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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온돌방 36.5] 달동네 연탄 배달만 7년째…스승 가르침 실천하는 '고딩 9총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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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가루를 버무려 만든 원통형의 고체연료."

  난방 연료인 연탄의 교과서적인 정의다. 열 살 아이들은 새카맣고 구멍이 숭숭 뚫린 연탄이 교과서 속에만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연탄으로 몸을 덥히는 이웃들은 실제 우리 주변에 많았다. 선생님과 함께 달동네로 연탄 배달 봉사활동을 나가면서 새로 깨달은 사실이다.

초등 4학년 때 봉사활동 시작한 부산 고교생들, 복지부 상 받아 #친구 9명이 매년 모여 연탄 배달하는 '연포나눔천사'의 첫 상장 #7년간 기부한 연탄만 5700장…매달 1만원 정도 용돈 모아 '나눔' #첫 시작은 담임 선생님 가르침 "남을 도울 수 있는 일 체험해야" #"봉사활동 힘들지만 할머니가 주신 율무차에 마음 따뜻해져요" #어느덧 '나눔 전도사' 된 아이들, 여러 봉사단체에 활발히 참여 #"대학교 가도 계속 할 것, 20년 뒤엔 가족들과 더 큰 봉사활동"

고교 2학년생 친구 9명으로 구성된 봉사활동단체 '연포나눔천사'는 2010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연탄 배달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7년 전 첫 봉사활동 당시 어렸던 여자 아이들(위 사진)과 훌쩍 자라 선생님보다 더 커버린 지난해 모습(아래 사진). [사진 김선희 교사]

고교 2학년생 친구 9명으로 구성된 봉사활동단체 '연포나눔천사'는 2010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연탄 배달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7년 전 첫 봉사활동 당시 어렸던 여자 아이들(위 사진)과 훌쩍 자라 선생님보다 더 커버린 지난해 모습(아래 사진). [사진 김선희 교사]

  혼자 사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연탄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어느 할아버지 집에 들어가니 방 가득 쓰레기가 쌓여 있기도 했다. 양로원에 가니 어린아이들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했다. 노인들은 "고맙다" 한 마디 전하는 걸 쑥스러워 하면서도 얼굴로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주변을 돌아보며 '호기심'으로 시작한 봉사활동이 7년째다. 낑낑거리며 손에서 손으로 연탄을 전달하던 '초딩 4학년' 9총사는 어느덧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딩 2학년'이 됐다. 그러는 사이 기부한 연탄만 5700장, 후원 물품은 500만원 어치가 쌓였다.

지난달 29일 열린 행복나눔인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연포나눔천사'의 김태우군(왼쪽에서 셋째)과 이준민군(왼쪽에서 둘째). 사진 가운데는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 보건복지부]

지난달 29일 열린 행복나눔인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연포나눔천사'의 김태우군(왼쪽에서 셋째)과 이준민군(왼쪽에서 둘째). 사진 가운데는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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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승하·이준민·이현정·안령준·팽은지·김태우·문종현·안태규·이성진…. 이처럼 부산의 동갑내기 고등학생 9명으로 구성된 봉사동아리 '연포나눔천사'는 지난달 29일 보건복지부가 수여하는 행복나눔인상을 받았다. 이는 생활 속 나눔을 실천한 사람을 격려하기 위해 2011년부터 해마다 주는 장관상이다. 남자 여섯, 여자 셋의 친구 사이인 연포나눔천사에겐 처음 받는 상이기도 하다.

  동아리 총무를 맡고 있는 류승하양은 "우리 동아리가 그렇게 큰 거, 대단한 거도 아니고 오래 꾸준히 한 거밖에 없는데…"라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을 받게 되니 다들 신기하고 감사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들 시상식에 가고 싶었지만, 기말고사 기간과 겹쳐 두 친구(이준민·김태우)만 대표로 상을 받았다"면서 "시험 마치고 시간이 나면 다같이 모여 상장을 구경하기로 했다"고 웃었다.

지난해 연탄 배달 봉사활동을 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은 '연포나눔천사’ 학생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은사' 김선희 교사의 모습. [사진 김선희 교사]

지난해 연탄 배달 봉사활동을 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은 '연포나눔천사’ 학생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은사' 김선희 교사의 모습. [사진 김선희 교사]

  사실 이들도 주변 또래들처럼 평범한 '사춘기' 청소년이다. 시험 성적에 신경 쓰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거나 어른들에게 반항을 하기도 한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한 달에 1만원 꼴로 용돈을 모아서 매년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을 나눈다는 점이다. 날씨가 추워지는 11~12월께 봉사활동 장소를 한 곳 정해서 9명의 친구들이 단체로 연탄 배달에 나선다. 그런 모습을 대견스러워 하는 가족들도 가세하면서 수십명이 연탄을 옮기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연포나눔천사'가 처음 시작된 2010년 초등학교 4학년 당시 김선희 선생님의 주도로 반 아이들이 100원, 1000원씩 모은 돈. 이를 봉사활동에 쓰면서 나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사진 류승하양]

'연포나눔천사'가 처음 시작된 2010년 초등학교 4학년 당시 김선희 선생님의 주도로 반 아이들이 100원, 1000원씩 모은 돈. 이를 봉사활동에 쓰면서 나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사진 류승하양]

  이처럼 연례 행사가 된 봉사활동의 시작은 어땠을까. 숨은 조력자인 김선희(55) 선생님이 2010년 아이들을 맡았을 때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연포초등학교(부산 대연동) 4학년 2반 담임이던 김 선생님은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직접 체험해보자"면서 반 아이들과 함께 독거 노인에 대한 연탄 배달에 나섰다. 코흘리개 용돈 100원, 1000원을 저금통에 모으고 본인의 월급도 거들어서 양로원에 선물을 드리기도 했다.

