 경주=프리랜서 공정식 / 2017.07.13

 노조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결사반대" 등 구호를 외치면서 저항했고 이사들은 10분 가까이 노조에 막혀 있다가 차를 타고 사라졌다. 이들은 1시간 30여분 뒤인 오후 4시 42분께 다시 본관 진입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한수원은 “차후 장소와 시간을 다시 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도 한수원이 불과 하루 뒤인 이날 오전 기습적으로 외부에서 이사회를 개최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노조는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안건 의결을 저지하기 위해 스위트호텔로 달려갔지만 이미 이사회가 끝난 상황이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일시중단하고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시민 배심원단이 완전 중단 여부를 판단하도록 결정했다. 이날 공사 잠정 중단 안건이 통과됨에 따라 곧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돼 3개월간의 공론조사 활동에 착수하게 된다. 9명의 위원들이 시민 배심원단의 규모와 선정 방식을 정하게 되며, 공사의 완전 중단 여부는 이 시민배심원단이 결정한다.

하지만 공론조사 과정에서도 진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 노조는 이날의 기습 이사회를 “도둑 이사회”라고 칭하면서 맹비난했다. 한수원 노조 관계자는 “도둑 이사회를 열어 기습적으로 의결한 건 국민적 지탄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미 이사회 결정을 무효화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기하기로 결정한 상태라 조만간 법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공사를 맡았던 기업들도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패소할 경우 배상액을 전액 한수원이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다. 노조는 이 경우 이사들에 대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 행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형사고발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또 이날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져 공사 중단 안건을 의결한 이사회에 대해서도 ‘거수기’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김정훈 의원은 "공사 일시중단 결정을 이처럼 투명하지 못하게 처리하는 것은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편향적이고 일방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곧 출범되는 공론화위원회의 논의과정과 결론에 대해 국민이 얼마나 신뢰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수원은 완공을 앞둔 신고리 4호기(공정률 99.6%)와 신한울 1·2호기(공정률 94.1%)를 제외하고 6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 준비 단계인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2호기 등은 설계 용역과 환경영향평가 용역 등이 이미 중단된 상태다. 이날 신고리 5,6호기 공사가 일시 중단되면서 신규 원전 건설은 사실상 ‘올스톱’됐다.

세종= 박진석·이승호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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