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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ㆍ미사일 문제는 쿠바 미사일 위기와 유사…트럼프가 케네디처럼 해법 찾을까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4일 발사한 미사일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확인되면서 ‘제2의 쿠바 미사일 위기’가 현실화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배치됐던 소련제 중거리 핵미사일의 복제품이 모로 카바나 군사기지에 전시돼 있다. [중앙포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배치됐던 소련제 중거리 핵미사일의 복제품이 모로 카바나 군사기지에 전시돼 있다. [중앙포토]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는 안전하다고 여겼던 미국 본토가 타국으로부터 코앞에서 직접 공격받을 수 있다는 위협을 미국이 처음으로 느낀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핵전쟁까지 감수하면서 쿠바 주변 해상 봉쇄라는 초강수를 뒀다. 북한 ICBM 역시 맘만 먹으면 북한이 미사일에 핵을 실어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미국은 쿠바 미사일 위기 때와 같은 압박을 느끼고 있다.
안보 전문가들은 핵전쟁 문턱까지 갔던 당시 어떻게 위기가 해소됐는지를 살피면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 미국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가늠해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북 미사일 미 본토 타격 가능, 미 유사 위협에 직면 #"북한 ICBM은 슬로 모션같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강경파 “케네디처럼 단호한 군사적 압박 결정해야” #딜레마에 빠진 트럼프, 시진핑 압박 수위 높일 듯

우드로 윌슨 센터의 핵전문가 로버트 리트왁은 지난 4월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시험발사를 두고 “슬로 모션(느린 화면) 같은 쿠바 미사일 위기”라고 표현했다. 그는 “미국은 김정은 위원장이 강도를 높여가며 진행해 온 핵ㆍ미사일 개발에 대해 더 이상 인내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이 보다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고, 소련의 핵 미사일 철수를 요구하며 쿠바 해상을 봉쇄했던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갈 수 있다는 예상이었다.
아담 마운트 미국진보센터 선임연구원은 5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북한의 ICBM 시험발사는) 중대한 한계점을 넘은 것”이라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선택할 지는 알기 힘들다”고 말했다.

  북한 김정은이 4일 실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 발사 후 기뻐하고 있다. [노동신문=연합뉴스]

북한 김정은이 4일 실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 발사 후 기뻐하고 있다. [노동신문=연합뉴스]

미국 매파 정치인ㆍ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처럼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 결정을 고려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핵전쟁 가능성이 33%에 육박했음에도 소련 핵미사일의 쿠바 배치를 막기 위해 도박을 할 준비가 돼 있었고, 이런 의지가 오히려 평화를 불러왔다고 본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최근 A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쿠바 미사일 위기와 마찬가지로 매우 심각한 위협이 될 잠재력을 보이고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지 않으면 북한의 행동을 저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간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독자로 해결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쿠바 미사일 사태 해결에서 케네디 대통령의 단호한 결정 뿐 아니라 니키타 흐루쇼프 당시 소련 서기장이 ‘명예롭게’ 물러설 수 있는 여지를 미국이 제시했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는 조언도 많다.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 것은 물론 소련을 겨냥해 터키에 배치한 핵미사일 철수를 약속했다. 이에 소련은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시켰고, 이후 케네디 대통령과 흐루쇼프 서기장은 지하핵실험을 제외한 모든 핵실험을 금지하는 ‘부분적 핵실험 금지조약’까지 체결했다.

이홍구 전 총리는 지난달 열린 제주포럼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 후 50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 후로 어느 쪽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196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마주한 흐루쇼프와 존 F 케네디(오른쪽) 미국 대통령. 이듬해 양국의 정상은  ‘쿠바 미사일 위기’ 사건으로 대립했다. [중앙포토]

196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마주한 흐루쇼프와 존 F 케네디(오른쪽) 미국 대통령. 이듬해 양국의 정상은 ‘쿠바 미사일 위기’ 사건으로 대립했다. [중앙포토]

하지만 미국이 쿠바 미사일 위기 때보다 더 큰 정책적 딜레마에 빠졌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쉽게 은폐할 수 있고 이동하면서 빠르게 전개할 수 있는 고체연료 미사일기술을 확보한 데다 10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서울에 대한 보복 공격 가능성을 고려하면 대북 군사적 행동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대화를 통한 협상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의 축소나 중단을 조건으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동결하는 협상을 제안하고 있지만, 미국으로선 사실상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측불가능한 김정은의 성격도 걸림돌이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의 ICBM발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적인 도전과제를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을 상대로 어떤 전략을 내놓을지 딜레마에 처했다. [중앙포토]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을 상대로 어떤 전략을 내놓을지 딜레마에 처했다. [중앙포토]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역할에 더 큰 기대를 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두 정상은 7∼8일 독일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만나 북한 문제를 의논할 예정이다.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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