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미국이 손해라는 트럼프 , 한미통상전문가들 "사실과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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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지난달 30일)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우리에게 좋은 거래가 아니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미국이 손해를 봤다는 취지의 발언 강도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강해 청와대와 한국 경영계가 당혹해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공정 무역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실제로 미국에 해가 됐는지 팩트체크했다.

트럼프의 한미 FTA 재협상 발언 #근거 대부분 사실과 달라 #미국 한국 무역적자 폭 감소 #FTA 이후 교역량 대폭 증가 #"국내용 발언 가능성, 휘말리지 말아야"

◇FTA로 미국은 손해만 봤나=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로 미국의 적자가 확대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따져 보면 FTA와 미국 무역 적자 확대는 무관하다.
한국의 대미국 무역수지는 2015년 최고치인 258억 달러 흑자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는 전년 대비 25억6000달러 감소한 232억 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1~5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40억7000억 달러나 감소했다. 또 미국은 서비스 분야에선 한국에서 흑자(약 100억 달러)를 누리고 있다.

미국 무역적자는 지난해 기준 거의 반(47.2%)이 중국에서 발생했다. 한국은 전체의 약 3.8% 정도다. 미 국제무역위원회(USITC)는 “한·미 FTA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완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과의 교역 혹은 한·미 FTA를 미국 무역적자의 주요 요인으로 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미 FTA 발효 이후 세계 교역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의 교역은 성장했다. 2011~2016년 세계 교역은 13%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한·미 간 교역은 12.1% 증가했다. 서로의 수입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도 올랐다. 특히 한국 수입시장 내 미국 상품 점유율은 2011년 8.5%에서 지난해 10.6%로 올랐다.

◇자동차는 불공정 무역이었나=한국이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자동차는 총 96만4000대로 수출 금액은 154억9000만 달러다. 같은 기간 한국에서 팔린 미국산 자동차는 6만99대, 약 16억8000만 달러치다.
미국이 한국보다 9배에 달하는 자동차를 수입하고 있는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이 수치를 강조했다.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 규모는 2011~2016년 12.4%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한국에서 팔린 미국 자동차는 37.1% 늘었다. 인구 격차와 시장 규모를 따져 비교했을 때 단순히 차량 대수로 불공정을 논할 수 없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시해 온 ‘과도한 연비 규제’는 국제적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국의 연비 규제는 L당 17㎞로, 미국(16.6㎞)보다는 까다롭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은 한국보다 엄격한 L당 18.1㎞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도 16.8㎞로 미국보다는 높다. 미국이 왜 한국 시장에서만 이를 문제 삼는지는 불명확하다.

◇트집 잡기는 미국 국내용인가=그동안 한·미 FTA 문제는 이미 존재하는 양국 간 대화 채널을 통해 관리해 왔다. 미국이 제기하는 한·미 FTA 이행 이슈도 이 틀을 이용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이중으로 걸러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 국내용 발언에 대해 한국이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휘말리는 것은 손해라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은 자동차와 철강의 문제들은 FTA와 큰 관련이 없다. 지지층인 러스트벨트의 유권자들을 향한 보여주기용 성격이 강하다.
또 어차피 올해 미국 통상의 가장 큰 이슈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기 때문에 한국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USTR의 규모와 투입 인력 등을 고려할 때 올해 중 한국과 재협상 논의를 시작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 김정덕 수석연구위원은 “물밑 협상과 수면 위의 협상 ‘투 트랙’으로 진행하되 우리가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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