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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김영란법 8개월, 놓친 것과 역효과 살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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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김정하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전 감사원 사무총장

김정하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전 감사원 사무총장

청탁금지법 시행이 소비위축 등 서민경제에 피해를 주고 있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시행된 지 8개월여 만이다. 법 제정 과정에서 등한시했거나 잘못 생각한 점은 없었는지, 법의 목적과 그 실현 방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청탁금지법과 같은 억압적인 통제수단만으로 부정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자. 정부는 그동안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강도 높은 사정(司正)을 해오고 있으나 여전히 부정부패지수가 개선되지 않자, 초강경 부정 억제책으로 이 법을 내놓았다. 하지만 부정을 낳는 근원적 요인을 제거하지 않고 밖에서 두드려대는 방식만으로 안에서부터 곪은 부정행위가 없어지지 않는다. 공직자가 사적인 목적을 위해 그릇되게 업무를 처리해도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으면 이 은밀한 암(癌)적 행위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고질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공공경쟁계약실시, 전자입찰 제도 등 공정한 업무처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국가 발전에 걸맞은 행정의 투명화는 이루어지지 않아 여전히 사회 곳곳에 부정이 발생할 여지가 많다. 특히 현재 민원처리는 접수 사항만 민원인에게 알려주고 있는데, 그 업무처리 기준과 내용을 낱낱이 공개해 모든 국민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근원적인 부정방지 대책이 시급하다.

다음은 청탁금지법이 ‘행정규제 기본법’에서 요구하고 있는 규제영향분석을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점검해보자. 행정규제 기본법 제7조 제4호에는 ‘규제의 시행에 따라 규제를 받는 집단과 국민이 부담하여야 할 비용과 편익의 비교·분석’을 통해 규제영향분석을 하고 이를 심사받게 되어 있다. 청탁금지법은 제정 과정에서부터 식당업, 농축산업 등 자영업자가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민원이 많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주관부서에서는 위 기본법의 규정에 따라 청탁금지법의 시행으로 인한 편익과 피해를 볼 수 있는 사업자 등 국민이 지는 부담을 비교·분석해 법의 시행여부를 결정하는데 참고했을 것이다. 그 비용편익 분석결과를 일반에 공개해 이해관계인 등의 검증을 받도록 했더라면 도움이 됐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책을 설계하면서 염두에 둘 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인해 정책의 효과가 저감되거나 심지어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청탁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 법이 공무원의 무사안일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민원인과 식사를 하는 것 자체가 법위반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누가 이해 관계인들을 만나 현장의 소리를 듣고 갈등 조정을 위해 뛰어다니며 자기 업무를 적극적으로 챙기겠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지가 법설계 시 고려됐어야 했는데, 이 면에 대한 대처가 미흡한 것 같아 안타깝다.

김정하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전 감사원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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