해마다 연탄 배달 봉사활동에 나서는 '연포나눔천사’ 학생들과 그 가족들, '은사' 김선희 교사의 모습. 이렇게 기부한 연탄만 7년간 5700장에 달한다. [사진 김선희 교사]

해마다 연탄 배달 봉사활동에 나서는 '연포나눔천사’ 학생들과 그 가족들, '은사' 김선희 교사의 모습. 이렇게 기부한 연탄만 7년간 5700장에 달한다. [사진 김선희 교사]
해마다 연탄 배달 봉사활동에 나서는 '연포나눔천사’ 학생들과 그 가족들, '은사' 김선희 교사의 모습. 이렇게 기부한 연탄만 7년간 5700장에 달한다. [사진 김선희 교사]
해마다 연탄 배달 봉사활동에 나서는 '연포나눔천사’ 학생들과 그 가족들, '은사' 김선희 교사의 모습. 이렇게 기부한 연탄만 7년간 5700장에 달한다. [사진 김선희 교사]

  이는 내가 사는 환경과 다른 곳도 있고, 세상에 힘든 사람이 많다는 점을 보여주자는 취지였다. 그는 "아이들이 연탄을 나누면서 인성적으로 많이 배웠다. 조그마한 손으로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데 보람을 느꼈고 봉사활동의 매력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5학년, 6학년이 되어도 연탄 배달은 이어졌다.

  하지만 중학교 진학으로 각자 학교가 갈라지면서 선택의 기로가 다가왔다. 그래도 아이들의 마음은 변함 없었다. 특히 서로 친하던 아이들 9명을 중심으로 동아리까지 만들게 됐다. 연포나눔천사란 이름도 이때 스스로 지었다. 이름 그대로 연포초등학교 출신의 나눔 천사라는 의미다.

'연포나눔천사' 학생들은 연탄 배달 봉사활동 외에도 양로원 방문 등 다양한 나눔에 나선다. 지난 2014년 부산의 한 양로원을 찾아 어르신에게 절을 드리는 모습. [사진 김선희 교사]

'연포나눔천사' 학생들은 연탄 배달 봉사활동 외에도 양로원 방문 등 다양한 나눔에 나선다. 지난 2014년 부산의 한 양로원을 찾아 어르신에게 절을 드리는 모습. [사진 김선희 교사]

  이성진군은 "처음엔 선생님 주도로 연탄 봉사활동을 했지만 다들 하다보니 성취감도 있어서 계속 활동하자는 약속을 했다. 고등학교 올라와선 자주 보지 못 하지만 유대감은 최고다"고 말했다. 김 선생님도 "1년에 한번씩 얼굴에 연탄껌정을 묻혀가면서 일하고 그간 있었던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면서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들이 지금까지 잘 자라줬고 앞으로도 잘 자라줄 것"이라고 애정을 표했다.

  한 선생님이 뿌린 작은 씨앗이 아홉 아이들이 거둔 '나눔'으로 돌아온 상황. 해마다 반복하는 봉사활동이고 특별한 에피소드도 없지만 아이들의 마음엔 따뜻한 기억이 하나씩 남아있다. 류승하양은 "한 번은 할머니가 고맙다면서 율무차를 주셨는데 맛도 맛이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성진군도 마찬가지다. "몇시간 동안 연탄을 옮기다보면 힘들긴 하지만 할머니들이 커피도 주시고 율무차도 주시니까 뿌듯하다"고 말했다.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

  어느덧 '나눔 전도사'가 된 아이들은 연포나눔천사 말고도 여러 봉사단체에 가입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 9총사의 남은 꿈은 뭘까. 그냥 지금처럼 소박하게 이웃을 돕는 일을 이어가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군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학교 가면 더 열심히 해야죠. 내년에도 수능 치면 시간 많이 남을텐데 맘 편하게 연탄 배달 하려구요"라고 말했다.

  류양은 쑥스러워하면서도 마음 속 소망을 하나 꺼내놨다. "하나 들기도 벅차던 연탄을 이젠 두 개까지 들 수 있는 걸 보면 시간이 많이 지난 거 같아요. 그래도 10년. 20년 뒤에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테니 미래의 가족들과 같이 더 큰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지난 2013년 연탄 배달 봉사활동에 나선 ‘연포나눔천사’ 학생들과 그 가족들, ’은사‘ 김선희 교사의 모습. 이렇게 기부한 연탄만 7년간 5700장에 달한다. [사진 김선희 교사]

지난 2013년 연탄 배달 봉사활동에 나선 ‘연포나눔천사’ 학생들과 그 가족들, ’은사‘ 김선희 교사의 모습. 이렇게 기부한 연탄만 7년간 5700장에 달한다. [사진 김선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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