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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암 발생 위험 높이는 유전자 찾아내 대처하면 생존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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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면

여성암 주요 원인 BRCA 유전자 변이 

암의 비밀이 풀리고 있다. 실마리는 유전자다. 특정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암 발생 위험이 급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발견된 암 유전자는 약 300개. 간단한 검사로 암 발생 가능성을 예측한다. 특히 유방암·난소암 같은 여성암과 폐암에서 연구가 활발하다. 조기 진단이 가능해져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됐다. 특정 유전자에 반응하는 항암제가 등장하면서 치료 성적도 매우 좋아졌다.

유방암 걸릴 위험 10배 #난소암은 40배 높여 #혈액검사로 조기 발견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건강한 가슴과 난소를 모두 제거한 것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어머니·외할머니·이모를 난소암·유방암으로 잃어서가 아니다. BRCA라 불리는 유전자의 변이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의학계에선 이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면 유방암 발병 위험이 10배, 난소암 위험이 40배 높다고 보고 있다. 대장암(4배)·전립샘암(3배)·췌장암(2배)과도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유방암 환자의 5~10%, 난소암 환자의 17%에서 BRCA 유전자 변이가 발견된다.

BRCA 유전자란?

유방암 감수성 유전자. 비정상적인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유방암·난소암·대장암·전립샘암·췌장암 위험이 커진다.

BRCA 유전자 변이 얼마나 위험한가

BRCA 유전자 변이 예측의 효과(난소암 사례)

암 발생률 낮추고 조기 발견 가능 

암 위험이 크다는 걸 확인하면 더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실제 졸리처럼 유방이나 난소를 제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국유방암학회에 따르면 졸리 이후 국내에서 예방 목적의 유방 절제술은 5배, 양측 난소 절제술은 4.7배 늘었다. 여성암 전문의들은 BRCA 유전자 변이가 발견된 유방암 환자에게 암이 없는 유방까지 절제하도록 권고한다.

10년 내에 다른 쪽 유방에서 암이 발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2014년 영국의학저널(BMJ)에 발표된 연구에선 예방적으로 다른 쪽 유방을 절제한 환자는 10년 생존율이 98.2%인 반면 절제하지 않은 환자의 생존율은 87.2%로 나타났다.

절제수술까지 하진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 특히 난소암처럼 발견이 어렵고 치료 수단이 적은 경우에 효과가 크다. 난소암은 대부분 2~3기에 발견된다.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서다. 골반 안쪽 깊은 곳에 생겨 초음파를 이용한 일반 검진으론 발견이 어렵다. 1기에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이 76~93%에 이르지만 전이가 발생한 3기 이후에는 41% 이하로 뚝 떨어진다.

BRCA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적극적인 검사로 진단 시기를 최대한 앞당길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김용만 교수는 “BRCA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면 미리 대책을 세울 수 있고 진짜 암이 나타났을 때 치료 성적도 좋다”며 “출산·수유가 끝났다면 절제를 통해 암을 95%까지 예방한다”고 말했다.

일부 암에선 항암제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암 유전자의 존재를 밝혀내기 전까지는 항암제의 효과·부작용을 가늠하지 못했다. 환자 입장에선 일단 투여를 해본 뒤 효과가 있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암 유전자가 발견되고, 여기에만 반응하는 약(표적항암제)이 등장하며 상황은 반전됐다. 효과는 극대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한 ‘환자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진 것이다. 종전까진 불치병이었던 만성골수성백혈병이 글리벡(성분명 이메티닙)이라는 표적항암제 등장 이후 만성질환처럼 바뀐 사례가 대표적이다.

암 유전자를 찾아내는 방법은 최근 더 간편해졌다. 이른바 ‘NGS(차세대염기서열분석)검사’로 수백 개를 한 번에 확인한다. 간단한 혈액검사로 위암·대장암·폐암·유방암·난소암 등 고형암 10종과 혈액암 6종, 희귀유전질환 3종과 관련한 유전자 변이를 발견한다. 검사 결과는 짧게는 4주면 나온다. 비용도 매우 저렴해졌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이 검사비 50%를 지원한다. 전국 19개 의료기관과 3개 업체에서 50만원 내외로 확인할 수 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1억원이 넘었다. 이대목동병원 주웅 부인종양센터장은 “여성암 분야에서 이 검사를 받는 환자가 늘고 있다”며 “아직 관련 치료제가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가족력이 있는 유방암·난소암 위험군이라면 받아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유전자 검사비 50만원 

아직 암 유전자를 이용한 검사와 치료가 완벽한 건 아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암 유전자는 약 300개. 전체 암을 놓고 봤을 때는 일부에 그친다. 암 유전자가 발견됐더라도 맞춤 치료제가 개발된 경우는 더 드물다. 맞춤 치료제가 있어도 쓰지 못하는 상황도 있다.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해서다. 일례로 난소암 치료제인 린파자(성분명 올라파립)는 BRCA 유전자 변이가 확인된 사람에게 효과가 매우 크지만 매달 700만~800만원에 이르는 비용을 지불해야만 쓸 수 있다.

경희대병원 종양혈액내과 맹치훈 교수는 “검사 결과가 환자에게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느냐가 중요하다”며 “임상연구에 참여할 기회가 더 많아지고 건강보험 급여가 늘면 더 많은 환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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