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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달린 로봇으로 차체 살피고 가혹한 진동으로 소음 측정...'스토닉' 만든 남양연구소에 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약 5m 높이의 철제 벽이 둘러쳐진 커다란 상자 모양의 공간 안에 출시를 앞둔 기아차의 소형 SUV 스토닉의 차체가 들어있다. 차체 좌우에는 사람 팔 모양의 노란색 로봇 두 대가 아래위, 그리고 앞뒤로 빠르게 움직였다. 여러 개의 관절처럼 생긴 연결 부위가 자유롭게 돌아가며 차체 이곳저곳을 살폈다. 로봇의 가장 끝부분에는 카메라가 달려 있다. 카메라는 LED 불빛을 발사하며 차체 바닥부터 맨 윗부분까지를 꼼꼼히 스캔해 이 데이터를 밖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로 보냈다.
로봇과 차량을 둘러싼 상자 모양의 공간도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 로봇이 차체를 점검하는 사이 철제 벽이 바닥으로 내려가자, 벽 바깥에 있던 차량의 도어 쪽으로 로봇이 옮겨갔다. 로봇은 다시 도어 이곳저곳을 스캔하며 측정한 데이터를 모니터로 내보냈다.

27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기아자동차 남양기술연구소의 ‘파이롯트센터’에서는 스토닉 출시를 앞두고 차량 점검이 한창이었다. 파이롯트센터는 신차가 양산되기 전에 실제로 시제품을 제작해 각종 안전성 실험을 진행하는 곳이다. 신차가 원활하게 양산될 수 있도록 차체의 강성, 주행 능력, 연비 효율, 소음 등을 사전에 테스트하고 개선하는 것이 주 임무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이날 스토닉 출시 전 미디어 행사를 통해 파이롯트센터 내 종합품질확보동과 재료개발센터 등을 공개했다.

카메라가 탑재된 스캐너 로봇 2대를 활용해 차체를 측정하는 곳은 종합품질확보동 내에 있는 ‘차체품질측정실’이다. 현대기아차그룹에 따르면 해당 스캐너 로봇은 완성차 업계 중에선 세계 최초로 도입한 비접촉(광학식) 3D 자동 스캐너다. 차량에 접촉 없이 차체와 완성차의 크기 등을 측정하고, 차체가 설계 도면과 동일하게 제작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장에 있던 차체품질측정실 관계자는 “모니터를 통해 측정한 수치가 3D 이미지로 구현되고, 색깔로 이상 여부가 표시된다. 이를 통해 촬영한 차체가 설계 도면 또는 이전 단계의 차체와 어떤 부분에서 얼마나 다른지 확연하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차체품질측정실 옆에는 ‘BSR 이음 평가장’이 있다. BSR은 진동으로 인한 울림음(Buzz), 마찰로 인한 마찰음(Squeak), 차체 충격으로 발생하는 떨림음(Rattle)을 말한다. BSR 이음 평가장에서는 실제 노면 데이터를 통해 진동을 발생시키고, 이때 차량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초적해 소음 발생원을 찾는 정밀 분석 실험실이다. 소음 측정이 진행되는 시험실은 노래 녹음실처럼 방음ㆍ방진 설계가 돼 있다.
시험실 내부에는 국내 최초로 도입된 ‘전자식 6축 가진기’를 설치했다. 가진기의 6개 축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울퉁불퉁한 길이나 매끈한 고속도로와 같이 실제 도로 같은 주행 환경을 재현한다.
실제 스토닉 차량의 소음 측정 시험도 살펴볼 수 있었다. 가진기를 작동하자 차체 아래 축들이 춤을 추듯 위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험이 계속될수록 진동은 강해졌다. 앞 축과 뒤축에 각각 다른 진동이 가해져 차체가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평가장 관계자는 “가혹할 정도로 진동을 가하고, 소음이 발생하는 곳이 어디인지 컴퓨터를 통해 확인한다. 전세계 도로 170여곳의 프로파일을 바탕으로 해당 도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진동을 프로그래밍하고 시험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또 종합품질확보동에는 도어 등 움직이는 부품을 3D 고속 카메라로 촬영해 어떤 부위가 얼마나 떨리는지 등을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는 ‘차체 강성 평가장’도 위치해 있다.

이후 차량에 쓰이는 각종 소재에 대한 개발과 검증 작업이 진행되는 재료연구동으로 이동했다. 재료연구동 안에 있는 ‘비파괴실험실’에서는 엑스레이(X-ray)를 이용해 제품을 투시하고, 이후 제품을 360도 회전시켜 모든 방향의 투시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이를 컴퓨터로 합성해 단면 형상과 3D 형상을 만들어 낸다. 즉, 제품을 분해하지 않고도 제품 내부 형상과 결함 등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비파괴실험실 옆 ‘정밀분석실’에서는 대형 투과전자현미경 등으로 소재를 분석한다. 이곳에 설치된 투과전자현미경은 가격이 15억원인 고가의 장비다. 물체를 약 100만배 이상으로 확대해 1nm(나노미터) 크기로 관측할 수 있다. 1nm은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수준이다. 이를 통해 차량에 쓰이는 금속·세라믹·고무 등의 소재 내부 구조와 구성원소 분포를 확인하는 것이다. 연구동 2층에는 ‘고분자재료분석실’ ‘금속성분분석실’ 등 차량 소재의 화학 구조를 분석하고 유해물질 여부를 점검하는 실험실도 있다.

남양기술연구소는 1995년 전국에 흩어져 있던 현대차 관련 연구소를 통합해 설립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기술들이 집약돼 있는 자동차 기술의 상징 같은 곳이다. 때문에 방문객의 휴대폰 카메라에 모두 보안 스티커를 붙일 정도로 보안에도 민감하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회사 직원들도 연구소에 출입할 때는 일일이 확인을 받아야 하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다. 현대차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고 말했다.

화성=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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