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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망신당하면서도 청문회에 서는 심리적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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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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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 과정을 보면서 이런 궁금증을 떨치기 어려웠다. 굳이 장관 하자고 달려들지만 않았다면 온 국민이 위조 도장으로 상대방 동의 없이 허위 혼인신고를 했던 그의 젊은 날 위법행위나 아들이 저지른 고교 시절 일탈까지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숨기고 싶은 사생활이 다 까발려지는 고통을 겪는 대신 오히려 이번 정권 내내 영향력 있는 법학자로 품위를 지킬 수 있었을 거란 얘기다. 그런데 대체 왜.

안 전 후보자에 이어 고액 자문료와 음주운전 관련 거짓말 등으로 낙마 위기에 처한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보면서도 또 똑같은 의문이 들었다. 송 후보자는 해군참모총장까지 역임한 성공한 군인이었고, 퇴임 후에는 그의 표현대로 “서민들은 모르는 세계”에 들어가 단 2년 만에 10억원 을 챙길 정도로 성공적인 경제생활을 했다. 굳이 장관 자리를 위한 인사청문회에 서기로 마음먹지만 않았다면 명예는 명예대로 간직하면서 경제력 면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계속 살았을 거다. 그런데 이제 야당으로부터 “낙마 정도가 아니라 수사 대상”이라는 비판을 받는 신세가 됐다. 제기된 다른 각종 의혹은 차치하고 드러난 사실만으로 얼마든지 망신당할 수 있는 흠결인데도 장관직 제의를 수락한 게 보통 사람 입장에선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체 왜.

망신당할 줄 알면서도 일단 장관이 되기만 하면 얻게 될 실질적 혜택이 너무 커서 그런 선택을 했다면 더 붙일 말이 없다. 하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리 뇌 속에서 벌어지는 기억과 망각에 그 답이 있다. 기억, 특히 자신과 관련된 기억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되기 쉽다. 『생각의 역습』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 뇌는 지나간 사건을 원형 그대로 기억하는 데 취약한 반면 원하는 대로 해석하는 데 탁월하다’고. 자신의 능력이나 성과는 한껏 포장하고 과오는 별것 아닌 것으로 축소하는 기억의 왜곡 탓에 누구나 이처럼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잊고 싶은 건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망각도 한몫한다. 음주운전 전력을 묻는 국회 청문위원의 서면 질의에 송 후보자가 처음에 “없다”고 답했던 게 사실 은폐를 위한 거짓말인지, 아니면 단순한 망각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국민을 속일 수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의도된 거짓말이 아니라 단순한 망각이라도 문제는 있다. 『망각의 기술』의 이스쿠이에르두가 말했듯 “무엇을 기억하느냐만큼 무엇을 잊느냐 또한 우리가 누구인지를 규정”하니 말이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